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에 문을 닫고 나흘 뒤 같은 길 다른 자리에서 다시 연다. 10년을 쓴 100제곱미터 한 층을 버리고 네 개 층을 통으로 쓰는 이사. 이 매장을 굴리는 사업부의 지난 회계연도 영업이익률은 3.4%다.
1.8월 20일, 도쿄 긴자(銀座) 5초메 5-15에 Jaeger-LeCoultre의 새 플래그십 부티크가 문을 연다. 주오구(中央区) 나미키도리(並木通り)에 면한 네 개 층짜리 건물을 통으로 쓰고,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같은 길에 있던 기존 긴자 나미키 부티크는 나흘 앞선 8월 16일에 닫는다.
2.옛 매장의 크기가 대비를 만든다. 2016년 가을에 연 그 부티크는 지상 1층만 썼고 넓이가 약 100제곱미터, 30평이었다. 당시 이 메종의 최고경영자 다니엘 리에도(Daniel Riedo)는 다른 층은 아예 보지 않고 1층만 골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때 이 매장이 전 세계 직영 53호점이자 부티크로는 95호점. 10년 만에 같은 길에서 층수가 넷으로 늘었다.

3.바깥은 일본 전통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힌다. 공개된 조감에서 밝은 석재 면을 세로 목재 살이 한 줄로 가르며 1층 입구에서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그 위에 로고가 얹힌다. 전면 폭이 좁고 위로 길게 선 건물. 안쪽은 기준이 바뀌어 스위스 르상티에(Le Sentier)의 매뉴팩처와 그 매뉴팩처가 앉은 발레드주(Vallée de Joux)를 실내로 옮긴다. 1층은 좁고 깊다. 곡면으로 깎은 석재 진열대가 벽을 따라 서고 천장에서는 화지를 씌운 듯한 펜던트가 줄줄이 내려오며, 바닥 한가운데에는 계곡의 호수를 본뜬 초록 러그가 깔린다. 팔 물건이 손목 위에서 작아 보이지 않도록 주변을 크고 조용하게 만들었다.


4.꼭대기 4층에 일본 첫 아틀리에 당투안(Atelier d'Antoine)이 들어간다. 무브먼트 조립 시연을 보고 참가자가 직접 조립까지 해 보는 프로그램인데, 리베르소(Reverso) 워크숍은 정원이 여덟 명이고 강사와 스위스 본사에서 온 기술자가 한 조를 이룬다. 벽감에는 흰 작업 가운이 사이즈별로 걸리고, 정면 화면에는 눈 덮인 계곡이 흐른다. 부품 50개가 넘는 케이스를 손으로 맞추는 동안 핀셋 끝에서 나사가 미끄러지고 다시 집히는 소리가 한 시간 넘게 이어진다.

5.같은 상권에 매장 하나를 더 둔다. GINZA SIX 안의 부티크는 그대로 열어 두고 역할을 나눈다고 안내하는데, 나미키도리 쪽이 역사와 전통, GINZA SIX 쪽이 동시대 감각과 폭넓은 컬렉션을 맡는다. 걸어서 몇 분 거리에 같은 브랜드 매장 둘. 상권을 쪼갠 게 아니라 손님이 오는 목적을 쪼갰다.

6.시계는 화면에서 안 팔린다. 정확히는 이 가격대가 안 팔린다. 손목에 얹었을 때 케이스 러그가 손목뼈를 넘는지, 케이스 두께가 셔츠 소매에 걸리는지는 사진 스무 장으로 확인되지 않고, 1,000만 원이 넘는 물건에서 그 확인이 빠지면 결제 버튼이 눌리지 않는다. 매장이 남는 이유가 여기 있다.
7.이 아틀리에는 물건을 팔지 않는다. 대신 가격을 지킨다. 여덟 명이 앉아 케이스 부품 50개를 맞춰 본 사람은 그 물건의 값을 노동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값은 병행수입 시세표와 제법 잘 싸운다. 할인으로 방어하면 브랜드가 깎이지만 공정을 보여 주고 방어하면 안 깎인다.

8.때도 맞았다. Richemont의 2026년 4~6월 분기 일본 매출은 고정 환율 기준 36% 늘었고, 회사는 현지 수요와 관광객 지출을 함께 이유로 든다. 1년 전 같은 분기에는 15% 줄었던 시장. 엔이 싸진 뒤로 긴자의 시계·보석 매장은 국내 손님과 해외 손님을 한 매대에서 받는 중.
9.Richemont의 2026년 3월 결산에서 전문 시계 사업부 매출은 31억 유로, 4조 9,600억 원이었고 영업이익은 1억 700만 유로에 그쳤다. 영업이익률 3.4%. 같은 그룹의 주얼리 사업부는 매출 165억 유로에 영업이익 50억 유로, 이익률 30.5%였다.
10.3.4%짜리 사업부가 왜 임대료가 가장 비싼 길에서 층을 늘리나. 도매를 직영으로 갈아타는 중이라 그렇다. 그룹 전체에서 직영 매장이 매출의 71%를 만들고, 온라인을 더한 직접 판매는 77%까지 올라왔다. 도매로 넘기면 소매 마진을 통째로 유통에 주고, 직영으로 팔면 그 마진이 안으로 들어온다. 3.4%를 끌어올릴 지렛대가 지금 이 회사에 매장 말고 마땅치 않다.
11.같은 시장의 두 숫자가 반대로 움직인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FH) 집계로 올 상반기 스위스 시계의 일본 수출은 1.6% 줄었고, 6월만 보면 8.8% 늘어 1억 6,900만 프랑, 약 2,958억 원이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물량은 제자리인데 브랜드 직영 매출은 뛴다. 남의 매대에서 팔리던 것이 자기 매대로 옮겨 오고 있다.
12.땅값을 따져 보자. 긴자의 2026년 공시지가는 평당 9,910만 엔으로 1년 새 11.3% 올랐고, 최고 지점인 긴자 4초메 5-6은 제곱미터당 6,710만 엔으로 일본에서 가장 비싸다. 이 건물의 연면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나미키도리의 좁은 필지에 네 개 층이면 91평 안팎으로 잡히는데, 층별 가중 평균 평당 월 8만 엔을 대면 연 임대료가 8억 3,000만 원. 임대료를 매출의 10%로 두면 한 점 1,500만 원짜리 시계를 하루 1.6점 팔아야 채워진다. 필자가 규모를 가늠하려고 세운 추정이다.
13.계보는 1833년 발레드주에서 시작한다. 앙투안 르쿨트르(Antoine LeCoultre)가 르상티에에 공방을 열었고, 1866년에는 계곡에 흩어져 있던 시계 장인을 한 지붕 아래로 모아 이 골짜기의 첫 매뉴팩처를 세웠다. 지금까지 만든 칼리버가 1,242종, 등록한 특허가 400여 건. 1931년에는 인도에서 폴로를 치던 영국인 장교들이 유리가 깨진다고 하소연했고, 르네알프레드 쇼보(René-Alfred Chauvot)가 케이스를 통째로 뒤집는 구조로 특허를 냈다.

14.4층은 매출이 0인 층이다. 그런데 이 배치가 손해가 아닌 까닭은 층별 임대료 곡선에 있다. 노면 1층이 가장 비싸고 위로 갈수록 싸지는데, 이 매장은 가장 비싼 층을 진열에 쓰고 가장 싼 층을 체험에 썼다. 같은 아틀리에를 1층에 놓았다면 몇 배 비싼 임대료를 먹는다. 팔지 않는 기능을 위층으로 올리는 것은 상징이 아니라 원가 배치.

15.대신 위험이 따른다. 3.4% 마진에서 직영을 늘리면 고정비가 먼저 커진다. 도매는 수요가 꺾이면 출하를 줄여 위험을 유통에 나눠 지지만, 직영은 손님이 줄어도 임대료와 인건비가 그대로 나간다. 상반기 대일본 수출이 1.6% 줄었다는 숫자가 방향의 경고인지 일시적인 재고 조정인지는 아직 안 갈렸다.

16.30평 한 층을 쓰던 시계 매장이 같은 길에서 네 개 층을 통으로 받았고, 그 꼭대기에는 물건을 팔지 않는 아틀리에가 앉는다. 기억할 숫자는 3.4%, 이 매장을 굴리는 사업부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이다. 국내에서 같은 장치를 옮기면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서 먼저 걸리는데, 부품을 만지게 하는 프로그램은 상주 기술자와 정품 부품 재고를 전제로 하고 그 둘은 본사 인증 없이 생기지 않는다. 층을 늘리는 결정보다 그 층에 세울 사람을 구하는 일이 먼저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