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에 지은 일본식 관사의 들린 마룻바닥 위에서, 싱가포르에서 볶아 비행기로 실어 온 원두를 내린다. 싱가포르 커피 브랜드 Alchemist가 2026년 3월 타이베이 다안구(大安區)의 옛 관사 한 채에 매장을 열었다. 두 달 뒤 관사 6채가 모인 단지 전체가 문을 열었는데, 이 단지를 고치는 데 민간 회사가 1억 4,000만 대만달러(약 60억 원) 넘게 썼다. 그 돈은 입주 브랜드가 내는 사용료로 돌아와야 한다. 아이스 화이트 커피 한 잔에 180대만달러, 약 7,700원.
1.매장 자리는 항저우난루(杭州南路) 2단의 골목 안쪽. 지하철 구팅(古亭)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고,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음료 한 잔만 시키면 시간 제한 없이 앉을 수 있다. 5월 15일에는 이 매장이 속한 진딩 일본식 관사군(錦町日式宿舍群)이 「광짜이진딩(光在錦町)」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개장했고, 커피·무쇠 팬에 구운 팬케이크·교토식 두부 전골·북유럽 가구·레코드를 다루는 6개 브랜드가 관사를 나눠 쓴다.
2.Alchemist는 2016년 윌 리오(Will Leow)가 싱가포르 도심 업무지구에 낸 12㎡ 스탠드에서 출발했다. 싱가포르 매장을 11곳까지 늘린 뒤 2025년 6월 도쿄 아오야마(青山)와 아사쿠사(浅草)에 첫 해외 매장을 냈고, 그해 9월 말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에 들어왔다. 다다오청 매장은 둥근 금속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테이크아웃 위주 가게. 다안점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매장이고, 원두는 전부 싱가포르에서 볶아 비행기로 보낸다.

3.진딩은 일본 통치기에 이 일대를 부르던 동네 이름. 1920년대 중간 계급 관리를 위해 지은 목조 관사들은 전쟁 뒤 담배와 술을 전매하던 공매국(菸酒公賣局)으로 넘어갔고, 2007년 타이베이시 역사건축으로 등록됐다. 등록된 뒤에도 관사들은 벽돌 담장과 철문 뒤에 가려진 채 고층 아파트 사이에 끼어 있었다.


4.복원 공사는 2022년 7월에 시작해 4년 가까이 걸렸다. 검은 기와지붕과 비늘판을 덧댄 외벽, 땅에서 띄운 마룻바닥, 창호지 문을 원래대로 살렸고, Alchemist는 1930년 창틀 두 개를 매장 안에 그대로 남겼다. 들린 마루는 걸음마다 속이 빈 소리를 내고, 창호지를 한 번 거친 빛은 긴 공용 테이블 위로 고르게 퍼진다. 원목 가구 사이사이에 스테인리스 원판 탁자와 커피 찌꺼기를 재가공한 가구를 섞었고, 뒤편 툇마루 너머로 흰 자갈을 깐 마당이 열린다.


5.에스프레소는 블렌드 셋 가운데 고른다. 코코아와 견과 쪽으로 무겁게 가는 Dark Matter, 산미와 단맛을 맞춘 Equilibrium, 꽃향과 밝은 산미를 앞세운 Lumos. 핸드드립은 산지 철을 따라 네 가지를 돌리는데, 니카라과 누에바 세고비아(Nueva Segovia)의 파라이네마(Parainema) 품종 El Cipres는 오렌지 향 뒤로 흑설탕 단맛이 온다. 태국 치앙라이(Chiang Rai)의 Doi Pangkhon은 스타프루트와 금귤 같은 산미가 매끈한 질감에 실린다. 커피 열매 껍질을 말려 우린 카스카라 차에서는 말린 과일 단맛이 난다. 빵은 매장에서 굽지 않고 현지 베이커리와 함께 만든 8~9가지를 돌린다.

6.같은 해 한국 저가 커피 체인이 타이베이 중산구(中山區)에 낸 매장은 아메리카노를 45대만달러에 판다. Alchemist의 아이스 화이트 커피는 그 4배인 180대만달러, 핸드드립은 200~240대만달러. 그 차이를 치르고 받는 것은 잔보다 방. 대만 매체들은 이 매장을 「偽出國」, 비행기를 안 타고 외국에 온 기분이 드는 곳으로 소개하면서 음료 한 잔에 시간 제한이 없다는 점을 꼭 덧붙인다.

7.근처에 융캉제(永康街) 먹거리 골목이 있어 관광객은 이미 이 동네를 걷는다. 시가 벌여 온 「라오팡쯔 문화운동(老房子文化運動)」은 지금까지 문화재 26곳을 민간 돈으로 고쳐 문을 열게 했다. 그래도 한 단지에 들어가는 브랜드는 여섯뿐이라 자리가 귀하다. Alchemist는 단지 전체가 열리기 두 달 전에 먼저 문을 열었다.
8.창업자는 해외 진출을 두고 매장 수를 늘리기보다 의미 있는 매장을 내겠다고 말해 왔다. 도쿄에서 고른 자리도 관광객이 몰리는 아사쿠사와 패션 매장이 모인 아오야마였고, 아오야마점은 140㎡에 30석, 아사쿠사점은 200㎡에 70석이다. 직원은 전원 바리스타 자격을 갖춰야 한다. 다다오청 매장 메뉴판에는 영어뿐.

9.단지를 고친 곳은 저장매체 제조사 RITEK(錸德) 계열의 다러쓰원창(大樂司文創)이다. 시는 이 회사가 1억 4,000만 대만달러 넘게 들였다고 발표했고, 회사는 2억 대만달러 이상이라고 밝혔다. 우리 돈으로 60억~86억 원. 이 제도에서는 민간이 들인 복원비만큼 시에 낼 임대료를 깎아 주고, 운영사는 입주 브랜드의 사용료와 행사로 돈을 번다. 원래 계획의 약정 기간은 9년.
10.시가 발표한 1억 4,000만 대만달러만 9년에 나눠 거둔다고 치면 한 달에 130만 대만달러, 약 5,600만 원. 6개 브랜드가 똑같이 나눠 내면 한 곳에 21만 6,000대만달러, 약 930만 원. 실제 사용료는 공개되지 않았고, 이 계산에는 운영비도 이자도 빠져 있다. 복원비를 되찾는 데만 드는 최소선.
11.좌석은 40석으로 잡는다(추정, 공개되지 않았다). 시간 제한이 없으니 하루 2.5회전, 앉는 손님 한 명이 음료와 크루아상 한 개로 280대만달러를 쓰고, 여기에 테이크아웃 60잔을 더하면 하루 3만 9,000대만달러쯤 된다. 30일이면 116만 대만달러, 약 5,000만 원. 단지 복원비 한 달치에 조금 못 미친다.
12.비용 쪽에서 무거운 건 비행기. 볶은 원두를 싱가포르에서 항공편으로 받으니 현지에서 볶는 가게보다 원두 원가가 높다고 봐야 한다(추정). 대신 선반 매출은 좌석 수에 묶이지 않는다. 매장 선반에는 15종이 넘는 원두 봉지와 캡슐, 드립백, 카스카라 티백이 있고, 다 쓴 커피 찌꺼기로 만든 비누와 스크럽, 바디워시까지 판다. 시간 제한 없는 좌석이 회전을 늦추는 만큼 이 선반이 메워야 한다.


13.시 문화국은 앞서 양밍산(陽明山)의 옛 미군 숙소 단지를 같은 방식으로 되살렸다. 민간이 고치고 식음료로 사람을 부르는 방식에는 반발도 따른다. 개장 뒤 여야 시의원이 현장을 둘러보며 상업과 문화의 균형을 주문했고, 차이스핑(蔡詩萍) 문화국장은 보러 오는 사람이 없으면 역사건축을 알릴 길도 없다고 답했다.
14.여섯 브랜드 가운데 커피를 파는 곳이 둘. Alchemist 말고도 음악과 레코드를 다루는 Frisson과 손잡은 Sweet & Sour Coffee Wave가 같은 단지에 들어왔다. 운영사는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대를 나눠 단지를 돌리겠다고 밝혔고, 오전 9시에 문을 여는 Alchemist가 그 아침을 맡는다. 대만 역사건축 단지의 아침 손님을 싱가포르에서 날아온 원두가 부르는 모양새다.
15.싱가포르의 12㎡ 스탠드에서 시작한 커피 브랜드가 타이베이의 1930년 관사에 가장 큰 매장을 냈고, 관사 6채를 고친 1억 4,000만 대만달러는 운영사가 입주 브랜드의 사용료로 되찾아야 한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면 어디서 먼저 막힐까. 기간이다. 지자체 건물의 사용허가는 공유재산법상 5년 이내가 원칙이라, 60억 원을 들여 고칠 민간이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목조 문화유산에 커피 바를 넣으려면 소방 설비와 건축물 용도도 따로 맞춰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