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해머 미니어처의 한국 총판이 홍대에 매장을 열면서 바닥 한쪽을 게임 탁자로 채웠다. 탁자는 이달 말까지 공짜다. 그 공짜를 받쳐 주는 건 매출총이익률 71%짜리 영국 회사다.
1.영국 Games Workshop의 한국 공식 총판 나비타월드가 10월 4일 홍대에 FUNFORGE(펀포지) 플래그십 매장을 정식으로 연다. 2일까지 가오픈을 했고, 브랜드별로 10~30%를 깎아 주는 개점 행사가 붙었다. 매장 안 게임장은 10월 31일까지 무료로 연다. 주력은 워해머(Warhammer) 미니어처와 전용 물감, 카드게임.
2.매장은 두 구역으로 나뉜다. 신제품과 입문 상자, 굿즈를 늘어놓고 조립·도색을 해 보는 「TRY BAR」를 둔 DISCOVER, 그리고 미니어처 게임과 카드게임을 하는 THE FORGE. 뒤쪽 구역에는 가로 152cm, 세로 112cm(60×44인치) 게임 탁자가 깔렸다. 주 1회 도색 모임과 규칙 강습, 자유 대전, 토너먼트가 이 탁자 위에서 돈다.

3.탁자 하나의 크기가 이 매장을 설명한다. 152×112cm 판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말을 옮기려면 둘레로 사람 하나 지나갈 통로가 있어야 하고, 그러면 탁자 하나가 바닥 6㎡ 안팎을 차지한다(추정). 편의점 진열대 두 줄이 들어가는 넓이에 손님은 둘뿐. 한 판에 두세 시간씩 걸리는 게임이라 이 자리에는 회전율이라는 말이 안 맞는다.

4.탁자 위는 보통 초록 매트나 무너진 건물 모형으로 덮인다. 키 3cm 남짓한 병사들이 줄지어 서고, 플레이어는 줄자를 펴 사거리를 잰 뒤 주사위를 한 줌씩 굴린다. 주사위가 매트에 부딪히는 둔한 소리, 상대 차례를 기다리며 팔짱 낀 구경꾼. 가오픈 때 다녀온 이용자 후기를 보면 1층에는 물감과 피규어가, 지하에는 칠을 마친 미니어처가 놓여 있었다. 사러 온 사람보다 구경하러 들어온 사람을 먼저 멈춰 세우는 배치.

5.이 상품은 사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상자를 열면 회색 플라스틱 판에 붙은 부품이 나오고, 떼어 내 붙이고 밑칠을 하고 붓으로 색을 올려야 병사 하나가 선다. 펀포지 몰 가격으로 오크 지휘관 「워보스」 하나에 55,800원, 장갑차 「라이노」에 72,000원. 그 가격에는 조립과 도색에 들어갈 몇 시간이 빠져 있고, 사는 사람이 자기 시간을 보태야 물건이 끝난다.

6.그렇게 만든 병사는 혼자서는 쓸 데가 없다. 집에서 친구와 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게임에는 상대가 있어야 하고, 152cm 판과 지형물을 집에 펴 둘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탁자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군대를 보다가 다음 상자를 산다. 온라인 몰이 더 싸게 팔 수는 있어도 마주 앉을 사람을 배송해 주지는 못한다.

7.게임을 안 하는 손님도 있다. 칠만 하는 사람, 진열장에 세워 두고 모으기만 하는 사람, 소설만 읽는 사람. Games Workshop이 지난 회계연도에 판 워해머 소설은 500만 권이 넘는다. 회사는 연차보고서에서 손님을 수집가·도색가·조립가·게이머·독자로 나눠 적었고, 탁자는 그중 게이머를 붙잡는 장치다.

8.아시아에서 이 수요가 커지고 있다. 5월 31일에 끝난 2025/26 회계연도에 Games Workshop이 아시아 독립 매장에 판 물건은 2,310만 파운드로, 1년 전보다 38.3% 늘어 최고치를 찍었다. 회사는 서울과 상하이에 국가 담당 매니저를 새로 앉혔다고 밝혔다. 홍대 매장은 그 발표 두 달 뒤에 문을 연다.
9.플라스틱 병사 장사의 이익률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나 보는 숫자다. Games Workshop 본업의 매출총이익률은 71.1%, 영업이익률은 39.1%. 영국 노팅엄(Nottingham)의 자기 공장에서 사출 성형기로 찍은 플라스틱에 40년 넘게 쌓은 세계관을 입혀 판다. 본업 매출 6억 2,680만 파운드를 파운드당 1,850원으로 치면 1조 1,600억 원쯤.
Games Workshop 본업 매출의 판매 경로와 직영 매장 형태 (2025/26 회계연도)
10.그 매출의 65%는 펀포지 같은 총판과 독립 매장이 판다.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은 24개국 598곳인데, 그중 465곳은 점장 한 명이 혼자 지키는 작은 점포. 연차보고서는 직영 매장의 목적을 새 취미인을 모으는 데 둔다고 적었다. 그래서 진열대에는 전 품목이 아니라 입문 상자와 신제품뿐.

11.직영 매장 한 곳이 1년에 버는 돈은 평균 22만 파운드, 4억 원 남짓(매장 매출을 매장 수로 나누고 파운드당 1,850원으로 계산). 물건을 쌓아 파는 매장으로는 작은 숫자지만, 이 매장들이 데려온 손님은 결국 동네 독립 매장과 온라인에서도 산다. 독립 매장 거래처는 1년 새 1,000곳쯤 늘어 71개국 9,100곳이 됐다.

12.펀포지 쪽 계산은 공개된 숫자가 없어 추정으로 본다. 탁자 하나가 차지하는 6㎡의 월세를 올해 2분기 전국 중대형 상가 평균(㎡당 26,700원)으로 치면 16만 원이고, 홍대 대로변이면 그보다 몇 배 높다. 워보스 상자 세 개 값. 총판은 수입 마진과 소매 마진을 함께 쥐고 있어서, 탁자 면적을 광고비처럼 쓸 여유가 독립 매장보다 크다.
13.탁자를 둔 매장은 이 회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Games Workshop은 1975년 런던에서 게임용 나무 판을 만드는 회사로 시작해 1978년 4월 해머스미스(Hammersmith)에 첫 매장을 냈다. 워해머 첫 판이 1983년, 워해머 40,000이 1987년. 본사가 있는 노팅엄에는 지금도 게임 탁자를 길게 늘어놓은 홀이 있다.

14.화면 속 워해머는 올해 줄었다. 비디오게임 「스페이스 마린 2」가 나온 전년도에 5,250만 파운드였던 라이선스 수입이 3,290만 파운드로 내려앉았는데, 탁자 위 워해머는 같은 해 최고 매출을 썼다. 그런데도 회사가 늘리는 건 화면이 아니라 매장이다. 지난해 42곳을 열고 14곳을 닫았고, 이번 회계연도에 북미·유럽·아시아에서 30곳쯤을 더 연다고 밝혔다.
15.워해머의 한국 총판은 홍대에 매장을 내면서 바닥 한쪽을 팔 물건 대신 152×112cm 탁자로 채웠고, 한 달 동안 그 자리를 공짜로 내준다. 본사의 매출총이익률 71%가 그 공짜를 받쳐 준다. 국내 독립 매장이 이 방식을 따라 할 때 먼저 걸리는 건 탁자가 아니라 탁자를 채울 사람이다. 탁자는 하루면 들이지만, 매주 같은 요일에 와서 판을 벌이는 단골 열 명은 도색 모임과 토너먼트를 몇 달씩 돌려야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