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상장사 에라완 그룹이 저가 호텔 브랜드 홉인의 한국 첫 지점을 명동에 열었다. 새로 짓지 않고, 2015년에 문을 연 97실 비즈니스호텔을 고쳐 간판을 바꿨다. 첫 온전한 분기에 이 97실은 태국 홉인 방 500개가 버는 만큼 벌었다.
1.3월 20일, 서울 중구 충무로역과 을지로3가역 사이에 홉인 서울 명동(HOP INN Seoul Myeongdong)이 문을 열었다. 건물은 2015년 4월에 개관한 스테이비 호텔 명동(StayB Hotel Myeongdong)으로, 지상 14층과 지하 1층에 방은 97개. 11년 된 호텔을 고쳐 이름을 바꿨을 뿐 방 수는 그대로. 운영은 태국 에라완 그룹(The Erawan Group)의 저가 호텔 부문이 맡는다.
2.에라완은 방콕의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Grand Hyatt Erawan)을 가진 태국 증권거래소 상장 호텔 투자사다. 홉인은 2014년 방콕에서 시작해 필리핀과 일본으로 나갔고, 한국은 네 번째 나라. 6월 말 기준 네 나라에 방 8,042개를 두었고, 2030년까지 150곳을 채우겠다고 밝혀 왔다.

3.방은 일곱 가지로 나뉜다. 가장 작은 스탠더드 더블이 15㎡, 킹이 18㎡, 트윈이 21㎡이고, 3인실은 23㎡와 27㎡ 두 가지, 전망 객실이 32㎡, 복층 가족실 49㎡. 태국 홉인은 20㎡ 안팎의 방을 한 건물에 79실 이하로 넣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왔다. 서울에서는 이미 서 있는 건물의 벽과 창을 그대로 받다 보니 방 크기가 층과 위치마다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4.1층에는 24시간 프런트와 라운지, 짐 보관소, 작은 정원을 두었고 옥상은 테라스로 열었다. 스테이비 시절 지하에 있던 식당은 다시 열지 않았다. 호텔 안에서 파는 건 방 하나뿐이고, 끼니는 문밖 명동과 을지로 골목의 몫.

5.로비 돌바닥 한가운데를 남색 벤치 소파 하나가 가르고, 안쪽 프런트 뒤로 무지개 곡선 로고가 빛난다. 방에 들어가면 회색 카펫과 흰 침구 너머 TV 화면에 같은 파란 로고가 떠 있다. 태국 홉인 로비 벽을 칠한 그 파랑. 해가 지면 옥상 테라스 난간 너머로 을지로 사무 빌딩 창이 층층이 켜진다. 어느 나라에서 묵어도 같은 방이 나온다는 약속, 홉인이 내건 문구 「Consistency is Yours」가 그 뜻이다.

6.에라완이 8월에 낸 2분기 경영 보고서에 한국 숫자가 처음 따로 잡혔다. 4월부터 6월까지 홉인 한국의 매출은 2,700만 바트, 1바트를 42원으로 치면 약 11억 3,000만 원. 홉인 전체 방의 1.2%인 97실이 부문 매출의 5.1%를 냈고, 회사는 문을 연 뒤 첫 온전한 분기에 기대를 넘겼다고 적었다.
7.방 하나가 하루에 번 돈으로 바꿔 보면 차이가 더 크다. 분기 매출을 객실 수와 91일로 나누면 한국은 3,059바트, 약 12만 8,000원. 같은 계산으로 일본은 2,534바트, 필리핀은 673바트, 태국은 579바트로 2만 4,000원 남짓. 명동 방 하나가 태국 방 5개 남짓을 번다.
8.나라별 가동률과 방값은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 3~4성급 호텔의 올해 7월 가동률이 88~90%였으니, 4~6월 명동을 85%로 잡으면 평균 객실단가는 15만 원 안팎이 나온다(추정). 기존 홉인 전체의 2분기 평균 객실단가는 928바트, 약 3만 9,000원이었다. 같은 간판과 같은 파란 로고를 단 방이 서울에서는 4배 가까운 값을 받는다. 가동률을 가정해 뽑은 숫자라 폭은 넓게 봐야 한다.
9.들어간 돈은 크지 않다. 브랜드를 처음 낼 때 에라완이 밝힌 태국 홉인의 한 실당 투자비는 72만 바트, 지금 환율로 약 3,000만 원. 한국 법인은 2025년 9월 25일 자본금 30억 원으로 세웠는데, 97실로 나누면 한 실에 3,100만 원 남짓. 올해 2월 을지로의 297실 U5 호텔은 한 실당 약 4억 원에 팔렸다. 30억 원으로는 명동 호텔을 살 수 없으니, 건물은 빌리고 개보수와 운영만 맡은 구조로 보인다(추정).

10.빌린 건물에 식당 없이 방만 파는 호텔은 비용표가 짧다. 주방과 홀 인력, 식자재, 조식 뷔페를 차릴 면적이 통째로 빠진다. 증권사 보고서 기준 홉인 부문의 2분기 EBITDA 마진은 37.8%. 성급 호텔이었다면 객실 밖 매출은 조식과 연회, 로비 바에서 나왔을 텐데 이 호텔은 그 몫이 0에 가깝고, 대신 그걸 차리는 인력과 면적의 비용도 0에 가깝다.
11.손님은 거의 전부 외국인이다. 에라완은 한국 홉인 투숙객의 95% 이상이 해외 여행자라고 밝혔고, 2분기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은 중국·일본·대만 순이었다. 태국 홉인은 방 판매의 70% 이상이 자국 출장객, 필리핀은 투숙객의 80% 이상이 내국인이다. 같은 방을 팔면서 나라마다 손님은 딴판.

12.이 방은 왜 잘 팔릴까. 답은 서울의 공급 쪽에 있다. 서울시가 올해 2분기까지 승인한 호텔 사업계획 249건 가운데 신축은 24건뿐이고, 나머지는 기존 건물을 고치거나 용도를 바꾼 것이다. 2023년 이후 서울에 새로 나온 객실은 한 해 1,000실 수준.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1,893만 명에서 올해 2,356만 명으로 늘 거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새로 지을 땅과 돈이 부족한 시장에서는 이미 허가받은 방을 쥔 쪽이 먼저 판다.
13.스테이비가 문을 연 2015년은 2012년 시행된 관광숙박시설 확충 특별법으로 명동·을지로 일대에 비즈니스호텔이 잇달아 들어서던 때다. 그 호텔들은 2017년 중국 단체관광이 끊기자 가장 먼저 흔들렸다. 10년 뒤 그 방들이 해외 체인이 한국에 들어오는 통로가 됐다. 땅을 사고 허가를 받고 짓는 몇 년을 건너뛰고, 간판과 예약 시스템만 바꿔 첫 분기부터 매출을 냈다.
14.일본에서는 한 단계 더 나갔다. 에라완이 올해 발표한 도쿄의 다섯 번째 일본 지점(69실)은 일본 파트너가 건물을 짓고 홉인이 빌려 운영한다. 개관은 2028년 1분기 예정. 태국에서는 땅을 사서 직접 짓던 회사가 해외에서는 남의 건물을 빌리는 쪽으로 옮겨 가고 있고, 서울 명동은 그중에서도 이미 영업하던 호텔을 받은 경우다.


15.위험도 같은 곳에서 온다. 일본 홉인은 투숙객의 80% 이상이 해외 여행자인데, 2분기 일본에 온 중국인이 58% 줄자 바트 기준 매출이 11% 빠졌다. 한국 홉인의 해외 손님 비중은 그보다 높은 95%다. 2분기 한국 외국인 입국은 600만 명으로 20% 늘었고 그 1위가 중국이었다. 입국 통계가 방향을 틀면, 이 97실에는 대신 채워 줄 내국인 손님이 거의 없다.

태국 에라완 그룹이 2015년에 개관한 명동의 97실 호텔을 고쳐 저가 브랜드 홉인의 한국 첫 지점을 열었다. 식당을 다시 열지 않고 방만 팔았는데, 첫 온전한 분기 매출이 2,700만 바트(약 11억 원)로 방 하나가 하루 12만 8,000원꼴을 벌어 태국 홉인 방의 5배를 넘었다. 새 호텔을 짓기 어려운 서울에서 이미 등록된 방을 받아 간판만 바꾸는 방식이 첫 분기부터 통했다. 국내에서 기존 관광호텔을 넘겨받아 새 이름으로 열려면 운영 주체의 호텔업 등록부터 정리해야 하는데, 관광진흥법 제8조는 사업이나 시설 전부를 넘겨받은 쪽이 1개월 안에 지위 승계를 신고하도록 정해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