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시애틀에서 시작한 백팩 브랜드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건 플래그십을 냈다. 자리는 미국이 아니라 서울 성동구의 좁은 골목, 면적은 두 개 층 60평. 매장을 지은 쪽도 미국 본사가 아니다.
1.7월 3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9길 3. 잔스포츠(JanSport)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4층짜리 건물의 1·2층을 쓰고 면적은 약 198제곱미터, 60평. 영업은 오전 11시에 시작해 목요일까지는 저녁 8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9시에 닫는다. 미국 본사 VF Corporation은 사흘 뒤인 8월 3일 이 매장을 자사 소식으로 올렸다.
2.브랜드는 1967년에 시작했고 59년 동안 세계 어디에도 이름을 건 플래그십이 없었다. 그 첫 매장이 서울에 섰다. 운영은 미국 본사가 아니라 무신사 트레이딩이 한다. 2021년에 국내 공식 유통 계약을 맺었고, 지금 굴리는 국내 매장은 아홉 곳.
3.그 아홉 곳은 전부 백화점과 복합몰 안에 있다. 스타필드 수원과 하남, 잠실 롯데월드몰, 스타필드 고양, 롯데백화점 노원점. 서울숲점은 열 번째이면서 처음으로 길에 면한 매장. 가방만 걸던 매장에 후디와 티셔츠, 팬츠와 캡을 함께 건 것도 이번이 처음.

4.저층부는 벽돌을 파란 페인트로 덮었다. 로고에 쓰던 파랑을 벽 전체에 그대로 올리고 흰 테두리 문자를 붙였다. 2층 창 두 개는 안쪽 옷걸이가 길에서 그대로 보이게 뚫려 있어 진열대가 간판 노릇을 한다. 골목이 좁아 정면으로 물러설 자리가 없으니, 눈에 띄는 일을 색이 대신한다.

5.1층은 벽을 다 쓴다. 한쪽에 ALWAYS WITH YOU. SINCE 1967을 파란 글씨로 크게 얹고 그 아래 낮은 선반에 백팩을 한 줄로 세웠다. 노출 콘크리트 천장에 레일 조명을 걸었고, 민트색 카운터 옆 화단에는 풀을 심어 두었다. 반대쪽 타공판 벽에 걸리는 건 옷과 모자.

6.진열은 라벨로 갈린다. 선반 위 띠에 OUTDOOR, HERITAGE, ICON이 붙고 칸마다 가방과 옷을 섞어 건다. 목재 틀에 주황색 브래킷을 물려 선반과 행거를 옮길 수 있게 짰다. 협업 물건은 따로 벽 하나를 받았는데, 야구단 로고를 넣은 가방과 캡은 국내에서 기획한 것이지 본사 상품이 아니다.


7.2층은 파는 자리라기보다 붙잡는 자리다. 천장에 JANSPORT PACK STUDIO 띠 간판을 걸고 그 아래 가운데에 커다란 작업대를 놓았다. 손님이 키링과 패치를 골라 가방에 다는 곳이고, 옆으로 피팅룸이 붙는다. 창밖으로는 나무.

8.가방은 매장을 적게 먹는다. 옷은 한 디자인을 걸려면 사이즈별 재고와 피팅룸과 대기 줄이 따라오지만, 백팩은 색마다 한 점만 걸어도 진열이 서고 시착은 어깨에 한 번 메는 것으로 끝난다. 그럼 60평은 왜 좁아 보이지 않을까. 벽면 전체가 그대로 판매 면적이 되기 때문.
9.가격대도 이 상권에 맞는다. 국내 정가는 대표 모델인 라이트팩이 11만 4,900원. 카페 두 잔과 디저트에 3만 원을 쓰며 걷는 동선에서 10만 원짜리 가방은 큰 결심이 아니다. 키링을 고르고 다는 몇 분이 그 결심을 밀어 준다. 부자재 값으로 체류 시간을 사는 셈법.

10.본사 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다. VF Corporation의 2026 회계연도 매출은 96억 500만 달러로 1% 늘었고, 영업이익은 5억 7,700만 달러에 영업이익률 6.0%였다. 총이익률은 54.8%로 1.3%포인트 올랐다. 3년 만에 연간 성장으로 돌아섰다고 회사는 밝힌다.
11.2023년 2월, 이 회사는 가방 사업을 팔겠다고 공식화했다. 잔스포츠와 이스트팩(Eastpak), 키플링(Kipling) 셋이 대상이었고 당시 보도는 잔스포츠 한 브랜드의 가치를 5억 달러 안팎으로 적었다. 3년 반이 지난 지금도 셋은 VF 안에 있고, 지난 회계연도에 이스트팩과 키플링은 줄었으며 잔스포츠만 늘었다.
12.한국 쪽 숫자가 훨씬 가파르다. 무신사 트레이딩의 지난해 매출은 760억 원으로 48% 늘었고, 그 안에서 잔스포츠의 국내 매출은 64% 뛰었다. 매물로 나온 브랜드를 사겠다는 회사가 아니라, 유통을 맡은 회사가 세계 첫 플래그십을 지었다.
13.임대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일대 1층 상가는 3.3제곱미터당 30만 원대에 거래된다고 중개업계는 말하고, 2층은 그 절반 이하다. 1층 30평에 2층 30평이면 월세는 1,300만 원에서 1,700만 원 사이. 임대료를 매출의 12~15%에 맞춘다면 월매출 1억 원 언저리가 기준선이 되고, 객단가 9만 원으로 잡으면 하루 37~46명이 계산대를 지나야 한다.
14.시작은 시애틀의 정비소 위 방 하나였다. 기술자 머리 플레츠(Murray Pletz)가 재봉틀을 놓고 일하던 잰 루이스(Jan Lewis)에게 결혼해 주면 회사 이름을 당신 이름으로 하겠다고 했고, 두 사람은 2년 뒤에 결혼했다. 스킵 요웰(Skip Yowell)이 셋째 창업자. 1969년에 내놓은 작은 데이팩이 워싱턴대학교 서점에서 팔리면서 미국 대학가로 퍼졌고, 그 형태가 지금 벽에 걸린 백팩의 조상이다.

15.이 구조에는 금이 하나 있다. 매장을 짓고 협업 상품을 기획하고 상권을 고른 쪽은 유통사인데, 상표는 미국 회사 것이다. 브랜드가 한국에서 커질수록 다음 재계약에서 값을 올려 부를 수 있는 쪽도 상표를 쥔 쪽이고, 매각이 성사되면 새 주인이 기존 계약을 그대로 이어받을 이유는 없다. 5억 달러짜리 상표 아래에서 60평을 짓는 일은 그래서 계약서 뒷장을 먼저 읽어야 하는 일이다.

16.59년 된 미국 백팩 브랜드의 첫 플래그십이 서울의 좁은 골목 60평에 섰고, 그 브랜드의 국내 매출은 지난해 64% 늘었다. 달라지지 않은 건 하나. 본사가 3년 전 매물로 내놓은 사업부라는 사실. 해외 브랜드 판권을 쥐고 로드숍을 짓는 쪽이 국내에서 먼저 확인해야 하는 건 상권도 임대료도 아니고 계약 잔여 기간이다. 매장 공사와 간판에 넣은 돈은 보통 5년에 나눠 터는데, 판권 계약이 3년이면 남은 2년치는 상표를 쥔 쪽의 자산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