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이름을 가져온 커피 브랜드 Bacha Coffee가 6월 11일 도쿄역 앞 신마루노우치 빌딩(新丸の内ビルディング) 1층에 일본 2호점을 열었다. 반년 전 긴자에서 수백 명을 줄 세운 브랜드인데, 이번 매장에는 커피룸이 없다. 200가지가 넘는 원두와 드립백, 선물 상자만 판다.
1.1호점은 2025년 12월 11일 긴자(銀座) 5초메에 열었다. 3개 층을 합쳐 377㎡, 114평쯤. 1층은 원두 부티크와 테이크아웃 카운터, 2층과 3층이 커피룸이고 좌석은 전부 40석. 개점 날 수백 명이 줄을 섰고, 예약을 받지 않아 붐비는 시간에는 지금도 번호표를 나눠 준다. 운영 쪽은 2호점을 낸 이유로 긴자점의 좋은 반응을 들었는데, 그 2호점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다.

2.브랜드 주인은 싱가포르의 V3 Gourmet로, 차 브랜드 TWG Tea도 함께 거느린다. 일본 매장을 여는 쪽은 철도 회사 도큐(東急)의 외식 계열사 도큐 구르메 프런트(東急グルメフロント), 프랜차이즈 계약이다. 전 세계 매장은 16개 도시 45곳. V3 Gourmet 대표 타하 부크디브(Taha Bouqdib)는 앞으로 10년 동안 일본에 40~50곳을 내겠다고 Nikkei Asia에 말했다.
3.긴자점 문을 밀고 들어서면 발밑에 흑백 체크무늬 대리석이 깔려 있다. 천장은 조각한 시더 나무, 복도 벽은 사프란색, 기둥 아래로는 모로코 모자이크 타일인 젤리주(zellige)가 붙었다. 계단을 오르면 오렌지색 벨벳 의자와 흰 원탁이 놓인 커피룸이 나오고, 벽에는 금박 액자 속 초상화가 걸린다. 쟁반을 드는 직원은 검은 정장에 넥타이 차림.

4.커피는 잔이 아니라 포트로. 붉은 테를 두른 흰 잔에 1910이라는 연도가 찍혀 있고, 옆에 바닐라빈을 섞은 샹티이 크림과 설탕 막대가 따라온다. 원두는 예멘과 에티오피아, 자메이카, 하와이까지 35개국에서 온 100% 아라비카 200여 종. 산지 커피가 산미와 바디로 말한다면, 초콜릿이나 과일 향을 입힌 가향 커피는 포트 뚜껑을 여는 순간의 냄새로 말한다. 크림을 얹으면 쓴맛이 둥글어지고, 커피 한 잔이 디저트 한 접시를 겸한다. 포트 하나에 1,800엔을 받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5.1층 테이크아웃은 1,200엔부터. 모자이크 무늬를 입힌 컵을 쟁반 모양의 상자에 얹어 주고, 크림과 설탕 막대, 다시 쓰는 유리 빨대까지 함께 넣는다. 받아 든 손님이 그 쟁반을 들고 긴자 거리를 걷기가 조금 쑥스러웠다고 적은 후기도 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쟁반을 들고 걷는 그 손님이 곧 간판.

6.줄을 선 사람들이 결국 사 가는 건 커피보다 캔이다. 원두는 금박 로고를 찍은 캔과 봉투에 담기고, 계산을 마치면 직원이 리본을 묶어 선물로 싼다. 원두 가격은 6,900엔에서 시작해 5만 6,400엔까지 올라간다. 일본에는 남의 집이나 거래처를 찾을 때 선물을 들고 가는 데미야게(手土産) 관습이 있고, 긴자와 도쿄역 앞 사무실 거리는 그 선물을 사는 동네다. 이 캔은 과자 상자가 놓이던 자리에 들어간다.

7.South China Morning Post는 V3 Gourmet의 두 브랜드를 두고 손에 닿는 사치라고 불렀다. 수백만 엔짜리 가방은 못 사도, 명품처럼 포장한 캔 하나라면 산다는 계산. 1910이라는 연도와 마라케시라는 지명이 그 가격을 받친다. 커피룸의 대리석 바닥과 정장 입은 직원은 캔 가격을 믿게 만드는 무대에 가깝다.
8.커피룸에서 한 사람이 내는 돈. 포트는 대부분 1,800엔, 크루아상 두 개가 1,250엔이고, 1인 1품 이상 주문해야 하며 서비스료 10%가 따로 붙는다. 커피와 빵만 먹어도 3,300엔 남짓. 식사 접시는 3,300~4,950엔, 애프터눈 커피 세트는 6,500엔부터다. 방문 후기들이 적는 1인 지출도 3,000엔대가 가장 많다고 한다.
9.40석으로 하루에 버는 돈은 크지 않다. 11시에 열어 19시 30분에 마지막 주문을 받으니 영업은 8시간 반이고, 한 팀이 75분쯤 머물면 자리 하나가 하루 다섯 번 돈다. 자리의 80%가 찬다고 치면 하루 160명, 1인 3,500엔으로 56만 엔, 한 달이면 1,700만 엔 안팎이다(추정). 여기에 두 개 층의 임대료와 서빙 직원, 주방, 설거지가 전부 걸려 있다.
10.1층 부티크는 계산이 다르다. 12개들이 드립백 선물 상자가 4,400엔, 25개들이 상자가 8,800엔, 원두를 담는 캐니스터 하나가 3,500엔. 이 손님들은 자리를 차지하지도, 그릇을 남기지도 않는다. 원두 캔 하나 6,900엔이면 커피룸 두 사람 몫이고, 계산대 앞 줄은 커피룸 대기 줄보다 빨리 빠진다.

11.남는 돈도 부티크 쪽이 두텁다. 커피룸은 원두값이 잔값의 10%대에 그쳐도 인건비와 임대료가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가고(추정), 부티크는 캔과 포장에 원가가 들어도 계산대 직원 몇 명으로 돌아간다. 신마루노우치 빌딩 1층은 도쿄역 마루노우치(丸の内) 출구와 마주 보는, 도쿄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1층 가운데 하나다. 거기에 의자를 놓으면 평당 매출은 무엇에 묶일까. 커피룸의 회전 속도다.


12.이름의 뿌리는 마라케시(Marrakech)의 저택 다르 엘 바샤(Dar el Bacha)다. 마라케시 태수 타미 엘 글라위(Thami El Glaoui)가 살던 집으로, 브랜드는 1910년 이 저택에서 커피를 내렸다는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모로코 박물관재단이 2017년 저택 일부를 박물관으로 다시 열었고, 부크디브가 옛 커피룸을 손봐 2019년 Bacha Coffee로 문을 열었다. 첫 해외 매장은 같은 해 싱가포르 ION Orchard. 긴자점의 체크무늬 바닥과 젤리주 기둥은 이 저택 안뜰에서 가져온 모양.

13.서울은 다른 길로 갔다. 롯데백화점이 2023년 9월 한국 독점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2024년 8월 1일 청담동에 플래그십을 열었는데, 포트 하나가 1만 6,000원에서 48만 원까지 간다. 2025년 4월 10일 문을 연 롯데백화점 본점 3층 매장은 오히려 15석짜리 커피 바를 붙였다. 백화점 안에서는 의자가 손님을 층에 붙잡아 두는 장치가 되고, 도쿄역 앞 1층에서는 회전을 늦추는 걸림돌.
14.이 브랜드에서 커피룸은 매장이라기보다 광고. 긴자 두 개 층의 40석이 줄을 만들고, 그 줄과 체크무늬 바닥이 사진이 되어 퍼지고, 사진을 본 사람이 출장길에 도쿄역에서 캔을 산다. 부크디브가 말한 50곳 가운데 몇 곳이 커피룸을 가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운영 쪽은 다음 출점을 두고 브랜드 본사와 일본 시장 상황을 보며 정하겠다고만 했다.
15.긴자에서 40석 커피룸으로 줄을 세운 Bacha Coffee는 반년 만에 도쿄역 앞 1층에 의자 없는 원두 매장을 냈고, 그곳에서는 4,400엔짜리 드립백 상자 하나가 커피룸 한 사람의 지출을 넘는다. 국내에서 좌석 없이 원두와 선물 상자만 파는 매장을 내면 완제품 캔을 파는 동안은 간단하지만, 원두를 무게로 덜어 담거나 손님 앞에서 갈아 파는 순간 식품소분업이나 즉석판매제조가공업 신고를 따져야 한다. 백화점과 역 건물 1층은 수수료나 임대료가 매출에 연동되는 계약이 많아, 캔 하나의 원가율을 먼저 세워 두지 않으면 부티크도 남는 게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