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스노우피크 어패럴이 120평짜리 직영 매장을 열었다. 운영사는 감성코퍼레이션이고, 이 회사는 그 이름의 주인이 아니다. 2019년 10월 일본 본사에서 옷 사업 권리를 빌렸고, 빌리기 전 본업은 보조배터리였다. 6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의 1년 매출은 2,415억원. 이름을 빌려 준 일본 회사의 그룹 전체 매출은 241억엔이다.
1.매장은 남성복과 여성복, 모자와 가방에 캠핑 기어까지 한자리에 놓았다. 회사가 밝힌 면적은 120평. 국내 유통망은 195개. 직영은 최근에야 늘리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파는 이름은 빌려 온 것이다.
2.주인은 니가타현 산조(三条)에 있다. 스노우피크(スノーピーク)는 금속 가공에서 출발해 텐트와 화로를 만들어 온 회사이고, 옷 사업의 한국 권리를 감성코퍼레이션에 넘겼다. 라이선스를 받아 온 사람은 2019년 3월에 취임한 김호선 대표. 그때 이 회사가 달고 있던 브랜드는 보조배터리와 충전 케이블을 만드는 액티몬(ACTIMON)이었고, 2021년에는 사명까지 갈아 끼웠다.

3.파는 옷은 산에 오르는 옷이 아니다. 타슬란 계열 원단으로 지은 바람막이는 손에 쥐면 마른 소리가 나고 접으면 주머니에 들어가며, 여름에는 통기 조직을 넣은 티셔츠, 겨울에는 두툼한 다운. 캠핑장에서 입다가 그대로 지하철을 타도 걸리지 않는 선에서 물건이 멈춘다. 매장에서 눈에 걸리는 것도 마감이 아니라 진열이다. 옷은 한국 회사가 만들고, 그 옆에 놓인 텐트와 화로는 일본 본사가 만든다.

4.이 구조가 통하는 첫 이유는 신뢰를 옮겨 왔기 때문이다. 텐트는 한 번 사면 10년을 쓰는 물건이라 고르는 데 오래 걸리고, 그 시간이 이름을 품질의 보증으로 굳혀 놓는다. 그 보증이 그대로 옷에 붙었다. 두 번째는 시기가 맞은 것. 코로나 시기에 부푼 캠핑 수요가 꺼지자 장비부터 안 나갔는데, 시장이 한 번 채워지면 다음 주문이 10년 뒤에 오기 때문이다. 옷은 해마다 산다.

5.세 번째는 가격이 앉은 자리. 국내 아웃도어에는 등산복 쪽에 오래된 큰 이름들이 버티고 있고, 그 위 컨템포러리 브랜드와의 사이가 비어 있었다. 정통 아웃도어로도 패션 브랜드로도 보이지 않는 그 틈에 일본 이름이 들어갔다.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게 여기서는 약점이 아니라 빈자리.
6.매출은 사다리를 탔다. 의류 부문이 2020년 55억원에서 이듬해 358억원, 그다음 해 971억원. 2023년 1,605억원을 지나 2024년에 2,092억원까지 올라왔다.
7.2025년 전사 매출은 2,415억원, 영업이익은 446억원이었다. 영업이익률 18.5%는 국내 패션에서 흔히 나오는 숫자가 아니다. 백화점 수수료와 물류비를 다 무는 브랜드는 보통 한 자릿수.
8.이 마진에는 유통 구성이 깔려 있다. 국내 195개는 백화점과 아웃렛, 대리점으로 나뉘고 대리점은 물건을 사 가는 쪽이라 재고 위험이 그 앞에서 멈춘다. 직영은 반대다. 가격을 다 받는 대신 임차료와 인건비, 안 팔린 옷을 전부 자기가 진다. 직영을 늦게까지 안 늘린 이유가 그것.

9.공짜로 빌린 이름은 아니다. 2024년 지급수수료가 137억원으로 그해 영업이익 361억원의 40% 규모였다. 요율이 매출에 연동되니 옷이 잘 팔릴수록 일본으로 넘어가는 금액도 같이 커진다. 라이선스는 2025년 2월에 5년 연장됐고, 알려진 영역은 한국과 동남아시아, 인도다.

10.이름을 빌려 준 쪽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2022년 307억엔으로 최고를 찍은 매출이 이듬해 257억엔으로 내려앉았고, 영업이익은 9억 4,300만엔까지 떨어져 74.3%가 날아갔다. 2024년 4월 Bain Capital이 창업가문과 함께 주당 1,250엔에 공개매수를 걸었고, 그해 7월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이름이 빠졌다.

11.지금 지분은 Bain Capital 55%, 창업가문 45%. 2025년 10월 1일 Louis Vuitton 재팬과 Starbucks 커피 재팬을 거친 미즈구치 다카후미(水口貴文)가 사장으로 왔고, 창업가문의 야마이 도루(山井太) 회장과 둘이 나눠 맡는 체제로 갔다. 2025년 12월기 매출은 241억엔으로 17% 올랐고, 거의 0에 가깝던 EBITDA가 32억엔까지 돌아왔다.

12.돌아온 경영진이 키우겠다고 지목한 사업이 옷이다. 본사의 옷 매출은 60억엔, 전체의 25%. 3년 뒤 100억엔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캠핑 기능과 일상복을 겹쳐 스노우피크만 만들 수 있는 옷을 하겠다는 것.
13.그 목표를 한국 쪽은 2022년에 971억원으로 이미 지나쳤다. 이름을 빌려 준 회사가 3년 뒤 서겠다는 자리에, 빌린 회사가 4년 전에 서 있었던 것. 그럼 본사가 키우겠다는 그 옷은 어디에 파나.
14.이제 둘이 같은 도시에서 만난다. 본사는 올해 1월 중국 사업을 100% 자회사로 되돌리고 광저우(广州)에 기함점을 예고했다. 한국 라이선시도 광저우에 있다. 지난 4월 현지 유통사와 함께 연 382㎡ 복층 매장이 개점 첫날 2억 2,000만원을 팔았고, 그 앞에 700㎡짜리를 하나 더 열어 뒀다.

15.중국 계획은 지난해 1곳에서 올해 말 15곳, 2027년 말 40곳으로 잡혀 있다. 회사가 내놓은 수출 전망은 올해 209억원, 내년 540억원. 라이선스 영역으로 알려진 목록에 중국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는 공개돼 있지 않고, 본사가 직할로 돌린 중국 법인과 어디서 갈리는지도 마찬가지다.

16.보조배터리를 팔던 회사가 남의 이름을 빌려 6년 만에 2,415억원짜리 옷 사업을 만들었고, 그 대가로 2024년 한 해에만 137억원을 이름값으로 냈다. 국내에서 같은 길을 가려 할 때 먼저 막히는 건 브랜드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 계약 기간이다. 라이선스는 보통 5년 단위로 끊기는데, 매장 인테리어와 대리점 망은 그보다 오래 쓸 것을 전제로 돈이 들어간다. 잘 키워 놓으면 요율을 올려 달라는 쪽도,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쪽도 이름의 주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