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회사 마리메꼬는 지금 핀란드보다 아시아에 매장이 더 많다. 그 회사의 드레스와 천이 1933년에 지은 도쿄의 아르데코 저택에 걸렸고, 관람권은 1,400엔이다.
1.「마리메꼬전 무늬의 힘(マリメッコ展 模様のちから)」이 10월 3일 도쿄도 정원미술관(東京都庭園美術館)에서 열렸다. 12월 20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고 입장은 날짜와 시간을 정해 예약하는 방식. 일반 관람료는 1,400엔, 대학생 1,120엔, 고등학생과 65세 이상은 700엔.
2.7월 교토문화박물관(京都文化博物館)에서 시작한 순회전이고, 도쿄 다음은 내년 1월 히로시마미술관. 그 뒤로 기타큐슈·도야마·나고야·나가사키를 2년에 걸쳐 돈다. 이 규모의 일본 순회는 10년 만. 1951년 헬싱키에서 시작한 회사가 지금까지 만든 프린트가 3,500종을 넘는데, 그중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드레스 60여 벌을 Design Museum Helsinki와 마리메꼬 자료실에서 빌려 왔다.
3.전시장이 된 건물은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朝香宮鳩彦王)가 살던 집. 1933년에 완공됐고, 실내 기본 설계는 프랑스의 앙리 라팽(Henri Rapin)이, 유리 문과 조명 일부는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가 맡았다. 1983년 미술관이 됐고 2015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번 전시는 이 본관의 커튼을 마리메꼬 천으로 바꿔 달았다.

4.드레스는 연대순으로 서 있지 않다. 색과 무늬끼리 묶어 방마다 나눴고, 그래서 만든 해가 수십 년 벌어진 옷들이 한 받침대에 나란히 선다. 계단참 벽에는 검은 원이 줄지어 박힌 천 두 폭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오고, 욕실 창에도 무늬 천을 대 빛이 무늬를 통과해 들어온다. 관람객은 흰 벽 전시실 대신 남의 집 거실과 계단과 욕실을 차례로 지나며 그 천이 걸린 모습을 본다.


5.2014년에 새로 지은 신관은 천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 파란 틀에 끼운 실크스크린 판이 벽을 따라 서고, 아트 유닛 plaplax가 헬싱키 공장의 평판 날염 공정을 영상으로 옮겨 긴 탁자 위에 쏜다. 색판이 한 장씩 겹칠 때마다 무늬가 하나씩 늘어나는 걸 탁자 위에서 지켜보는 식.


6.이 전시가 사람을 부르는 이유는 옷보다 방에 있다. 마리메꼬는 옷만큼 쿠션과 그릇과 커튼을 팔고, 손님이 사 가는 건 결국 자기 집에 걸릴 무늬. 흰 벽에 붙인 천은 작품이고, 창에 건 천은 집. 90년 된 저택의 창이 그 장면을 대신 보여 주니, 관람객은 1,400엔으로 자기 거실을 미리 본다.
7.일본 쪽에서도 할 말이 있는 브랜드. 와키사카 가쓰지(脇阪克二)가 1968년 마리메꼬 디자이너로 들어갔고, 이시모토 후지오(石本藤雄)는 1974년부터 2006년까지 헬싱키에서 무늬를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미나 페르호넨(minä perhonen)을 만든 미나가와 아키라(皆川明)가 천 고리를 천장에서 바닥까지 잇는 설치를 새로 만들었다. 핀란드어로 이름을 지은 일본 브랜드가 핀란드 브랜드의 전시를 거든 것.

8.마리메꼬의 2025년 매출은 1억 8,960만 유로, 비교 기준 영업이익은 3,230만 유로로 매출의 17.1%다. 아시아태평양 매출은 4,000만 유로로 핀란드 다음가는 두 번째 시장. 매장 수로는 순서가 뒤집힌다. 작년 말 전 세계 174개 매장과 숍인숍 가운데 94개가 아시아태평양에 있고, 본국 핀란드는 67개뿐.
마리메꼬 2025년 지역별 매출과 매장 수
9.아시아 매장은 대부분 현지 협력사가 운영한다. 마리메꼬는 그 협력사에 물건을 넘기고 도매가를 받는데, 협력사 매장의 소비자가 매출까지 더한 브랜드 매출은 3억 8,510만 유로, 회사 매출의 두 배쯤. 일본에서 그 협력사는 패션 회사 룩홀딩스(ルックホールディングス)이고, 작년 말 일본 안 마리메꼬 매장이 41개였다. 2025년 10월에는 다이마루 도쿄점에 매장 하나를 더 냈다.
10.전시 자체가 버는 돈은 크지 않다. 79일 회기에서 휴관일을 빼면 문을 여는 날이 70일 남짓이고, 하루 1,000명이 들어 모두 일반권을 산다고 쳐도 관람료는 1억 엔에 못 미친다(추정). 매표는 미술관 몫이고, 마리메꼬는 특별협력으로 이름을 올려 자료를 빌려준다. 기획 협력에는 영화사 도에이(東映)가 들어갔다. 순회전 한 벌을 짜서 여러 미술관에 차례로 거는 역할로 보인다.
11.돈이 도는 곳은 출구 앞 가게. 교토 회장에서 교토 장인이 만든 접부채가 4,200엔, 양갱 세 가지 맛 세트가 1,944엔에 나왔고, 도쿄에서는 차 전문점 LUPICIA와 만든 전시 한정 홍차가 토트백·마스킹테이프 옆에 깔렸다. 같은 가게에서 가방과 그릇 같은 마리메꼬 정규 상품도 판다. 관람객은 방 몇 개를 돌며 무늬를 본 뒤에 계산대를 지난다.

12.순회가 도는 2년은 회사가 아시아 출점을 늘리는 시기와 겹친다. 회사는 올해 매장과 숍인숍 10~15곳을 새로 열 계획이고 대부분 아시아라고 공시했다. 히로시마와 나고야와 나가사키의 미술관 일정표에 2년 동안 이름이 오르는데, 마리메꼬가 그 자리에 광고비를 냈다는 공개 자료는 없다.

13.지금 전시의 얼굴은 꽃이지만, 창업자 아르미 라티아(Armi Ratia)는 한때 꽃무늬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자연의 꽃을 천에 옮기면 진짜를 이길 수 없다는 것. 디자이너 마이야 이솔라(Maija Isola)는 1964년 그 말을 듣지 않고 커다란 양귀비 무늬를 그렸고, 그게 지금 회사를 대표하는 무늬, 우니꼬(Unikko).

14.1933년의 이 집은 프랑스 장식을 들여와 꾸민 집. 90여 년 뒤 그 방들에 핀란드 천이 걸렸고, 그 천을 사 가는 손님의 큰 몫은 이제 아시아에 있다. 같은 순회전이 교토에서는 흰 벽 박물관 전시실을 썼다. 도쿄 회장만 집을 얻었다.
15.마리메꼬는 매장의 절반 넘게 둔 아시아에서, 관람료 1,400엔짜리 순회전으로 2년 동안 일곱 도시의 미술관 일정표에 오른다. 도쿄에서는 중요문화재 저택의 커튼까지 바꿔 달았다. 국내에서 같은 전시를 하려면 먼저 건물이 걸린다. 지정 문화유산 실내에 천을 거는 일도 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절차는 전시 일정보다 오래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