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 해안 도시에서 40년 넘게 닫혀 있던 극장이 이달 호텔로 다시 열렸다. 객석의 경사를 걷어낸 자리가 로비가 됐고, 객실 등급 이름은 좌석표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복원에 든 돈이 2,000만 유로, 간판은 힐튼의 소프트브랜드를 빌렸다. 그런데 이 도시의 2월 객실단가는 8월의 40%다.
1.2026년 7월 8일, 스페인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án) 우르비에타 거리(Calle Urbieta) 61번지. 1914년에 문을 연 극장 겸 영화관 Palacio Bellas Artes가 객실 81실의 4성 호텔로 바뀌었다. 상영관이 문을 닫은 해가 1982년이니 빈 채로 보낸 시간이 40년을 넘긴다. 사업 주체는 이 도시 회사 SADE, 투자액 2,000만 유로, 운영 간판은 Curio Collection by Hilton.
2.원설계자는 라몬 코르타사르(Ramón Cortázar), 이 지역 근대건축의 문법을 만든 사람이다. 복원 설계는 이그나시오 케마다(Ignacio Quemada)가 맡았고, 시가 허가를 내준 2021년부터 공사가 4년 넘게 이어졌다. 무너져 있던 돔을 다시 쌓고 파사드를 손봤다. 인허가 도면의 객실은 92실이었는데 최종 81실로 줄었고, 그사이 지열과 공기열과 태양광이 설비 목록에 들어왔다.

3.평면에서 먼저 눈에 걸리는 건 바닥이다. 극장 객석은 무대 쪽으로 기울어 있고, 그 경사를 걷어내 평평하게 만든 자리가 지금의 로비. 객실 등급 이름도 좌석표에서 가져왔다. 전 층에 깔린 Gallery, 위쪽 두 개 층을 쓰는 Amphitheatre, 발코니가 붙는 30㎡의 Grand Stalls, 40㎡의 Front Box와 Corner Box, 돔 바로 아래에 57㎡ 테라스를 단 Cupula Suite. 좌석 등급이 객실 등급이 됐다.

4.대공간을 객실로 자르면 유닛 반복이 무너진다. 극장은 기둥을 최대한 줄이려고 지은 건물이라 창의 위치가 층마다 어긋나고, 그래서 방마다 평면이 다르다. 판박이 객실 40개를 찍어 내는 신축과 견줘 공사비가 뛰는 지점이자, 동시에 소프트브랜드가 팔 물건이 만들어지는 지점.


5.레스토랑 Lotu는 벨벳 커튼 뒤에 있다. 로비 층에 제빵실을 따로 두고 빵과 페이스트리를 매일 굽는데, 아침의 그 냄새는 원가표에 잡히지 않고 리뷰에만 잡힌다. 방에는 그림이 한 점씩 걸린다. 바스크 작가 란데르 안도네기(Lander Andonegi)가 81점을 새로 만들어 한 방에 하나씩 넣었고, 연작 제목이 ‘Creation: Light, Movement and Gaze’.

6.여기서부터 숫자다. 기준선부터 깔면, 바스크 통계청 Eustat 집계로 2026년 2월 산세바스티안의 평균 객실단가는 96.0유로였고 같은 달 기푸스코아(Gipuzkoa)의 객실 기준 가동률이 53.4%였다. 2025년 8월엔 산세바스티안 단가가 238.1유로, 바스크 전역 가동률 86%. RevPAR로 옮기면 2월 51유로 대 8월 205유로. 네 배다.
7.이하 요금과 가동률, 매출은 전부 추정이며 운영사 공표치가 아니다. 도시 최상단에 서는 4성이니 연평균 단가를 250유로, 개업 1년 차 가동률을 62%로 잡으면 RevPAR는 155유로. 81실이 만드는 객실 연매출이 458만 유로, 우리 돈 78억원 안팎이다(1유로 1,700원 가정). 객실 하나가 한 달에 800만원을 번다는 계산.

8.비객실 쪽에는 이름을 하나 걸었다. Lotu의 주방을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스(Andoni Luis Aduriz)가 맡는다. 미쉐린 2스타 Mugaritz를 오래 굴려 온 사람이 20세기 고전 요리를 다시 쓰는 자리. 도심 4성의 식음 비중을 25~30%로 잡으면 총매출 630만 유로에 식음이 175만 유로쯤 붙는다(추정). 성급 호텔이라면 웨딩과 기업 연회가 만들었을 자리를, 여기서는 셰프 이름과 제빵실이 대신한다.

9.유통에서 계산이 갈린다. Curio는 가입비 7만 5,000달러에 객실 총매출의 4%를 로열티로 가져가고, 예약·마케팅·로열티 프로그램 분담금을 얹으면 실부담이 10% 안팎으로 알려진다. 458만 유로 기준 연 46만 유로. 그 대신 호텔 9,200곳과 회원 2억 5,000만 명이 걸린 예약망에 올라탄다. 부등호를 뒤집어 보면 OTA 수수료를 17%로 잡을 때 OTA 의존도가 59%를 넘는 호텔은 소프트브랜드가 더 싸다. 간판을 빌릴지 독립으로 갈지는 취향이 아니라 이 한 줄로 결정된다.
10.투자 쪽을 보면, 2,000만 유로를 81실로 나눠 객실당 24만 7,000유로. 우리 돈 4억 2,000만원으로, 국내 신축 비즈니스호텔의 객실당 사업비를 훌쩍 넘긴다. 헤리티지 복원은 원래 이 자리에서 값을 치른다. GOP 마진 35%를 얹어 연 220만 유로가 남는다고 보면 단순 회수에 9년(추정), 계절성이 만드는 겨울의 적자 구간은 그 안에 이미 들어 있다.

11.왜 팔리나. 이 도시는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74회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를 연다. 인구 19만의 도시가 세계 A급 영화제를 굴리고, 미식으로도 이름이 붙어 있다. 그 도시에서 옛 영화관이라는 이력은 요금표에 바로 얹힌다. Curio라는 소프트브랜드가 파는 게 애초에 브랜드의 균질함이 아니라 물건의 개별성이고, 여기서는 40년 닫혀 있던 스크린이 그 개별성의 재료가 된다.
12.두 번째 이유는 방이다. 81개가 전부 다르고 그림도 전부 다르다. 체인 호텔이 균질함으로 신뢰를 사는 자리에서 이쪽은 불균질함을 판다. 다음에 오면 다른 방에 묵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재방문의 이유가 되는데, 이건 신축 판박이 객실이 절대 못 만드는 종류의 반복 수요.

13.여기까지가 밝은 쪽이고, 이 복원의 이력은 곱지 않다. 소유주 쪽은 오래 철거를 원했고, 시가 건물에 씌운 보존 규정 때문에 쓸 수가 없다며 1,370만 유로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패소했다. 지금의 복원안은 그 소송이 끝난 다음에 나온 그림이다.
14.유산 단체 Hispania Nostra는 이 계획을 ‘위장 철거’라 부르며 원 구조의 20%만 남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영화제 개막식에서 사회자가 이 극장이 관광 숙소가 될 참이라고 농담하자 객석의 반응이 박수와 침묵으로 갈렸다고 현지 매체는 전한다. 같은 시기 이 도시의 주택 가격은 ㎡당 5,554유로로 최고치를 찍었다. 이야기가 요금을 만든다는 문장의 뒷면에는, 그 이야기의 원본을 지운 자리에서 요금이 나온다는 사실이 붙어 있다.

요약
40년 닫혀 있던 1914년 극장이 81실 호텔로 다시 열렸고 좌석 등급이 그대로 객실 등급이 됐다. 남는 숫자는 이 도시의 RevPAR가 2월 51유로, 8월 205유로다. 네 배의 계곡을 열두 달 고정비로 건너는 게 이 사업의 본체이고, 객실당 4억 2,000만원을 태운 회수 계획이 그 위에 얹혀 있다. 같은 걸 국내에서 하려면 뜻밖에 인허가에서는 걸리지 않는다. 건축법 시행령 제14조의 시설군을 보면 공연장이 속한 문화 및 집회시설군이 숙박시설이 속한 영업시설군보다 위에 있어서, 극장을 호텔로 바꾸는 건 허가가 아니라 신고 대상이다. 문제는 그 뒤에 줄지어 선다. 숙박시설로 쓰는 층의 바닥면적 합계가 600㎡를 넘으면 스프링클러가 전면으로 따라붙고, 주차 대수와 정화조 용량은 새 용도로 다시 산정되며, 영업은 공중위생관리법 숙박업 신고나 관광진흥법 호텔업 등록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대공간에 층을 끼워 방을 자르는 순간 구조 보강이 시작되는데, 극장 컨버전의 공사비가 신축을 넘기는 이유의 대부분이 거기서 나온다. 도면보다 구조기술사가 먼저인 종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