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수도 발레타에서 16세기 기사의 저택이 방 22개짜리 호텔이 됐다. 표준 객실이 조식 포함 1박 400유로부터다. 그런데 이 호텔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알려진 건 객실이 아니라 1층 식당이다.
1.발레타(Valletta) 올드 베이커리 스트리트(Old Bakery Street) 41~47번지의 Romègas Hotel. 방은 22개. 복원 설계는 EM Architects, 실내는 몰타의 가족 디자인 회사 Camilleri Paris Mode가 맡았고, 독립 호텔 연합 Preferred Hotels & Resorts의 L.V.X. Collection에 이름을 올렸다. 1층 식당 Caviar & Bull의 개업일은 8월 28일.

2.건물은 16세기 몰타 기사단 함대를 이끈 프랑스 출신 기사 마튀랭 로메가스(Mathurin Romègas)가 말년에 지내던 저택이다. 호텔 이름은 그의 성. 개업은 몇 번 밀렸다. 2025년 봄으로 처음 알렸다가 2025년 6월, 2026년 봄으로 늦춰졌고, 홍보 대행사는 올해 늦여름으로 다시 안내했다. Wallpaper*는 10월 개업 호텔 목록에 이 호텔을 올렸다.

3.방 22개를 객실 타입 10개로 나눴다. 일반 객실이 6종, 스위트가 4종이니 한 타입에 평균 두 방꼴. 새로 짓는 호텔이라면 같은 크기의 방을 복도 양쪽에 찍어 내겠지만, 450년 가까이 된 석조 벽은 방마다 폭과 창 위치가 다르다. 같은 이그제큐티브 객실도 발코니가 있느냐 없느냐로 타입이 갈린다.

4.몰타 석회암은 갓 깎으면 꿀색이고 손으로 문지르면 가루가 묻어날 만큼 무르다. 그 벽 안쪽에 원목 판을 허리 높이까지 두르고, 바닥에는 대리석 조각을 박아 간 테라초를 깔았다. 창밖에는 발레타 건물마다 붙은 나무 상자형 발코니가 튀어나와 있는데, 그 안에 앉으면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바로 발밑에서 올라온다. 이 도시에서 그 상자 하나가 객실 타입을 가르고 요금을 올린다.

5.방 안 계단으로 위층과 잇는 객실이 있고, 스위트 가운데 하나는 주니어 스파 스위트라 이름 붙였다. 지붕에는 수영장을 올렸다. 욕실은 대리석 마감. 객실 면적은 공개하지 않았다.


6.표준 객실은 조식 포함 1박 400유로부터 시작한다. 몰타호텔식당협회(MHRA)와 Deloitte의 조사로 2025년 상반기 몰타 5성 호텔의 평균 객실단가는 201.4유로였다. 성수기인 2분기만 떼어도 237.7유로. 가장 싼 방이 벌써 5성 평균의 두 배쯤.
7.스위트를 섞은 평균 객실단가를 480유로로 잡고, 몰타 5성의 상반기 가동률 65.6%와 2분기 78.4% 사이인 68%를 대 본다. RevPAR는 약 326유로, 1년 객실 매출은 약 262만 유로가 나온다. 1유로를 1,600원으로 치면 42억 원쯤 된다(전부 추정).
8.1층 식당 Caviar & Bull은 몰타 셰프 마빈 가우치(Marvin Gauci)의 간판이다. 본점은 몰타 섬 북쪽 해안의 세인트 줄리언스(St Julian's)에 있고 부다페스트에도 같은 이름의 가게를 냈다. 발레타 매장의 주방은 가우치와 16년을 일한 세르히 우에르가 마린(Sergi Huerga Marin)이 맡고,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모두 낸다.

9.성급 호텔이었다면 식음료가 전체 매출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을 맡았을 테고, 그 돈은 호텔이 직접 고용한 주방과 연회장에서 나왔을 것이다. 방 22개로는 그 주방을 못 먹여 살린다. 조식 손님은 방 22개에 가동률 68%, 방당 1.8명을 곱해 하루 27명 안팎(추정). 그러니 이 식당은 투숙객이 아니라 바깥 손님으로 버텨야 하고, 그 손님을 부르는 게 셰프의 이름이다. 호텔과 식당 사이의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10.발레타에서는 이게 처음이 아니다. 17세기 저택을 고친 25실 호텔 Rosselli AX Privilege는 지하 식당 Under Grain으로 미쉐린 별 하나를 7년째 지키고 있다. 성벽 위 23실 호텔 Iniala Harbour House는 옥상에 영국 셰프 사이먼 로건(Simon Rogan)의 ION Harbour를 들였고, 이 식당은 몰타에서 유일한 미쉐린 2스타다.
11.인력은 어떨까. 몰타 숙박·외식 노동자의 60%쯤이 외국인이고 업계는 사람 구하기를 가장 큰 걱정으로 꼽는다. 셰프 쪽이 주방 팀을 통째로 데려오면, 호텔은 객실과 프런트 인력만 뽑으면 된다(추정).

12.발레타는 1566년 성벽부터 쌓고 그 안에 바둑판처럼 길을 낸 도시이고, 1980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면적 0.61㎢에 주민은 5,000명 남짓. 여행객은 해변 리조트가 늘어선 슬리에마나 세인트 줄리언스에 묵고 낮에만 성벽 안을 걷다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저녁 식탁을 성벽 안에 차려 두면, 그 저녁을 먹으러 온 사람이 위층에서 자고 갈 수 있다.

13.몰타 섬 전체는 사정이 다르다. 2024년 관광객은 356만 명으로 해마다 기록을 새로 쓰지만, 허가를 받은 신규 호텔이 1만 3,543실이고 협의 중인 물량도 8,000실이 넘는다. 이대로면 2030년까지 객실이 두 배 가까이 늘 수 있다는 경고가 업계에서 나온다. 그 물량은 대부분 성벽 밖 해안에 들어선다. 성벽 안에서는 큰 호텔을 새로 올릴 땅이 없어서 기사들의 옛 저택이 20실짜리로 쪼개질 뿐이다.
14.위험은 둘. 하나는 개업이 1년 넘게 밀린 시간이고, 그동안 이자와 인건비 일부는 매출 없이 나갔을 것이다(추정). 다른 하나는 간판의 주인이다. Caviar & Bull이라는 이름과 주방 팀은 셰프의 것이라, 계약이 끝나면 손님을 부르던 이름이 건물을 떠날 수 있다.
15.몰타의 호텔 가동률은 계절을 크게 탄다. 겨울에 방이 비는 날에도 1층 저녁 식탁은 성벽 밖에서 온 손님으로 찰 수 있고, 그 계절의 매출을 받치는 건 객실이 아니라 식당 쪽이다(추정).
발레타 성벽 안 16세기 저택이 방 22개짜리 호텔이 됐고, 표준 객실을 조식 포함 400유로부터 받는다. 몰타 5성 평균의 두 배쯤 되는 요금이고, 1층 식당은 이름난 셰프의 간판을 걸어 바깥 손님을 부른다. 1년 객실 매출은 42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국내 도심의 근대 건축물을 20실 안팎 호텔로 바꾸려 하면 먼저 소방에서 걸린다. 숙박시설은 일정 면적을 넘으면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달아야 해서, 남겨야 할 옛 천장과 벽 안으로 배관을 어떻게 숨길지가 공사비를 정한다. 1층에 외부 셰프를 들이는 건 그다음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