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완차이(灣仔)에서 2년 가까이 닫혀 있던 1924년 전당포가 8월 17일 다시 문을 열었다. 손님이 물건을 내밀던 창살 달린 높은 계산대 안쪽에서 지금은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린다. 기한은 125일, 12월 19일까지. 이 커피집은 매출의 20%를 비용을 빼기 전 금액 그대로 자선단체에 넘긴다.
1.주소는 완차이 로드(Wan Chai Road) 91번지. 이 4층짜리 옛 상가 주택에는 80년 넘게 전당포 Chun On Pawn Shop(振安大押)이 있었다. 2024년 9월 3일 임대차 기간이 끝나 문을 닫았고, 찾아가지 않은 저당물은 헤네시 로드(Hennessy Road)에 있는 같은 집안의 다른 전당포로 옮겨졌다. 건물은 같은 해 홍콩 정부 자문기구가 매기는 3급 역사건축이 됐다.
2.다시 연 공간의 이름은 壹當, 영어로는 Project House. 기획과 운영은 지역 공간 프로젝트를 해 온 onebite Social이 맡고, 자금은 Lion Rock Heritage Foundation(活在山下基金)이 댄다. 1층 옛 계산대 자리에 사회적기업 Coffee BOATS가 들어섰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은 오전 9시부터, 금요일과 토요일은 정오부터 저녁 6시까지 열고 일요일은 쉰다. 넉 달 남짓한 기간 중 커피를 파는 날은 108일.

3.길에서 올려다보면 층마다 발코니가 인도 위로 튀어나와 있고, 그 아래마다 가게 이름 네 글자가 붙어 있다. 글자 뒤 바탕은 옛 동전 무늬를 넣은 모자이크 타일. 1층 외벽은 대리석을 붙였고 거기 시공사 이름과 여섯 자리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는데, 정부 평가서는 이 번호로 대리석 마감 시기를 1960년대로 본다. 위층 창 양옆에는 가시 돋친 부채꼴 방범 쇠살.

4.안으로 들어서면 발밑에 흰 육각 타일이 깔리고, 벽 아랫부분은 초록과 빨강 띠를 두른 노란 테라초다. 원래는 문 바로 앞에 나무 가림막이 서서 길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막았다. 지금은 치웠다. 가림막이 서 있던 자리 뒤로 방범 창살을 두른 높은 계산대가 나오고, 창살 안쪽 직원 구역을 올려다보면 위층 바닥을 받친 나무 장선과 보가 그대로 드러난다. 배경음은 턴테이블에 올린 칸토팝 LP.

5.원두는 세 산지에서 온다. 콜롬비아 나리뇨(Nariño)의 예수회 농장 Finca Villa Loyola에서 받은 카투라는 워시드와, 탄산가스 침용을 거친 내추럴 두 가지로 볶는다. 워시드는 산미가 선명하고 끝이 깨끗하게 떨어지는 쪽이고, 탄산가스 침용은 발효된 과일 향을 앞세우는 가공. 에티오피아 부르카 야도트(Burka Yadot) 협동조합의 내추럴과 태국 북부 카렌(Karen)족 농가의 티피카 허니가 그 사이를 채운다. 회사가 내건 문구는 「Coffee Based On a True Story」, 원두마다 산지 사연을 앞에 세운다.

6.사람들이 여기 오는 이유는 커피보다 방. 홍콩의 전당포는 들어가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곳이었고, 문 앞 가림막이 그 증거다. 그 방이 지금은 입장료 없이 열려 있다. 달마다 다른 글자를 써서 장부의 날짜를 가리던 암호판, 붓으로 쓴 전당표, 귀한 손님을 따로 들이던 통로의 줄로 여닫는 이중문이 전시물이 됐다. 옛 감정사 한 사람은 이 집에 맡겨진 가장 비싼 물건으로 옥 병풍을 꼽았다고 한다.

7.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곧 이 가게의 설명서. 원두는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 동네 어머니들이 볶는데, 교육생 20여 명 가운데 세 명이 로스터로 남았다. 바리스타는 Caritas Hong Kong이 훈련한 청년들이고, 드립백 포장은 정신건강 회복 중인 사람들의 보호 작업장이 맡는다. 회사는 2025년 Wah Yan College Kowloon 동문과 가톨릭 신자들이 투자자 10명으로 세웠고, B Corp 원칙을 걸었다.
8.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도 손님을 부른다. 12월 19일이 지나면 이 방은 다시 닫힐 수 있다. 다만 인파가 몰리는 곳은 아니다. 평일인 목요일에 찾아간 기자는 동네 주민 열두어 명이 드나드는 걸 봤다고 적었다. 위층은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열람실로 열고, 조리법을 서로 나누는 모임과 LP 감상회, 상영회를 돌린다. 시각장애인 단체가 안마를 해 주는 날도 있다.


9.20%라는 숫자가 이 가게의 계산을 정한다. 이익이 아니라 매출에서 떼는 돈이라, 원두값과 임금과 임대료를 내기 전에 먼저 나간다. 홍콩의 동네 카페는 보통 재료비로 25~30%, 인건비로 30% 안팎, 임대료로 15~25%를 쓰고, 세금 전에 남는 돈이 한 자릿수에 머문다(추정). 20%를 먼저 떼면 흔한 카페 한 곳의 이익을 통째로 내놓고도 모자란다.
10.이 계산을 받치는 건 임대료와 공사비다. 임대료는 재단이 시세보다 낮게 주선했다고 운영 쪽은 밝혔다. 공사비는 거의 들지 않았는데, 계산대와 창살과 타일이 원래 있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로스팅을 직접 하니 원두 원가도 낮다. 싱글 오리진은 100홍콩달러부터, 블렌드는 300~380홍콩달러, 드립백 6개 선물 상자는 250홍콩달러. 잔 커피보다 가져가는 물건에서 이익이 더 난다.
11.매출 규모는 크지 않다. 잔 커피를 40~50홍콩달러로 받고 하루 80잔을 판다고 치면 108일 동안 39만 홍콩달러쯤 된다(추정). 원두와 선물 상자를 더해도 50만 홍콩달러 안팎, 우리 돈 9,000만 원 선. 그중 20%인 10만 홍콩달러, 약 1,800만 원이 Caritas로 간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정오에야 문을 열어 하루 장사 시간이 6시간에 그친다.

12.홍콩에 전당포를 되살린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같은 완차이의 존스턴 로드(Johnston Road) 60~66번지에는 1888년부터 이어진 전당포 Woo Cheong Pawn Shop(和昌大押)이 있었다. 도시재생국(URA)이 2007년 건물을 고쳐 식당 The Pawn으로 바꿨고, 지금은 위층까지 식당과 바가 들어선 동네의 명소다. 그 전당포도 이번 건물과 같은 로씨 집안(羅氏家族)의 소유.

13.이번에는 방향이 반대. 공공기관이 사들여 영구 식당으로 바꾼 게 아니라, 건물을 1963년에 사들인 집안이 소유권을 쥔 채 넉 달을 빌려줬다. 3급 역사건축은 행정 등급일 뿐 법으로 철거를 막지 못한다. 12월 이후 이 건물이 무엇이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운영 쪽은 이 넉 달을 공간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알아보는 기간이라고 설명한다.
14.주인 집안은 지금도 헤네시 로드에서 전당포를 운영한다. 이 건물의 저당물이 옮겨 간 곳도 거기. 전당포를 접은 자리에 커피를 들인 것은 업종을 바꾼 결정이 아니라, 문 닫은 1층을 비워 두는 대신 다음 쓰임을 사람들 앞에서 시험하는 방식에 가깝다. 넉 달 뒤 저 창살 안에는 누가 서 있을까.
15.문 닫은 지 2년 된 전당포가 넉 달짜리 커피집으로 다시 열렸고, 그 커피집은 매출 50만 홍콩달러 안팎에서 20%를 떼어 자선단체에 보낸다(추정). 임대료가 거의 없고 인테리어를 새로 하지 않았다는 두 조건이 이 숫자를 가능하게 한다. 국내에서 근대 상가 건물 1층을 넉 달만 빌려 카페를 열려 해도 휴게음식점 영업신고는 똑같이 받아야 한다. 건축물대장상 용도가 근린생활시설이 아니면 신고가 나오지 않고, 오래된 점포는 화장실과 소방 설비를 갖추는 데서 비용이 먼저 불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