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벨그라비아의 붉은 벽돌 건물 1층에 짙은 초록 차양 셋이 걸렸다. 2011년 런던에서 시작한 로스터가 2024년 9월 마지막 매장을 닫고 도매와 온라인만 붙들고 있다가, 올해 2월 이 자리로 돌아왔다. 지상층은 카페, 지하는 교실. 플랫화이트 4.5파운드짜리 위에 하루 300파운드짜리 수업이 얹혀 있다.
1.자리는 런던 벨그라비아(Belgravia) 에클스턴 스트리트(Eccleston Street) 22번지, 빅토리아역에서 걸어 5분 거리다. 상호는 Workshop Cafe & Academy. 운영은 2011년 런던에서 문을 연 로스터 Workshop Coffee가 맡았다. 문 여는 시각은 평일 아침 7시, 주말은 9시.
2.이 회사는 로스터리와 카페로 출발해 매장을 여럿 굴리다가 방향을 틀었다. 원두를 볶아 다른 카페에 넘기는 도매와 온라인 판매에 힘을 줬고, 마지막 남은 매장을 2024년 9월에 닫았다. 손님을 직접 만나는 자리가 15개월 동안 하나도 없었던 것. 이번 건물에는 카페와 도매 사무실, 그리고 교육장을 한꺼번에 넣었다.
3.건물은 빅토리아 시대 붉은 벽돌 저택이고, 1층에 아치형 창 셋이 나란히 뚫려 있다. 창마다 초록 차양을 내리고 흰 글씨로 A Mark of Better Coffee를 박았다. 보도에는 금속 의자와 작은 원탁을 내놨고, 문 왼쪽 벽에 에클스턴 스트리트 표지판이 붙어 있다. 설계는 George Cosby Studio, 시공은 3Stories.

4.문을 열면 왼쪽 벽을 따라 흰 대리석 카운터가 길게 뻗는다. 바닥은 붉은색과 흰색을 번갈아 깐 체크 타일인데, 카운터 앞쪽 통로에만 깔고 홀 안쪽은 크림색 대형 타일로 바꿨다. 안쪽 벽 한 면은 붉은 테라코타 타일로 세웠고 그 앞에 냉장 진열장과 원두 선반이 붙는다. 좌석은 넷으로 갈린다. 창가 스툴, 홀 가운데 원탁, 안쪽 알코브, 그리고 보도 자리.

5.카운터 위 아치 선반에는 골이 진 유리문을 달고 그 안에 메뉴판을 넣었다. 왼쪽이 차, 오른쪽이 커피와 배치 브루. 카운터 상판에는 나무 원두 상자 넷이 올라가 있고, 상자마다 뚜껑에 산지 카드가 꽂힌다. 그 옆에 흰 드리퍼 둘, 왼쪽 끝에 검정 그라인더. 바리스타는 초록 앞치마 차림.

6.하우스 에스프레소는 Article이라는 블렌드이고, 곁에 싱글 오리진이 계절마다 바뀐다. 회사가 밝히는 원두 성향은 워시드 위주에 깨끗하고 단맛이 앞서는 쪽이다. 에티오피아·케냐·르완다·부룬디·우간다에 페루와 콜롬비아, 니카라과, 브라질까지 아홉 나라 소농과 오래 거래한다고 안내한다. 워시드 커피는 과육을 씻어 낸 뒤 말리니 발효 향이 옅고 산미의 윤곽이 또렷하게 남는다. 그 또렷함은 우유를 부으면 절반이 지워진다. 카운터에 드리퍼를 늘 걸어 두는 이유.

7.계단은 지하로 내려간다. 체크 타일이 그대로 따라 내려오는데 천장을 붉은색으로 칠해 지상층과 색을 뒤집었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짠 낮은 카운터가 벽을 두르고, 그 위에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 주전자가 줄지어 있다. 벽에는 Workshop At Home. 안쪽 방에는 긴 테이블과 의자 여섯, 벽걸이 화면 하나. 엘리베이터는 없다.

8.여기서 파는 건 수업. 가정용 에스프레소 3시간 95파운드, 필터 추출 3시간 95파운드. 매달 산지를 바꿔 여는 커핑은 2시간에 10파운드로 받는다. 자격 과정은 값이 다르다. 국제 스페셜티커피협회(SCA) 바리스타 기초와 추출 기초가 하루 300파운드, 추출 중급이 550파운드이고 여기에 등록료 45파운드가 따로 붙는다.

9.로스터에게 매장은 매출처이기 전에 증명이다. 도매만 하면 우리 원두로 뽑은 잔이 어떤 맛이어야 하는지를 보여 줄 자리가 없고, 온라인은 봉지만 보낼 뿐 그 봉지를 어떻게 쓰는지까지 따라가지 못한다. 15개월 동안 비어 있던 자리가 거기다. 거래처 카페의 바리스타를 우리 교실에서 가르치면, 원두 계약은 그 사람이 그 카페를 다니는 동안 계속 간다.

10.교실 옆에 가정용 장비와 원두를 세워 둔 배치도 같은 계산이다. 3시간짜리 수업을 듣고 나온 사람은 집에서 같은 걸 해 보고 싶어지고, 그 자리에서 250그램 봉지를 든다. 손님에서 학생으로, 학생에서 정기 구매자로 넘어가는 길이 이 건물 안에 다 들어와 있다. 층을 옮기는 데 걸리는 건 계단 하나.

11.에스프레소 3.5파운드, 롱블랙과 코르타도 4파운드, 플랫화이트와 카푸치노 4.5파운드, 라테 4.75파운드, 핸드드립 6파운드. 런던 커피 지수가 집계한 올해 8월 플랫화이트 중앙값은 3.5파운드. 여기서 1파운드가 더 붙는다. 우리 돈으로 8,300원과 6,500원의 차이.

12.그 1파운드보다 큰 차이는 지하에서 난다. 하루짜리 자격 과정 정원을 여섯으로 잡으면 교실 하루 매출이 1,800파운드. 같은 돈을 위층에서 벌려면 플랫화이트를 400잔 팔아야 한다. 런던의 독립 카페가 하루 200잔에서 300잔 사이를 오간다고 보면, 학생 여섯이 앉은 지하 방 하나가 지상층 하루치보다 크다. 좌석 회전도, 점심 피크도 필요 없다.
13.부동산 쪽에서 보면 배치가 더 선명해진다. 소매 임대료는 창과 보도에 붙은 앞면에 값을 매기고, 뒤로 갈수록 후하게 깎아 준다. 그 계산에서 지하가 가장 싼 칸이라 보통 창고나 화장실이 들어가는데, 여기는 뭘 넣었나. 이 회사는 런던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동네를 고른 다음, 그 건물에서 가장 싼 층에 가장 비싼 상품을 넣었다. 교육에는 창이 필요 없다.
14.로스터가 교육을 붙이는 방식 자체는 런던에서 오래된 것이다. 카페 뒤편에 훈련장을 두고 바리스타를 길러 온 집이 이 도시에 여럿 있고, 협회 인증 캠퍼스를 따로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 다른 점은 순서다. 카페가 먼저 서고 교육이 나중에 붙는 게 보통인데, 이 회사는 카페가 없는 상태로 도매를 굴리다가 교육과 카페를 같은 날 함께 열었다. 처음 안내한 평일 마감은 오후 4시였는데 지금은 저녁 9시까지 연다. 카운터 뒤 선반에 유리잔을 거꾸로 걸어 둔 것도 그래서다.

15.한 건물에 카페와 도매와 교실을 겹쳐 넣은 로스터가 15개월 만에 손님 앞으로 돌아왔고, 잔당 1파운드를 더 받는 위층보다 학생 여섯이 앉은 아래층이 하루 매출로 크다. 국내에서 이걸 하면 먼저 걸리는 건 지하층 그 자체다. 건축법상 지하는 채광과 환기 기준이 따로 붙고, 수업을 상시로 열려면 그 방의 용도가 근린생활시설 안에서 정리돼야 한다. 커피값에 얹을 수 없는 비용이 도면 단계에서 결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