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가게가 있던 자리비티 스트리트 13번지. 도로에 면한 폭은 통유리 한 칸이고, 안쪽으로 둥근 펜던트가 줄지어 켜져 있다. ⓒYusuke Oba · Broadsheet
데일리 드링크
LP를 끝까지 트는 커피집이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시드니·킷사텐)
2026.08.29
시드니 서쪽 반도의 주택가에 커피집 하나가 문을 열었다. 글루텐 프리 도넛을 팔던 가게가 비운 자리다. 바 위쪽 벽에는 스피커가 한 통 걸렸고, 뒤쪽 방은 중고 레코드 매대로 바뀐다. 여는 시각이 오전 6시, 닫는 시각이 오후 3시.
1.주소는 시드니 발메인(Balmain) 비티 스트리트(Beattie Street) 13번지, 상호는 Phono Stage다. 도넛 가게 Nutie가 쓰던 자리에 들어갔고 현지 매체 Broadsheet가 8월 12일에 소개했다. 매일 오전 6시에 열어 오후 3시에 닫는다. 공개된 메뉴는 커피와 말차, 그리고 페이스트리.
2.주인은 케빈 투(Kevin Tu). 시드니에서 15년 동안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섰고 교육과 홀세일, 매장 운영을 차례로 거쳤다. 자기 이름을 걸고 여는 가게는 이번이 처음. 그는 이 가게를 킷사(喫茶)라고 부른다. 도쿄 뒷골목에 흩어져 있는 작은 커피집을 가리키는 말이고, 발메인에서는 이런 가게가 처음이라고 현지 매체는 전한다.
3.평면은 폭보다 길이가 길다. 도로 쪽 통유리를 지나면 왼쪽에 바 카운터와 스툴이 서고, 오른쪽 벽을 따라 붙박이 벤치가 안쪽 끝까지 이어진다. 벤치 앞에 놓인 은색 금속 사이드 테이블은 무릎 높이. 조명은 도로 쪽에 몰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워지고, 밝은 자리는 아침 손님이 먼저 앉는다.
폭보다 길이가 긴 방왼쪽이 바 카운터와 스툴, 오른쪽 벽을 따라가는 것이 붙박이 벤치다. 유리 너머는 길 건너 치과. ⓒYusuke Oba · Broadsheet안으로 갈수록 어두워진다벤치 앞의 은색 금속 사이드 테이블은 무릎 높이다. 빛은 도로 쪽에 몰려 있다. ⓒYusuke Oba · Broadsheet
4.소리는 한 통에서 나온다. 바 위쪽 벽에 빈티지 스피커가 하나 걸렸고, 뒤쪽 낮은 장 위에 턴테이블과 산스이(Sansui) 리시버, NAD 앰프가 얹혀 있다. 지금 트는 판은 재킷을 나무 받침에 세워 둔다. 손님이 고개를 들면 무엇이 걸렸는지 보인다. 스피커가 하나면 소리는 방을 고르게 채우지 않고 한쪽에서 온다. 대화를 덮는 음량이 아니라 대화가 끊긴 자리를 메우는 음량.
스피커는 한 통바 위쪽 벽에 걸린 스피커와 그 옆의 개구리 족자. 선반에 놓인 것은 판매용 원두 봉지다. ⓒYusuke Oba · Broadsheet지금 걸린 판턴테이블 옆에 리시버와 앰프를 쌓고, 재생 중인 앨범 재킷은 나무 받침에 세워 둔다. 오른쪽은 유리 물병. ⓒYusuke Oba · Broadsheet
5.하우스 블렌드는 Mecca Coffee가 볶는다. 2005년 시드니 킹 스트리트(King Street) 지하 에스프레소 바에서 시작해 지금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창고에서 볶는 회사이고, 다이렉트 트레이드와 약한 볶음으로 호주 스페셜티 초기를 연 축에 든다. 배치 브루는 Primary, Made of Many, Beam, Ratio를 돌려 쓴다. 약하게 볶은 동아프리카 원두가 필터로 내려가면 산미가 앞에 서고 단맛이 뒤를 받치는데, 마셔 보고 쓰는 게 아니라 공개된 산지와 볶음도에서 성립하는 범위까지.
우유가 들어가는 자리에스프레소 위로 우유를 붓는다. 잔은 손잡이가 달린 도기 잔이다. ⓒYusuke Oba · Broadsheet
6.우유 음료 다음으로 손이 가는 건 직접 만든 유자꿀을 넣은 말차. 페이스트리는 걸어갈 거리에 있는 Penny Fours에서 받고,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Hue Coffee가 굽는다. 겉을 태운 치즈케이크는 식혀서 하루를 재워야 가운데가 자리를 잡는다. 오전 6시에 여는 가게가 전날 받아 두기에 맞춤한 물건.
유자꿀 말차얼음 위로 부은 말차가 아래쪽 우유와 아직 섞이지 않았다. 오후 빛이 벤치 등판에 각지게 떨어진다. ⓒYusuke Oba · Broadsheet
7.아홉 시간만 연다. 오전 6시에 열어 오후 3시에 닫으니 저녁 영업이 아예 없다. 호주 요식업 임금은 시간대마다 값이 달라서, 저녁과 주말·공휴일에 붙는 할증이 기본 시급을 25~50% 밀어 올린다. 저녁을 버리면 매출이 줄지만 가장 비싼 시간도 같이 빠진다. 값이 싼 아홉 시간만 골라 쓰는 선택.
아침에 몰린다카운터에 두 명이 붙고 손님은 휴대폰으로 결제한다. 진열장에 놓인 것은 페이스트리. ⓒYusuke Oba · Broadsheet종이봉투에 적은 주문 약어카푸치노·플랫화이트·라테·모카·말차·매직·마키아토·롱블랙·피콜로를 한두 글자로 줄여 적었다. 아래쪽에 아이스와 디카페인, 라지가 붙는다. ⓒYusuke Oba · Broadsheet
8.시드니에서 플랫화이트 한 잔 평균이 4.82호주달러다. 도심 스페셜티 매장은 6달러를 받고, 팬데믹 이후 오른 폭이 30%. 값을 밀어 올린 게 원두뿐일까.
한 잔의 24%판매가와 업계 재료비 비중은 공표 자료이고, 항목별 금액은 통상 추출량과 도매 시세로 세운 추정이다.
9.재료비와 사람 값을 더하면 매출의 70% 안팎이 된다. 여기에 임차료와 관리비를 얹고 나면 호주 독립 카페에 남는 순이익률은 2~6%. 한 자리를 잘못 잡으면 그해 이익이 통째로 사라지는 폭이고, 그래서 임차료 비중이 10%를 넘어가는 순간 구조가 흔들린다.
10.매장을 90㎡에 좌석 24석으로 놓고 계산하면, 하루 결제 146건을 넘겨야 사람 값과 임대료가 덮인다.
고정비의 72%가 사람 값면적·좌석·근무 조건은 공개 사진과 동급 매장으로 세운 가정이며 이 가게가 밝힌 숫자가 아니다.
11.아홉 시간에 146건이면 시간당 16건. 좌석으로만 받으려면 자리마다 여섯 번을 돌려야 하는데, 판 한 장이 40분쯤 간다. 천천히 있으라고 말해 놓고 회전으로 숫자를 맞출 수 있을까. 아침에 들고 나가는 잔이 절반을 넘어야 계산이 선다.
12.뒤쪽 라운지 자리는 중고 레코드를 파는 칸으로 바뀐다. 카운터 뒤 선반에는 판매용 원두 봉지가 줄지어 있고, 아래 칸에는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일본반과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앨범이 꽂혀 있다. 레코드는 재고가 늦게 돌지만 팔릴 때 원가율이 커피보다 낮고, 무엇보다 이미 임대료를 내고 있는 면적을 두 번 쓴다. 커피를 다 마신 손님이 나가기 전에 서서 뒤적일 물건이 있느냐 없느냐로 객단가가 갈린다.
카운터 아래가 매대레코드 칸에 존 콜트레인 A Love Supreme 일본반과 마이클 잭슨 Thriller가 꽂혀 있다. 왼쪽 무더기는 책. ⓒYusuke Oba · Broadsheet
13.사람들이 여기 앉는 이유는 조용해서가 아니다. 음악이 깔려 있으면 혼자 앉아 있는 게 어색하지 않고, 벽을 보고 나란히 앉는 붙박이 벤치는 마주 보는 테이블보다 혼자 온 손님에게 관대하다. 주인이 남긴 말은 이 가게의 운영 규칙에 가깝다. "LP를 걸면 앨범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튼다. 그건 하나의 여정이다. 사람들이 재킷을 보고 내가 뭘 듣는지 알아챈다. 배경에 깔아 두는 게 아니라 의도한 것이다."
14.킷사텐(喫茶店)이 음악을 틀기 시작한 건 1920년대 말 도쿄. 음반과 재생 장비가 개인이 사기엔 너무 비싸서 가게가 대신 사서 틀었고, 손님은 커피값을 내고 그 소리를 빌렸다. 지금은 조건이 뒤집혔다. 음원은 주머니에 다 들어 있고 값은 0에 가깝다. 귀해진 건 음반이 아니라 한 장을 끝까지 듣는 시간.
테이블 위의 참고문헌바스크 치즈케이크와 말차를 노란 책 Tokyo Jazz Joints 위에 올려 두었다. 일본의 재즈 킷사를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집이다. ⓒYusuke Oba · Broadsheet
15.서양에서 킷사를 옮겨 온 가게는 대부분 밤에 열고 술을 판다. 주류는 커피보다 총이익률이 높고, 저녁 손님은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여러 잔을 시킨다는 것이 그쪽 계산. 이 집은 그 뒷문을 스스로 닫았다. 낮에만 열고 술이 없으면 기댈 데가 결제 건수밖에 없다.
16.도넛 가게가 비운 자리에 커피집이 들어와 벽에 스피커를 한 통 걸었고, 뒤쪽 방은 곧 레코드 매대가 된다. 좌석 24석짜리 매장이 하루 146건을 찍어야 사람 값과 임대료가 덮이는 계산인데, 그 숫자를 만드는 쪽은 오래 앉는 손님이 아니라 아침에 들고 나가는 손님.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면 먼저 걸리는 건 음악이다. 매장에서 음반을 트는 순간 면적 기준에 따라 공연권료가 붙고, 중고 음반을 함께 팔려면 휴게음식점과 별개로 소매업을 얹어야 한다.
가게 밖이 객석인도에 놓은 나무 벤치와 문 앞에 손님이 선다. 길 건너는 동네 반려동물 가게. ⓒYusuke Oba · Broadsh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