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개점시그마 미나미아오야마 빌딩 1층. 입간판에 용과 함께 東京·香港 두 글자를 나란히 넣었다. ⓒ地球の歩き方
데일리 드링크
1년에 180만 명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를 스무 개만 놓았다 (도쿄·홍콩 로스터리)
2026.08.11
8월 7일, 도쿄 미나미아오야마(南青山) 2초메 1층에 홍콩 커피집이 문을 열었다. 좌석 스무 개. 문은 아침 여덟 시에 열리고 저녁 여섯 시면 닫힌다. 창 앞이 가을마다 180만 명을 끌어모으는 은행나무길인데, 그 길이 사람을 뱉어내는 건 1년에 두어 주뿐이다. 나머지 50주를 무엇으로 버티는가가 이 스무 자리의 문제다.
1.주소는 도쿄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 2-11-14, 시그마 미나미아오야마 빌딩 1층. URBAN COFFEE ROASTER TOKYO가 8월 7일 금요일에 열었다. 좌석 스무 개, 평일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말과 공휴일은 9시부터. 저녁 장사는 아예 없는 구조.
2.브랜드는 2014년 홍콩에서 시작했다. 지금 홍콩에 로스터리 한 곳과 카페 다섯 곳을 두고, 침사추이와 정관오·코즈웨이베이·소호에 이어 작년에는 홍콩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에도 들어갔다. 올해 두 곳을 더 연다는 게 회사 안내. 도쿄가 첫 해외 단독 매장이다.
3.공동창업자 게리 아우(Gary Au·歐祖華)가 생두를 사 오고 바를 잡는다. 2024년 홍콩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 2021년과 2024년 홍콩 커피 인 굿 스피리츠 우승, 2024년 홍콩 브루어스컵 3위. 작년 세계 커피 인 굿 스피리츠 대회에서는 6위. 생두를 고르러 매년 아프리카와 중남미로 나간다고 회사는 소개한다. 그럼 이 이력이 잔값에 얹히나. 홍콩 매장 메뉴판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벽에 건 이력홍콩 바리스타 챔피언십 2024, 홍콩 커피 인 굿 스피리츠 챔피언십 2024. 명판을 나무에 새겨 걸었다. ⓒ地球の歩き方
4.자리를 보면 이 회사가 무엇을 샀는지 보인다. 가게 앞이 메이지진구 가이엔(明治神宮外苑)의 은행나무길로, 300m 남짓한 네 줄짜리 가로수 아래로 매년 가을 180만 명 안팎이 몰려든다. 다만 노랗게 물드는 건 11월 중순에서 하순. 지금은 재개발 공사로 일부 구간에 통행 제한이 걸려 있다고 안내한다. 1년 열두 달 붐비는 길이 아니다.
창 앞의 300m가을 두어 주에 180만 명 안팎이 이 길로 온다. 나머지 계절엔 평범한 청산 대로변이다. ⓒLet's ENJOY TOKYO
5.메뉴판에서 눈에 걸리는 건 세 잔이다. 홍콩 에그타르트에서 가져온 커피 에그노그(Coffee Eggnog), 게리 아우가 아이리시 커피를 다시 짠 본 블레싱 아이리시 커피(Bon Blessing Irish Coffee), 그리고 스페셜티 원앙(Specialty Yuen Yeung). 마지막 잔이 이 가게의 이름표.
6.원앙(鴛鴦)은 홍콩 차찬텡(茶餐廳)이 만든 물건이다. 실론을 세게 우린 홍콩식 밀크티에 커피를 붓고 에바밀크와 설탕을 넣는다. 비율은 가게마다 다르고 정해진 값이 없다. 카페인에 카페인을 더하는 이 조합이 반세기 넘게 살아남은 건 맛이 아니라 속도 때문이었다. 미리 우려 둔 차와 미리 내려 둔 커피를 섞기만 하면 되니까.
차와 커피를 섞는다홍콩식 밀크티에 커피를 붓고 에바밀크를 넣는다. 비율은 가게마다 다르다. ⓒWikimedia Commons
7.그 잔에 스페셜티를 넣으면 문제가 하나 생긴다. 얕게 볶은 원두의 산미는 홍차의 떫은 끝과 부딪혀 혀에서 서로를 밀어낸다. 에바밀크의 기름진 단맛까지 얹히면 산미는 흐릿한 신맛으로 내려앉는다. 이 잔을 스페셜티로 다시 짜려면 배전을 내리거나, 차를 우리는 시간을 줄이거나, 둘 다 해야 한다. 원앙은 원두를 자랑하기에 가장 나쁜 잔이고, 그래서 이 집이 그 잔을 간판에 올린 게 눈에 띈다.
홍콩에서 볶는다고 벽에 썼다카오룽 매장 외벽. 자부심을 담아 홍콩에서 볶는다는 문장을 손글씨로 크게 올렸다. ⓒコーヒーステーション
8.게리 아우가 만든 2웨이컵(2-Way Cup)은 잔 자체가 상품이다. 립을 두 방향으로 다르게 깎아, 컵을 돌려 마시면 액체가 혀에 닿는 폭과 속도가 바뀐다. 같은 커피에서 단맛이 앞에 오기도 하고 향과 여운이 길어지기도 한다. 레드닷 디자인상과 스페셜티커피협회 신제품상을 받았고, 도쿄 개점에 맞춰 은행잎을 넣은 한정판을 냈다. 한 잔을 두 번 맛보게 만드는 물건.
돌려 마시는 잔립을 두 방향으로 다르게 깎았다. 레드닷과 SCA 신제품상 수상.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9.면적은 공표되지 않았다. 일본 카페 설계에서 좌석 밀도를 평당 두 자리로 잡고 주방을 전체의 20%로 보면, 스무 자리는 12평에서 13평 사이에 들어간다. 미나미아오야마 1층 노면 점포의 평균 임대료가 평당 3만 1,318엔, 가장 비싼 미나미아오야마 2초메가 5만 813엔. 이 가게가 앉은 자리가 바로 그 2초메다. 12평이면 월 38만엔에서 61만엔, 우리 돈 360만원에서 580만원 사이.
스탠드 세 대가 나란히드리퍼 세 개를 한 줄로 세워 동시에 내린다. 좁은 바에서 잔당 시간을 줄이는 배치다. ⓒ地球の歩き方
10.여기서 숫자가 조여 온다. 음식업에서 임대료를 매출의 10~15% 안에 두라는 게 통상 기준이고, 13%로 잡으면 이 가게는 월 292만엔에서 469만엔을 팔아야 한다. 영업일을 월 26일로 놓으면 하루 11만 2,000엔에서 18만엔. 객단가를 1,200엔으로 보면 하루 94명에서 150명이다. 스무 자리로 5~7.5회 회전.
앉아서만 채울 수 없는 숫자임대료 시세는 공표된 값이고 면적·객단가·회전율은 업계 통상치로 계산한 추정이다.
11.앉아서 그 회전은 안 나온다. 스페셜티 카페의 착석 손님은 한 자리를 40분에서 한 시간 반씩 쓰고, 열 시간 영업이면 착석만으로는 세 번이 한계. 나머지는 서서 받아 나가는 잔에서 온다. 아침 여덟 시 개점이 그 답. 청산 대로 일대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9시 전에 지나가고, 이 시간대의 잔은 자리를 쓰지 않는다.
12.두 번째 답이 잔 밖에 있다. 벽 한 면을 원두 봉투와 드리퍼, 색색의 2웨이컵으로 채워 놓았다. 음료는 한 사람이 하루 두 잔을 넘기기 어렵지만 컵은 값이 음료의 열 배 언저리이고 재고로 쌓여도 상하지 않는다. 홍콩 시세로 이 집 라테가 49홍콩달러, 우리 돈 9,100원 선인데, 굿즈 한 개가 라테 열 잔 값을 대신한다면 좌석 스무 개의 산수는 다르게 풀린다.
벽 한 면이 진열대선반과 카운터 위에 2웨이컵을 색깔별로 늘어놓았다. 자리를 쓰지 않는 매출이 여기서 나온다. ⓒ地球の歩き方봉투와 드리퍼원두 봉투를 여러 단으로 세우고 그 옆에 드리퍼를 놓았다. 로스터리를 가진 쪽의 진열이다. ⓒ地球の歩き方자리 수가 상한을 만든다음료는 좌석에 묶이고 원두와 잔은 묶이지 않는다. 작은 매장일수록 뒤의 두 칸이 커진다.
13.차찬텡이 원앙을 만들었을 때 그건 비싼 커피를 싼 차로 늘려 마시려는 궁리였다. 2000년대 스페셜티 물결은 그렇게 섞은 잔을 촌스러운 것으로 밀어냈고, 산지와 정제법을 설명하는 카운터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이 집이 하는 일은 밀려난 잔을 다시 데려오는 것인데, 데려오는 방향이 반대다. 싼 커피를 늘리려고 차를 섞던 자리에서, 이번엔 비싼 커피를 알리려고 차를 섞는다.
홍콩 소호의 노란 차양할리우드로드 35번지. 창에 HOME OF HK를 붙였고, 같은 주소에서 밤에는 진을 판다. ⓒTime Out
14.그럼 이 도쿄점을 낸 주체는 누구인가. 홍콩 본사의 지사가 아니라 2024년 12월 도쿄에 따로 세운 주식회사 UCR이고, 자본금은 500만엔, 대표는 창업자 본인이다. 본사는 세타가야구 산겐자야에 뒀다. 법인을 만들고 첫 매장을 여는 데 스무 달을 썼다. 마스터 프랜차이즈를 팔지 않고 직접 법인을 세워 직영으로 들어간 것이라, 로열티를 받는 대신 임대료와 인건비를 자기가 진다.
15.홍콩에서 열두 해 동안 다섯 곳을 낸 로스터리가 첫 해외 매장으로 도쿄에서 가장 비싼 1층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리를 스무 개만 놓았다. 여는 시각은 아침 여덟 시, 닫는 시각은 저녁 여섯 시. 평당 5만엔대 임대료를 매출의 13%에 맞추려면 하루 150명이 필요한데 스무 자리로는 앉혀서 채울 수 없는 숫자라, 답은 테이크아웃과 원두·잔 판매 쪽에 있다. 국내에서 같은 그림을 그리면 먼저 걸리는 건 보증금이다. 서울 도심 1층 노면은 권리금과 보증금이 월 임대료의 열 배에서 스무 배로 붙고, 원두와 굿즈로 회수를 시작하기까지 그 돈이 통째로 묶여 있다.
열두 해의 뒷배침사추이 매장. 간판 한 줄에 좋은 음식과 손으로 내린 커피, 그리고 생활 잡화를 나란히 적어 뒀다. ⓒTime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