리움미술관이 구정아의 30년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런데 작품 35점이 한 전시실에 있지 않다. 로비와 고미술 전시실, 건물 바깥 옹벽 틈까지 흩어져 있어서 관객이 직접 찾아내야 한다.
1.리움미술관이 9월 5일 《구정아: 우스모스(KOO JEONG A: OUSSSMOS)》를 열었다. 12월 27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1990년대 초기작부터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신작까지 약 35점이 나왔다. 관람료는 18,000원이고, 관람일 2주 전부터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예약한다. 월요일은 휴관.
2.구정아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왔고, 1991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로 건너갔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 스위스를 오가며 작업했고 테이트 모던과 구겐하임이 작품을 갖고 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대표 작가. 이번 전시는 그가 국내에서 연 개인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3.전시는 한 방에 모여 있지 않다. 기획전시실 M2 말고도 로비, 고미술 상설전시실, 건물 바깥 옹벽 틈에 작품을 놓았다. 옛 도자기가 늘어선 진열장 사이에 자석 조각이 끼어 있고, 옹벽 돌 틈에는 크리스털이 박혀 있다. 헤럴드경제는 기사 제목에 작가의 말을 옮겼다. “작품을 못 볼 가능성도 작품의 일부.”

4.작품끼리 크기 차이가 크다. 새로 만든 「모비우스」는 폭 8m의 스테인리스 구조물로, 작가가 1998년부터 되풀이해 온 무한대 기호를 입체로 세웠다. 그 가까이에 놓인 1998년 작품은 접착제 없이 서로 기대 선 샤프심 57개. 큰 쪽이 더 단단해 보이느냐고 묻는 배치.

5.작은 쪽도 여럿이다. 「마그넷 시티즈」는 못도 풀도 없이 자석의 힘만으로 서 있는 조각 9점이고, 「알(R)」은 2005년부터 그려 온 드로잉 1,001장을 나무 상자 77개에 나눠 담았다. 전시 제목의 ‘우스’는 작가가 어릴 때 지어낸 말. 1990년대 중반부터 캐릭터처럼 작품마다 얼굴을 바꿔 가며 돌아온다.

6.로비의 「그라비타」는 인광 안료를 입힌 커다란 곡면 구조물이다. 낮 동안 빛을 머금었다가 주변이 어두워지면 스스로 초록빛을 낸다. 공중에 뜬 돌은 자력으로 붙잡혀 있고, 나무 조각에서는 향이 번진다. 크리스털 50개를 쓴 「리얼리티 업그레이드&엔드 얼론」은 빛이 특정 각도로 들어올 때만 눈에 걸린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틀어야 보이는 전시. 휴대폰 화면으로는 그 순간을 잘 담지 못한다.


7.요즘 전시는 보통 동선이 정해져 있다. 입구에서 번호 순서대로 걷고, 사진이 잘 나오는 방에서 멈추고, 출구 옆 굿즈숍에서 끝난다. 이 전시는 그 길을 치웠다. 무엇이 작품인지부터 관객이 가려내야 하고, 작품을 찾아낸 순간이 곧 관람이 된다. 미술관 건물 전체가 보물찾기 판.

8.찾는 경험은 남에게 옮겨 간다. 옹벽 틈의 크리스털을 본 사람은 그 위치를 친구에게 알려 주고 싶어지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같은 자리를 확인하러 온다. 나오는 길에 다 봤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 의심이 한 번 더 오게 만든다. 동선이 정해진 전시는 한 번 보면 끝나지만, 이 전시는 “놓친 게 있다”는 느낌을 남긴다.

9.리움은 2023년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WE》를 무료로 열었다. 같은 로비와 M2에서 38점을 보여 줬고, 문화일보 보도로 약 25만 명이 들었다. 3년 뒤 같은 자리의 전시는 18,000원을 받는다. 사전 예약은 그때도 지금도 필수.
10.표값 옆에는 멤버십. 1인용 ‘리움 프렌즈’는 1년에 10만 원. 가입하면 전시를 무료로 보고, 카페와 숍에서 10%를 할인받는다. 18,000원짜리 전시를 여섯 번 보면 108,000원이라 연회비를 넘는다. 흩어진 작품을 다 찾지 못했다고 느낀 관객에게는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의 명분이 된다.
방문 횟수별 표값과 멤버십 연회비
11.카텔란 때처럼 25만 명이 모두 정가를 낸다면 표값만 45억 원. 실제로는 멤버와 할인 관객이 섞이니 그보다 적고, 회기도 월요일을 빼면 100일이 조금 안 된다. 고미술 상설전시실은 무료. 유료 관객이 작품을 찾아 무료 전시실까지 도는 동안 미술관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그만큼 카페와 숍 앞을 한 번 더 지난다.
12.이런 작업에 누가 돈을 대는지는 2024년 베니스에서 드러났다. 한국관 전시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를 위해 2023년 여름부터 석 달 동안 한국의 도시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 이야기 600편을 모았다. 거기서 뽑은 키워드로 향 16가지를 만들어 전시장에 풀었다. 한국관은 국가관이라 공공 예산이 들어가고, 이때는 현대자동차가 후원사로 붙었다.

13.그보다 먼저 나온 건 스케이트보드장. 2012년 프랑스 바시비에르섬(Île de Vassivière)의 미술센터가 발주한 「OTRO」는 어두워지면 바닥이 빛나는 스케이트보드장이었다. 2015년 영국 리버풀 에버턴 파크(Everton Park)에는 같은 방식의 「Evertro」가 섰다. 리버풀 비엔날레와 시장이 발주했고, 작가는 설계 단계에서 동네 스케이터와 청소년 단체를 만났다. 지금 운영은 공원 관리 단체 The Land Trust가 맡고 있다고 비엔날레 측은 소개한다.
14.옹벽 틈의 크리스털이나 공중에 뜬 돌은 컬렉터의 거실로 옮겨 가기 어렵다. 향과 자력, 빛처럼 형태가 없는 재료는 어떻게 벽에 걸어 팔까. 그래서 이 작가의 작업은 미술관과 비엔날레, 도시의 발주에서 자리를 얻어 왔다. 작가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예술이 사회를 떠받치는 기반 시설이 될 수 있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밤이면 빛나는 스케이트보드장은 그 질문에 먼저 내놓은 답에 가깝고, 리움도 신작 「모비우스」를 무한대 기호와 스케이트보드장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구조물로 소개한다.
15.사립미술관 입장에서 보면 이 전시는 계산이 까다롭다. 작품이 흩어진 만큼 안내 인력과 보안 동선이 늘고, 로비와 상설전시실까지 전시 공간으로 쓰니 다른 전시와 자리를 나눠야 한다. 대신 관객 한 명이 건물 전체를 돈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이 표값을 받으면서도 체류 시간 쪽에 무게를 둔 배치.

16.리움은 구정아의 작품 35점을 전시실 하나에 모으지 않고 건물 곳곳에 흩었고, 관객은 18,000원을 내고 들어가 그것을 찾아다닌다. 3년 전 무료 전시로 25만 명을 모았던 바로 그 로비에서. 다른 미술관이 같은 배치를 하려 들면 먼저 부딪히는 건 작품이 아니라 보험과 보안이다. 진열장 사이와 옹벽 틈에 둔 작품은 지켜보는 눈이 적어서, 그 자리까지 보장하는 보험 조건을 받아 내는 데 설치만큼 시간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