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25억 원짜리 용역으로 여는 디자인 시장이 올해도 입장료를 받는다. 작년에는 닷새 동안 3만 명이 표를 사서 들어가 가구와 그릇을 골랐다.
1.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아트홀 전관에서 「2026 DDP디자인페어」를 연다. 국내 홈·라이프스타일 브랜드 80여 곳이 부스를 차리고, 관람객은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그 자리에서 산다. 입장료는 정가 15,000원이고, 표는 무신사가 운영하는 편집숍 29CM에서만 판다. 13일까지는 얼리버드가로 9,000원.
2.이 페어는 10월 14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지는 「서울디자인위크」의 본행사다. 작년 가을 29CM와 처음 손잡고 연 페어에는 닷새 동안 약 3만 명이 들었다. 서울시는 같은 기간 DDP 전체에 29만 명이 다녀갔고 입장 줄이 500m까지 늘어섰다고 발표했다.

3.작년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아파트 단지가 섰다. 29CM는 아트홀 안에 「29APT」라는 노란 가벽 동을 세우고, 129동부터 429동까지 네 동을 취향별 집으로 꾸몄다. 관람객은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듯 동마다 꾸며 둔 방을 구경하며 가구와 침구를 봤다.


4.올해는 아파트 대신 시장. 주제는 「취향이 가득한 시장」. 동대문시장에서 따와 전시장을 ‘세심한 살림꾼의 시장’, ‘고요한 몽상가의 시장’, ‘유쾌한 동반자의 시장’, ‘다정한 미식가의 시장’ 네 구역으로 나눴다. 반려동물과 아이 용품을 모은 동반자 구역은 올해 새로 생겼고, 29CM는 가족 구성이 바뀐 흐름을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5.부스의 기본은 흰 선반과 나무 진열대. 작년 한 조명 부스는 파스텔 칸막이 선반 수십 칸마다 버섯 모양 무드등을 하나씩 켜 두었고, 식기 부스는 흰 접시와 볼을 낮은 나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손님은 그릇을 들어 무게를 가늠하고, 등을 켰다 끄고, 쿠션을 눌러 본다. 화면으로만 보던 물건이 손에 들어오는 이 몇 초는 온라인 편집숍이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도 대신하지 못한다.


6.참가사 명단에는 서울디자인스타트업센터 출신 기업과 DDP 디자인스토어 입점사가 들어 있다. 백화점 한 층에 매장을 낼 형편이 안 되는 작은 브랜드에게 닷새짜리 부스는 손님이 제품을 직접 만져 보는 드문 자리다. 작년 관람 후기에는 새 브랜드를 알게 됐고 집 꾸밀 생각을 얻었다는 말이 남았다.

7.쇼핑몰은 문 앞에서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장은 표가 먼저 팔린다. 작년 얼리버드는 하루 만에 매진됐다고 서울시가 밝혔고, 올해 8월 60% 할인해 6,000원에 푼 한정 수량도 이미 품절이다. 사람들이 사는 건 물건을 살 자격이 아니라 ‘행사에 간다’는 경험. 표를 쥔 사람은 무언가를 사러 오기보다 무언가를 발견하러 온다.

8.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작년 과업내용서를 보면 이 행사의 용역 예산이 나온다. 「2025년 서울디자인위크 및 DDP디자인페어 행사 개최 및 운영」, 25억 원(부가가치세 포함). 전시와 강연·부대행사, 홍보·운영으로 나눈 비율까지 적어 두었는데, 절반 가까이가 전시 몫.
9.표값은 이 돈을 얼마나 메울까. 올해 관람객이 작년과 같은 3만 명이고 모두 얼리버드가로 들어온다고 치면 표 매출은 2억7천만 원. 전원이 정가를 내도 4억5천만 원. 예산의 11~18%. 표 매출이 재단과 29CM 가운데 어디로 얼마씩 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작년 용역 예산 배분과 올해 표 매출 추정
10.거꾸로 계산하면 관객 한 명에게 들어가는 공공 예산이 나온다. 전시 몫 12억 원을 페어 관객 3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4만 원. 위크 전시까지 합친 금액이라 페어만 따지면 이보다 적지만, 15,000원짜리 표 뒤에 그보다 큰 돈이 붙어 있는 건 분명하다.
11.29CM가 가져가는 건 표값보다 고객이다. 표를 29CM에서만 팔았고, 작년 현장 경품 응모는 29CM 앱으로 받았다. 부스에서 만져 본 그릇을 집에 가서 앱으로 다시 찾으면 그 주문도 29CM로 들어간다. 브랜드가 내는 참가비는 얼마일까. 아직 알려진 숫자가 없다.


12.민간에서는 오래전부터 같은 장사를 해 왔다. 디자인하우스가 여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올해 2월 코엑스 A~D홀에서 31회째 열려 닷새 동안 23만 명을 모았다. 입장료는 25,000원. 민간 박람회는 입장료와 부스비로 행사비를 대고 이익까지 남겨야 한다. DDP디자인페어는 관객 규모가 그 여덟 분의 일이지만 예산을 먼저 깔고 시작한다.
13.과업내용서는 2025년부터 서울디자인위크를 밀라노와 파리의 국제 디자인 박람회 구조로 바꾼다고 적었다. 10월 18일 컨퍼런스에는 밀라노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Milano)의 마리아 포로(Maria Porro) 회장이 연사로 선다. 그런데 살로네의 본업은 해외 바이어와 유통사를 불러 모으는 산업 박람회. DDP의 닷새는 시민이 표를 사서 장을 보는 시장에 가깝다.
14.그 차이는 과업내용서의 성과 목표에서 드러난다. 페어에 건 정량 목표는 참여 브랜드 70개 이상, 현장 관람객 닷새 동안 15,000명 이상. 작년에는 관람객이 목표의 두 배 왔다. B2B 프로그램과 라이브커머스를 운영하라고 적어 놓았지만, 바이어 상담 건수나 계약액은 목표에 없다. 재는 건 사람 수뿐.
15.민간 박람회가 두지 않는 칸도 있다. 올해 아트홀 한쪽에는 대학생 디자이너 약 100명, 20팀이 기업과 함께 만든 제품을 거는 「영디자이너 특별관」이 들어선다. 당장 매출이 나지 않는 칸. 부스비를 받아 운영비를 대야 하는 행사라면 이 자리부터 줄었을 것이다.
16.서울시는 작년 25억 원짜리 용역으로 닷새짜리 시장을 열었고, 3만 명이 표를 사서 들어가 가구와 그릇을 샀다. 올해도 같은 아트홀에 브랜드들이 다시 부스를 차린다. 표를 전부 정가에 팔아도 예산의 5분의 1이 안 된다. 공공 예산 없이 이 형식을 하려면 먼저 부스비에서 막힌다. 작은 브랜드는 대형 박람회 수준의 부스비를 낼 여력이 없고, 부스비를 낮춘 차액을 입장료로 메우기에는 15,000원이 모자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