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을 뜯지 않았다노스브로드웨이 2624번지. 아치 위 테라코타 글자와 마퀴가 그대로 남았고, 문구만 갈아 끼웠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데일리 드링크
197평 로스터리를 접은 회사가 극장 로비 하나로 돌아왔다 (로스앤젤레스·로스터리 카페)
2026.08.28
1913년에 지은 극장이 있었다. 객석은 1968년 여름에 헐려 주차장이 됐고 로비만 살아남았다. 이달 29일, 그 로비에 커피 카운터가 들어간다. 2년 반 전에 이 도시의 로스터리를 통째로 닫은 회사가 고른 자리다.
1.주소는 로스앤젤레스 링컨하이츠(Lincoln Heights) 노스브로드웨이 2624번지. 들어오는 회사는 1999년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로스터 Stumptown Coffee Roasters다. 개점은 8월 29일 토요일 오전 8시, 다음 날부터 여는 시각은 아침 6시 반. 회사는 이 매장을 로스앤젤레스의 교육 거점 겸 소매 카페라고 안내한다.
2.이 회사가 로스앤젤레스에 처음 들어온 건 2013년 9월이다. 아츠디스트릭트(Arts District) 사우스산타페 애비뉴에 650㎡짜리 로스터리 겸 카페를 열었고, 딱 10년을 채운 2024년 1월에 닫았다. 한 달 뒤 패서디나(Pasadena)에 동네 카페 하나를 냈으니 이번이 세 번째 판.
2024년의 답패서디나 링컨 애비뉴 매장. 로스터리를 접은 다음 달에 낸 동네 카페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3.극장은 1913년 Globe Theatre No.7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설계는 조지 B. 캠벨(George B. Campbell). 객석 850개가 경사 없이 한 층에 깔린 단층이었고, 1915년부터 Starland Theatre로 불렸다.
4.정면은 1935년에 통째로 뜯어 모던 양식으로 바꿨다. 폐관은 1968년 2월이고 그해 여름 객석이 헐려 주차장이 됐으니, 지금 남은 건 극장이 아니라 로비다.
5.지난해 개보수 중에 회벽 아래에서 아치와 테라코타 글자 'STARLAND THEATRE'가 나왔고, 처음 깐 테라조 바닥과 전구 소켓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회사는 그 정면과 바닥을 남긴 뒤 마퀴 간판에 문구만 갈아 끼웠다. "STUMPED ABOUT WHAT'S NEXT? STAY TUNED." 새로 세운 간판이 아니라 폐관하던 해까지 동네가 매주 읽던 물건이다. 브랜드 이름을 크게 붙이는 대신 건물의 옛 이름을 남겼으니, 새 가게가 들어온 게 아니라 꺼졌던 간판이 다시 켜진 모양이 됐다.
이 회사가 실내를 다루는 방식패서디나 매장 내부. 아치형 목조 지붕을 노출하고 액자와 레코드판으로 벽을 채웠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6.파는 커피는 Direct Trade로 사들인 생두를 자기 공장에서 볶은 것이다. 회사의 얼굴은 창업 첫해부터 이름이 안 바뀐 블렌드 Hair Bender. 여러 산지를 섞어 다크초콜릿과 잘 익은 붉은 과일 쪽으로 몰아 놓은 배합이라, 우유를 부으면 산미가 뒤로 물러나고 단맛이 앞에 선다. 마셔 보고 쓰는 게 아니라 공개된 배합과 볶음도에서 성립하는 범위까지다.
7.개점 당일 메뉴에 두 잔이 더 붙는다. 패션프루트 에스프레소 토닉, 그리고 호르차타 콜드폼 샤케라토. 호르차타는 쌀을 갈아 계피와 함께 마시는 라틴아메리카 음료이고, 이 동네 가게 냉장고에 원래 들어 있는 물건. 그걸 우유 거품 자리에 올렸다.
8.링컨하이츠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먼저 생긴 교외 주거지고, 지금은 라틴계와 아시아계 주민이 두껍게 산다. 언덕에 올라서면 단층 목조주택 지붕들 너머로 다운타운 고층 군집이 그대로 보일 만큼 가깝다. 최근 몇 해 이 거리에 새 가게가 들어올 때마다 임대료와 밀려남을 두고 말이 붙어 왔다.
다운타운이 보이는 저층 동네링컨하이츠 언덕에서 본 다운타운. 주택은 낮고 도심은 가깝다. ⓒPatstewmart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9.교육 기능을 매장 안에 넣은 것도 돈 계산이다. 바리스타 교육장을 별도로 임차하면 그 면적은 매출을 한 푼도 못 낸다. 영업하는 카운터 옆에서 훈련을 돌리면 같은 임대료가 두 가지 일을 하고, 신입은 실제 손님을 상대로 배운다.
10.미국 소매점의 분쇄 배전두 평균 가격이 2026년 4월에 파운드당 9.72달러를 찍었다. 1980년에 통계를 시작한 뒤 가장 높은 값이고, 1년 새 18.5% 올랐다. 인스턴트는 22.8%.
6센트의 인상소매 평균가는 미국 노동통계국 집계이며, 잔당 환산과 판매가 대비 비중은 통상 추출량으로 세운 추정이다.
11.라테 한 잔에 원두 18g을 쓰면 1파운드로 25잔이 나온다. 잔당 원두값 0.39달러, 1년 전에는 0.33달러였다. 사상 최고라는 원두값도 카페 한 잔에서는 판매가의 5% 남짓을 차지할 뿐이고, 우유와 포장재를 다 합쳐야 재료비가 선다.
값이 붙는 공정배전기에서 원두가 냉각기로 떨어진다. 이 회사는 생두를 사서 자체 시설에서 볶는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12.로스앤젤레스시 최저임금이 7월 1일부터 시간당 18.42달러로 올랐다. 사용자 부담분을 15% 얹으면 21.18달러. 두 명이 하루 12시간 서 있으면 508달러. 같은 하루의 임대료는 그 3분의 1도 안 된다.
사람 값이 4분의 3로스앤젤레스시 최저임금과 공표된 상권 평균 임대료로 세운 추정이며, 이 매장의 실제 조건이 아니다.
13.이 규모에서 손익을 가르는 건 좌석 수가 아니라 결제 건수다. 하루 고정비 650달러를 건당 공헌 5.25달러로 나누면 124건이 나온다. 미국 스페셜티 카페의 순이익률이 보통 2.5~7%에 머문다는 걸 생각하면, 의자를 몇 개 더 놓느냐보다 아침 두 시간에 줄이 서느냐가 먼저.
같은 회사, 다른 가격표교토 에이스호텔 1층 매장. 사진 속 가격표에는 라테 520엔, 핸드드립 550엔이 적혀 있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14.이 회사가 고른 건물들을 늘어놓으면 취향이 보인다. 브루클린 매장은 옛 소방서 건물이고 정면 간판에 'STUMPTOWN No.12'라고 새겨져 있다. 뉴욕 첫 매장은 에이스호텔 1층, 교토 매장도 에이스호텔 1층. 남이 쓰던 공공 건물과 호텔의 1층을 얻어 그 건물이 이미 갖고 있던 이름값을 같이 쓴다.
12번 소방서브루클린 퍼시픽 스트리트 매장. 소방서 번호를 그대로 간판에 남겼다. ⓒStumptown Coffee Roasters호텔 1층뉴욕 웨스트 29번가 에이스호텔 매장. 로비와 카페의 경계를 두지 않았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15.이 회사는 더 이상 독립 로스터가 아니다. 2015년에 Peet's로 넘어갔고, 지난 4월 1일 Keurig Dr Pepper가 그 모회사 JDE Peet's를 사들이는 절차를 끝냈다. 184억 달러가 오간 거래였고, 인수한 쪽은 커피 부문을 다시 떼어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슈퍼마켓 매대와 캔 음료로 돈을 버는 회사에게 카페는 그 브랜드가 어디서 왔는지 보여 주는 자리다. 그럼 이 카운터의 성적은 어디에 남을까. 이 매장 손익계산서는 아니다.
창업한 도시포틀랜드 사우스웨스트 워싱턴 스트리트 매장. 1999년에 시작한 도시에 아직 다섯 곳이 남아 있다. ⓒStumptown Coffee Roasters시작한 자리포틀랜드 사우스웨스트 3번가 매장. 1999년 창업한 도시의 도심 점포다. ⓒStumptown Coffee Roasters
16.850석 객석이 헐린 자리는 주차장이 됐고, 남은 로비가 커피 카운터를 들였다. 하루 결제 124건을 넘겨야 사람 값과 임대료가 덮이는 규모이고 그 고정비의 4분의 3이 사람 값이다. 극장이나 공연장으로 등록된 건물의 1층을 국내에서 휴게음식점으로 돌리려면 용도변경 절차와 정화조 용량 산정이 따라붙는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그 숫자가 안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