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에서 넉 달 반 만에 800만 명을 모은 정원박람회가 10월 한 달 서초구 매헌시민의숲으로 무대를 넓혔다. 입장료는 없고, 정원 공사비의 큰 몫은 기업이 댄다.
1.서울시와 서초구가 10월 1일부터 27일까지 매헌시민의숲에서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가을 행사를 연다. 5월 1일 서울숲에서 개막한 박람회의 두 번째 무대이고, 서울숲 쪽도 같은 날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에서 내려 그대로 걸어 들어가면 끝.
2.숲 안에 들어선 정원은 51개. 공모로 뽑힌 작가·시민·학생 정원이 14개, 동네 시민정원사들이 꾸민 정원이 31개, 기업과 기관이 만든 정원이 6개. 양재시민의숲이라는 이름으로 더 오래 불린 이 공원은 올해로 문을 연 지 40년.

3.이 박람회는 빈 땅에 정원을 짓지 않는다. 40년 자란 나무 사이 빈자리에 작은 정원을 끼워 넣는다. 박람회장 안 정원 51개의 면적을 다 더해도 3,823㎡라 정원 하나에 평균 75㎡꼴이다. 시민정원사 정원은 그보다 훨씬 작아서 대부분 아파트 거실만 하다.

4.키 큰 나무들이 만든 그늘 아래 분홍 핑크뮬리가 무릎 높이로 번지고, 억새 이삭이 그 앞을 가린다. 파란 철제 돔 정자에는 장미 화분이 매달렸고, 나무 사이에 걸린 전구 줄 아래로 빈백이 흩어져 있다. 그 빈백 위에는 정원을 보러 온 사람들. 구경거리보다 머물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배치.


5.정원은 박람회장 밖으로도 이어진다. 여의천·양재천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거점정원 다섯 곳, 강남대로와 매헌로에 가로정원 두 곳을 깔아 합계 3,580㎡. 박람회장 안 정원 면적과 거의 맞먹는 넓이가 역에서 숲까지 걷는 길에 놓였다. 걷는 길까지 행사장으로 친 설계.

6.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표가 없어서만이 아니다. 정원은 오래 볼수록 덜 지루한 몇 안 되는 전시물인데, 공원은 오래 머무는 데 돈을 받지 않는다. 박람회는 그 시간을 프로그램으로 채운다. 정원도슨트가 매일 세 번 돌고, 숲 해설과 허브 체험을 묶은 「정원처방」이 기간 중 128차례 열린다. 금·토 저녁에는 숲속 야외 극장에서 영화를 튼다.

7.정원의 크기도 한몫한다. 거실만 한 정원은 관람객이 자기 마당이나 베란다로 옮겨 볼 수 있는 크기다. 대형 화훼 전시가 감탄을 팔았다면, 이 박람회는 ‘우리 집에도 해 볼까’ 하는 마음을 판다. 행사장 안 「정원마켓」에서 20개 업체가 식물과 원예 용품을 늘어놓는 이유도 거기에.
8.그 정원을 만드는 손도 시민이다. 올해 시민정원사 367명이 정원을 짓고 돌보고 해설까지 맡았는데, 역대 최다. 자기 손으로 만든 정원이 박람회에 걸리면 가족과 이웃이 보러 온다. 참가자를 늘리는 일이 곧 관람객을 늘리는 일이 된다.

9.서울시가 올해 두 박람회에 잡은 예산은 66억 원이다.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작년 박람회 예산 28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
10.관람객 한 명에게 드는 돈은 얼마일까. 작년에는 1,044만 명이 다녀가 1명당 약 270원이 들었다. 올해는 8월 중순까지 모인 800만 명으로만 나눠도 1명당 825원, 영화표 한 장 값의 20분의 1도 안 되는 돈.
11.그럼 정원은 누가 짓나. 이 예산으로 다 짓지는 않는다. 서울시는 기업과 기관이 공사비를 대는 기부정원을 2024년 9곳에서 올해 서울숲 50곳으로 늘렸다. 서울숲 기부정원 면적만 약 1만 평. 대우건설·GS건설·HDC현대산업개발 같은 건설사와 삼성·카카오·농심·무신사가 이름을 올렸다.
기업·기관 기부정원 수와 매헌시민의숲 정원 면적
12.매헌시민의숲에서는 이 구조가 더 또렷하다. 현대차·한국마즈·서울보증보험·KB국민은행·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그리고 작년 봄 이 숲에 생태 복원 정원 「록록정원」을 만든 록시땅(L'OCCITANE)까지 여섯 곳의 정원이 2,463㎡, 박람회장 정원 면적의 64.4%를 차지한다. 시민정원사들이 지은 정원 땅은 다 합쳐도 그 4분의 1이 안 된다. 기업들이 낸 공사비는 비공개.

13.기업에게는 광고비보다 오래가는 지출. 서울숲에 「도담정원」을 만든 현대위아는 박람회가 끝나도 정원을 철거하지 않고 상설 정원으로 남긴다고 밝혔고, 서울시는 넘겨받은 뒤 유지관리를 맡는다. 회사는 공사비를 한 번 내고 공원에 이름을 남긴다. 시는 공사비 없이 정원을 얻고, 그 대신 관리비를 매년 떠안는다.
14.국내 정원박람회의 표준은 원래 유료였다.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성인 입장료 15,000원을 받고도 980만 명을 모았다. 다음 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는 울산은 입장료와 협찬으로 자체수입 350억 원을 목표로 잡았는데, 지역 신문은 행사 뒤 남는 시설의 관리비를 숙제로 꼽았다.

15.서울은 표 대신 공원을 쓴다. 땅은 이미 있는 공원이고, 나무는 40년 전에 심었으며, 정원의 상당 부분은 기업이 지어 준다. 표 수입을 포기하고, 대신 짓는 돈을 거의 들이지 않는 계산. 작년 보라매공원 개막 첫 주에 주변 카드 결제가 하루 평균 20% 늘었다는 서울시 발표가 이 모델의 근거로 쓰인다. 한 주짜리 통계라 오래가는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16.서울시는 입장료 없이 공원 두 곳을 정원박람회장으로 돌렸고, 매헌시민의숲에서는 기업 여섯 곳이 박람회장 정원 면적의 64%를 채웠다. 관람객은 공짜로 숲에 눕고, 기업은 공원에 이름을 남긴다. 이 방식을 다른 도시가 따라 할 때 먼저 걸리는 건 박람회가 끝난 다음 해다. 기부정원은 3년 새 9곳에서 50곳으로 늘었는데, 그 정원에 물을 주고 풀을 뽑는 돈은 기업이 아니라 시 예산에서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