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나빌리(Navigli)의 Aethos Milan이 올해 전면 개보수를 마치고 5성 등급을 받았다. 방은 35개, 1박 295유로부터. 연회비는 650유로에서 2,500유로까지 세 갈래로 따로 판다.
1.밀라노 운하 지구 초입, 피아차 XXIV 마조(Piazza XXIV Maggio) 8번지에 방 35개짜리 호텔이 있다. Aethos Milan이라는 이름으로 2023년 4월에 문을 열었고, 올해 안을 통째로 뜯어고쳐 다시 열면서 5성 등급을 받았다. 손댄 곳은 두 군데. 객실을 다시 꾸미고, 회원만 쓰는 공간을 넓혔다.
2.눈여겨볼 건 이 호텔이 방과 회원증을 따로 판다는 것이다. 숙박은 하룻밤 295유로부터 시작하고, 회원증은 1년 단위로 650·1,800·2,500유로 세 종류. 가장 비싼 등급은 한 달에 240유로꼴. 회원은 밀라노 사람이든 여행자든 될 수 있고 등급에 따라 다른 나라 지점까지 드나든다고 호텔은 안내한다.

3.건물은 카사 디 링기에라(casa di ringhiera). 19세기 밀라노 노동자들이 살던 공동주택 유형으로, 안뜰을 가운데 두고 층마다 난간 복도가 한 바퀴 돌며 각 집의 문이 그 복도로 열린다. 계단실을 따로 두지 않으니 같은 면적에 세대가 더 들어가고, 부엌과 화장실은 복도 끝에 모아 여럿이 나눠 썼다. 밀라노가 가난하던 시절의 평면.

4.이 평면이 작은 호텔에 유리한 이유는 단순하다. 방이 복도를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고 복도가 이미 바깥 공기에 열려 있어서, 방 하나를 고치려고 층 전체를 닫을 일이 없다. 객실은 23㎡짜리 디럭스부터 35㎡ 스위트를 거쳐 가장 큰 방이 75㎡. 방마다 가구가 다르고, 발코니가 붙는 방도 여럿.

5.지붕 밑 방에 묵으면 들보가 머리 위로 비스듬히 지나가고, 천창 한 칸으로 들어온 빛이 자주색 카펫 위에 네모를 그린다. 낮에는 그 네모가 바닥을 천천히 건너가고, 해가 지면 벽등 몇 개만 남아 청록색 벽이 검게 내려앉는다. 밖에서 트램이 지날 때 창틀이 아주 약하게 운다. 운하 지구 한복판에 놓인 건물이라 완전한 정적은 애초에 상품이 아니고, 대신 낮은 층고와 두꺼운 벽돌이 소리를 눅인다.

6.회원이 쓰는 자리와 손님이 자는 층은 겹치지 않는다. 테크노짐(Technogym) 기구를 들인 운동실과 요가 공간, 코워킹으로 쓰는 테라스가 회원 전용이고, 칵테일 바 The Doping과 지중해식 식당은 투숙객·회원·동네 손님이 함께 쓴다. 식당 안쪽에 회원만 앉는 자리가 따로 있다고 한다. 낮에는 노트북을 편 사람들이 앉고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술을 판다.

7.객실이 버는 돈부터. 밀라노 호텔 시장은 올해 초 가동률 74.2%에 평균 객실단가 224유로를 기록했다. 5성 부티크이니 시장 평균보다 높게 잡아 단가 350유로, 가동률 70%로 놓으면 방 35개가 1년에 약 313만 유로를 번다(추정). 1유로를 1,600원으로 치면 50억 원.
8.회원 수는 공개하지 않는다. 세 등급을 섞은 평균 회비를 1,500유로로 놓고 회원이 500명이라 가정하면 1년에 75만 유로, 12억 원이 들어온다(추정). 객실 매출의 4분의 1이 안 되는 금액이라 작아 보이지만, 이 돈은 손님이 오든 안 오든 봄에 이미 통장에 들어와 있다. 성격이 다른 돈.
9.밀라노는 계절을 심하게 탄다. 2월 패션위크와 4월 가구박람회, 9월 두 번째 패션위크에 도시가 가득 차고 8월에는 현지인이 빠져나가 텅 빈다. 올해는 동계올림픽까지 겹쳐 2월 평균 객실단가가 319유로, 개막식 밤에는 552유로까지 올랐다고 STR은 집계한다. 이런 도시에서 1년 치를 미리 받는 회비는 비수기 인건비를 붙들어 준다.

10.성급 호텔이라면 이 자리를 연회장이 맡는다. 결혼식과 기업 행사로 비수기 주말을 채우고, 그 매출이 객실 밖 수입의 대부분을 이룬다고들 한다. 방이 35개뿐인 건물에는 연회장을 넣을 면적이 없다. 대신 봄마다 갱신되는 회원 명단이 그 자리에 놓였다. 비워 두면 난방비만 나가는 연회장과 달리, 명단은 놀려도 돈이 안 든다.
11.공짜는 아니다. 회원에게는 그룹 전 지점 객실을 최소 15% 깎아 주는 혜택이 붙는다. 회원이 늘수록 할인 받는 투숙객이 늘고 평균 객실단가는 그만큼 내려간다. 회비로 받은 돈의 일부를 객실 단가에서 되돌려주는 구조. 어느 쪽이 더 큰지는 회원 구성에 달렸고, 그걸 공개하는 회원제 호텔은 없다.
12.그래도 이 구조가 서는 건 로비에 앉는 사람이 달라서다. 보통 호텔 로비는 투숙객이 체크인하고 지나가는 자리라 하루 대부분 비어 있다. 여기서는 아침에 운동하러 온 동네 회원이 오고, 낮에는 테라스에서 일하는 사람이 앉고, 저녁에는 술을 마시러 온 밀라노 사람이 채운다. 같은 면적을 하루에 세 번 판다.

13.회원제 숙소의 원형은 1995년 런던에서 시작한 Soho House. 갈리는 데는 소유 구조다. Aethos를 굴리는 쪽은 호텔 회사가 아니라 10억 유로를 운용하는 부동산 투자사 Limestone Capital이고, 이 브랜드는 투자사가 사들인 건물에 얹는 운영 껍데기에 가깝다. 사르데냐 64실, 움브리아, 발레다오스타, 마요르카, 포르투갈 에리세이라, 런던 쇼디치까지 일곱 곳을 이런 식으로 채웠다.
14.브랜드는 1억 달러를 받아 2년 안에 다섯 곳을 더 연다고 밝혔다. 여기서 회비의 값이 달라진다. 지점이 하나뿐이면 연 2,500유로짜리 전 지점 회원권은 팔기 어렵다. 열두 곳이 되면 어떨까. 같은 회비가 유럽 열두 도시 출입증이 된다. 객실을 늘리는 대신 회원 명단을 늘리는 확장이라, 이 그룹은 건물을 한 채씩 작게 사도 된다.

15.위험은 명단 자체에 있다. 객실은 손님이 매일 새로 오지만 회원은 1년에 한 번 갱신 여부를 결정하고, 그 결정이 몰리는 달에 현금이 한꺼번에 흔들린다. 운동실이 붐비면 운동하러 온 회원이 떠나고, 바가 조용하면 저녁을 보러 온 회원이 떠난다. 방 35개를 채우는 일보다 회원 500명의 마음을 붙드는 일이 더 까다로울 수 있다. 첫 갱신 철은 내년 봄.

밀라노 운하 지구의 옛 노동자 공동주택은 방 35개짜리 5성 호텔로 고쳐졌고, 여기에 1년 650유로에서 2,500유로짜리 회원증이 따로 붙었다. 회원 500명이면 1년에 75만 유로가 성수기 전에 미리 들어온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면 그 선불금이 그대로 남지 않는다. 방문판매법은 1개월 이상 계속 공급하는 계약을 계속거래로 보고 소비자가 언제든 해지할 수 있게 해 두었고, 해지하면 남은 기간분을 돌려줘야 하며 위약금도 법이 정한 한도를 넘지 못한다. 헬스장 연회비 환불 분쟁이 이 조항으로 정리된다. 운동실과 요가 공간을 회원제로 돌리면 체육시설법상 신고 대상이 되는 것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