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광교의 주택가에서 문을 연 이탈리안 식당이 1년 반 만에 서울 서래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미쉐린 셰프가 10년 넘게 쓰다 떠난 2층이다. 셰프는 한 명, 홀은 그 여동생, 메뉴에 코스는 없다.
1.8월 20일, 미쉐린 가이드가 2027년판 서울·부산에 새로 올릴 식당 여섯 곳을 먼저 공개했다. 서울 몫 셋 가운데 하나가 서래마을의 이탈리안 뜨라또리아 로마냐(Trattoria Romagna). 소개글이 먼저 꺼낸 사실은 둘. 남매가 꾸리는 집이라는 것, 그리고 광교에서 서울로 옮겨 왔다는 것.
2.주방은 이탈리아 요리학교 ALMA를 나온 최민규 셰프가, 홀과 디저트는 여동생이 맡는다. 처음 문을 연 곳은 수원 광교, 경기대 앞 주택가 건물의 1층이었다. 개점은 2023년 가을. 서래마을의 이 자리를 비운 건 김성운 셰프의 테이블포포. 10년 넘게 이 동네에서 코스를 내다가 지난해 한남동으로 옮겨 갔다.


3.2층 문을 열면 노란 소파와 갈색 테이블, 호박색 조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미쉐린이 이탈리아 트라토리아 같다고 적은 그 차림. 테이블은 다섯 개가 전부이고, 주방은 홀에서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최소 금액을 거는 별실이 하나 따로 있다.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은 받지 않는, 전부 예약제.
4.메뉴판은 전채, 파스타와 피자, 생선, 고기로 나뉘고 코스가 없다. 손님이 접시를 골라 식탁 가운데 놓고 나눠 먹는 방식이다. 파스타는 전부 생면을 쓰고, 크림을 넣은 파스타는 처음부터 메뉴에 올리지 않았다. 광교 시절 손님 후기에도 이미 적혀 있던 원칙.

5.맨 윗줄의 트러플 아란치니는 표고버섯으로 지은 리조토를 공처럼 뭉쳐 튀긴 접시로, 가격은 2만 1,000원. 기름에서 막 건진 껍질을 포크로 가르면 안에 갇혀 있던 김이 올라오고, 버섯 향과 트러플 향이 그 김을 타고 함께 퍼진다. 시칠리아 길거리에서 손에 쥐고 먹던 음식을 이 집은 접시에 담아 전채로 낸다.

6.봉골레에는 편백나무와 함께 쪄 낸 조개가 들어간다. 나무 향이 조개에서 흘러나온 즙에 배고, 그 국물이 면을 적신다. 라비올리는 달걀 반죽을 얇게 밀어 소를 싼 것이라, 접시에 오를 때 반죽 너머로 속이 비친다. 아란치니와 어니언 수프는 광교 시절 메뉴판에도 있던 접시다.

7.서울의 이탈리안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한쪽은 저녁 코스가 10만 원을 훌쩍 넘는 파인다이닝, 다른 쪽은 쇼핑몰과 역 앞의 파스타 체인. 이 집은 그 사이에 코스 없이 접시를 고르는 식당을 놓았다. 둘이 와서 서너 접시를 나눠 먹고 와인 한 병을 비우는 저녁, 이 집은 그걸 판다.
8.서래마을은 서울프랑스학교(Lycée Français de Séoul)가 들어서며 프랑스인이 모여 살게 된 동네라, 단품을 내는 비스트로와 와인 가게가 골목마다 있다. 게다가 이 2층 주소는 테이블포포를 찾던 손님들이 10년 넘게 드나들던 곳. 광교에서는 단골을 처음부터 모아야 했지만, 서래마을에서는 이미 손님 발길이 익은 주소를 받았다.

9.미쉐린 명단은 그 주소에 확인 도장을 하나 더 찍었다. 별이 아닌 선정이고, 소개글은 화려한 요리 대신 든든한 가정식을 앞세운다는 셰프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예약 문의는 늘어나는데 테이블은 발표 전에도, 지금도 다섯 개.
10.둘이 와서 아란치니, 라비올리, 초리조 피자, 도미 스테이크를 시키면 15만 2,000원, 한 사람에 7만 6,000원꼴. 와인은 한 병까지 콜키지를 받지 않는다. 손님이 들고 온 병이 식탁에 오르면 그 테이블의 술 매출은 0원. 술에서 남길 마진을 내주고 음식값으로 버는 쪽을 고른 집이다.

11.좌석은 테이블 다섯 개에 별실을 더해 18석 안팎으로 잡았다. 저녁 마지막 주문을 8시에 받으니 한 테이블이 저녁에 두 번 돌기 어렵다. 점심과 저녁을 합쳐 한 달 매출을 세워 보면 4,000만 원 안팎이 나온다. 좌석 수와 채우는 비율, 한 사람 객단가 모두 추정이고 가게가 밝힌 수치는 없다.
12.남매가 주방과 홀을 나눠 맡으니 남에게 주는 월급이 거의 없다. 식재료 원가율을 32%로 잡고 서래마을 2층 임대료와 보조 인력 한 명, 공과금과 카드 수수료를 빼면 한 달에 1,600만 원쯤 남는다. 두 사람의 보수가 전부 그 안에 들어 있다. 계산은 모두 추정.
13.같은 구조가 약점도 된다. 셰프가 한 명이라 그가 쉬면 가게도 쉰다. 객단가는 고기 접시 하나에 크게 흔들린다. 앞의 네 접시에 13만 원짜리 한우 채끝을 더하면 한 사람 몫이 14만 원을 넘고, 빼면 7만 원대에 머문다.
14.이탈리아에서 트라토리아의 자리는 리스토란테보다 한 단 아래. 가족이 꾸리고, 메뉴판이 짧고, 동네 사람이 평일 저녁을 먹으러 가는 곳. 가게 이름의 로마냐는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주의 동쪽 절반으로, 피아디나와 카펠레티가 나온 땅이다. 최민규 셰프가 다닌 ALMA도 같은 주 콜로르노(Colorno)의 옛 공작 궁전 안에 학교를 두었다.

15.그런데 미쉐린은 이 집의 가격대를 네 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칸(₩₩₩₩)에 넣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편하게 들어가는 식당의 이름이, 서울에서는 가장 비싼 가격대 표시를 달고 나온다. 피자 한 판에 3만 6,000원, 도미 스테이크에 5만 6,000원.

16.광교에서 1년 반을 꾸린 남매 식당이 서래마을로 옮겨 미쉐린 명단에 올랐고, 그 사이 테이블은 한 개도 늘지 않았다. 국내에서 이만한 가게를 2층에 차리면 바닥면적에서 먼저 걸린다. 지상과 바로 닿지 않는 층의 일반음식점은 영업장이 100㎡ 이상이면 다중이용업소로 묶여, 소방 안전시설을 갖추고 완비증명을 받아야 영업 신고가 된다. 테이블 다섯 개짜리 트라토리아는 그 선 아래에서 문을 열 수 있는 크기. 이 집의 면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