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에 지은 타슈켄트의 전차 차고와 디젤 발전소가 우즈베키스탄 첫 현대미술관이 됐다. 3,200㎡, 입장은 무료. 공사비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 같은 해 같은 재단이 2,000억 원대 박물관을 함께 열었다.
1.2026년 9월 6일, 타슈켄트(Tashkent)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 거리에서 타슈켄트 현대미술센터(Centre for Contemporary Arts Tashkent, 이하 CCA)가 문을 열었다. 건물은 1912년 이 도시 첫 전차 노선을 위해 지은 차고와 디젤 발전소. 파리의 Studio KO가 3,200㎡로 고쳤고,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원래는 3월 21일 페르시아 새해 명절 나브루즈(Navruz)에 열 계획이었고, 반년 늦게 열렸다. 개관 사흘 뒤부터 건축 매체들이 우즈베키스탄 첫 현대미술 기관의 완공 사진을 일제히 실었다.
2.발주는 우즈베키스탄 예술문화발전재단(Uzbekistan Art and Culture Development Foundation, ACDF)이고, 이끄는 사람은 가야네 우메로바(Gayane Umerova)다. CCA 공사비는 비공개. 같은 재단은 그보다 먼저 3월 17일 이슬람문명센터(Center for Islamic Civilization)를 열었는데, 이쪽 공사비는 1억 5,000만~1억 6,0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국립박물관도 2028년 개관 예정. 한 나라가 문화시설 셋을 한꺼번에 굴리는 중이고, CCA는 그중 가장 작은 판이다.
3.땅 위에는 노란 벽돌 건물 두 동이 그대로 선다. 길가의 2층 관리동에는 안내 데스크와 서점, 사무실이 들어갔고, 박공 지붕의 긴 차고 홀이 큰 전시장이 됐다. 새로 지은 건 두 동 뒤에 붙인 상자 하나. 바깥을 짙은 자갈로 덮고 바니시를 입혀 젖은 돌처럼 번들거린다. 창에는 보라색 필름을 붙였는데, 그 보라색은 밖에서만 보인다.


4.차고 홀 안은 지붕 트러스까지 비워 두었다. 벽돌 벽에 아치 창이 줄지어 나 있고, 철골 트러스 아래로 작품을 늘어뜨릴 수 있는 높이다. Dezeen이 이 홀에 갖다 댄 비교 대상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터바인 홀.


5.벽돌에는 디젤 기름 냄새가 아직 배어 있다고 Dezeen은 전한다. 그 벽 사이로 금속판을 두른 통로가 지나고, 바닥 양옆에 숨긴 조명이 금속 벽을 타고 올라간다. 오래된 벽은 냄새를 내고 새 벽은 빛을 되비춘다. 들어가는 사람은 백 년 묵은 차고와 새로 낸 길을 번갈아 밟게 된다.

6.바닥과 계단은 짙은 흙빛 테라초. 설계팀은 이것을 소련 시절 타슈켄트 모더니즘 건물에 대한 경의라고 설명한다. 나선 계단은 테라초 난간이 한 덩어리로 휘어 내려가고, 디딤판만 나무. 손이 닿는 곳에만 나무, 나머지는 돌과 쇠.

7.맨 위층은 천창을 낸 도서관이고, 음반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함께 있다. 그 밖에 전시실 둘, 홀 위에 매단 상자 모양 강당, 계단식 객석, 식당과 공방, 기도실이 들어갔다. 지하층은 옛 디젤 발전소 자리를 살린 전시실. 미술관 하나에 도서관과 극장, 식당이 겹쳐 있다.


8.타슈켄트에는 이런 기관이 없었다고 재단은 말한다. 국립미술관은 있었지만 현대미술을 상설로 모아 보여 주고 작가를 머물게 하는 곳은 CCA가 처음이다. 2027년 1월 31일까지 열리는 개관전 「히크마(Hikmah)」에는 우즈베키스탄의 7대째 도예가 쇼흐루흐 라히모프(Shokhrukh Rakhimov) 옆에 김수자가 섰다. 이 기관의 첫 번째 명함은 지역 작가와 세계 작가를 한 홀에 놓는 것.

9.마당은 우즈베키스탄의 동네 공동체 마할라(mahalla)를 본떠 짰고, 밤에는 야외 영화관이 된다. 계단식 객석도 앉아 쉬는 자리를 겸한다. Studio KO는 이 작업을 두고 부수지 않고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 건물로 이름을 내기보다, 동네가 원래 쓰던 마당 모양을 미술관 한가운데로 가져온 선택이다.
10.공사비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범위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유럽 설계사무소가 맡은 문화시설 재생에 ㎡당 3,000~5,000달러를 대면 3,200㎡에 960만~1,600만 달러, 1달러 1,400원으로 약 130억~220억 원이다(추정). 올봄 문을 연 이슬람문명센터의 10분의 1 안팎. 재단 입장에서 CCA는 큰 박물관 둘 사이에 끼운 작은 판돈이다.
11.왜 입장료를 안 받을까. 월급을 보면 답이 나온다. 2026년 상반기 우즈베키스탄 평균 월급은 709만 숨, 약 589달러였다. 타슈켄트는 그 1.7배로 약 1,000달러 수준. 표값을 10달러로 잡으면 전국 평균 월급의 1.7%인데, 한국 직장인 월급 400만 원에 대면 표 한 장에 7만 원쯤 되는 부담이다.
12.그래서 돈은 표 밖에서 돈다. 식당과 서점, 강당과 마당 대관이 건물 안 매출이고, 나머지는 재단이 메운다. 재단이 노리는 건 관광 쪽이다. 2025년 우즈베키스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170만 명으로 1년 새 47% 늘었는데, 81.5%가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이웃 나라 사람이었다. 정부 목표는 2030년 2,000만 명.
13.이웃 나라 사람이 아닌 나머지를 끌어오려면 사마르칸트(Samarkand)의 푸른 돔 말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CCA가 내놓은 첫해 계획이 그쪽을 겨눈다. 런던 AA 건축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의 방문 학교를 3년짜리로 들이고, 여름 거리 축제와 영화제를 일정에 올렸다. 표를 팔지 않는 미술관이 대신 내놓는 상품은 도시의 1년 일정표다.
14.Studio KO는 카를 푸르니에(Karl Fournier)와 올리비에 마르티(Olivier Marty)의 사무소다. 이 사무소를 알린 작품은 2017년 마라케시(Marrakech)에 새로 지은 이브 생로랑 미술관(Musée Yves Saint Laurent Marrakech). 그때는 흙빛 벽돌로 새 건물을 세웠고, 이번에는 남이 지은 벽돌 건물에 손을 댔다.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꾼 테이트 모던도 상설전 입장이 무료였고, 그 뒤에 영국 정부 보조금이 있었다. 공장 건물에 무료 입장을 붙이는 방식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5.CCA가 다른 건 본관 밖으로 뻗은 두 곳이다. 구시가 마할라 나무나(Namuna)에서는 옛 모스크를 전시장으로 고치고, 아이완(ayvan)이라 부르는 전통 테라스를 행사 자리로 살리고, 카페와 공방을 새로 지었다. 하스트 이맘(Khast Imom)에서는 옛 유치원을 큐레이터 전문 도서관으로 바꿨다. 작가 레지던시는 이 동네 건물들에 흩어져 있고, 미술관이 동네 안으로 걸어 들어간 모양.
16.ACDF는 1912년 전차 차고 3,200㎡에 공사비를 밝히지 않은 채 현대미술관을 열고 입장료를 없앴다. 같은 해 봄 2,000억 원대 박물관을 먼저 연 재단이라서 가능한 계산. 국내에도 옛 공장과 석유비축기지를 문화시설로 고친 사례는 이미 여럿이다. 국내에서 먼저 걸리는 건 그다음 해의 운영비다. 재단 한 곳이 메우는 구조가 아니면 매년 의회 예산 심의를 넘어야 하고, 전시와 레지던시 일정을 3년 앞까지 짜 둘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