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현대백화점 판교점과 중동점에서 시작해 오늘 롯데백화점 노원점까지, 백화점 다섯 곳에 같은 매장이 연달아 들어섰다. 이름은 리포먼트(REFORMENT). 온라인에서 자란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를 한 자리에 모은 편집숍인데, 상품을 브랜드별로 걸지 않는 게 이 매장의 규칙이다. 여는 쪽은 브랜드 40개를 쥔 하고하우스.
1.매장 입구에 세로 사인이 한 장 서 있고 거기 이름이 적혀 있다. J.CHUNG, LE17SEPTEMBRE, REPLAIN, LOW TIDE, MUEMUER, AMONG, SALTY PEBBLE, NUMBERPROJECT, LANG & LU, MAISON MARAIS, LE ABONNE. 열한 줄이고, 매장 간판은 그 위에 붙은 REFORMENT 하나다. 오픈 행사는 전 상품 최대 20% 할인, 30만 원 이상 사면 브랜드 사은품.
2.여는 회사는 하고하우스다. 대명화학의 패션 계열사이고 대표는 홍정우, 투자하거나 인수해 경영권을 쥔 브랜드가 40개. 마뗑킴을 2021년에 사서 지난해 매출 2,000억 원대로 키운 것도 이 회사. 연결 매출은 2022년 1,000억 원에서 2024년 3,500억 원이 됐고 올해는 4,500억 원을 본다. 백화점에 깔아 둔 브랜드 단독 매장이 100곳을 넘고, 여러 브랜드를 섞은 하고하우스 매장이 50곳쯤 된다.

3.바닥은 테라코타색 카펫이고, 그 위로 원판형 조명이 격자 천장에 촘촘히 박혀 빛을 아래로 흘린다. 매대는 검은 테를 두른 흰 석재 상판. 옷걸이는 나무, 행거 봉은 검은 철제. 백화점 여성 컨템포러리 층에서 브랜드마다 벽을 세우고 색을 달리 쓰던 자리에, 카펫 한 장으로 경계를 지운 구획이 들어앉았다.

4.행거를 따라 걸어도 어디서 브랜드가 바뀌는지 알기 어렵다. 회사가 내건 원칙이 그것이라서, 상품을 브랜드별로 나열하지 않고 서로 다른 브랜드의 옷을 조합해 한 벌의 착장으로 건다. 매대 위에도 가죽 토트백 하나와 짙은 자주색 로퍼 한 켤레가 놓여 있을 뿐 어느 브랜드 것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이름을 확인하는 길은 택을 뒤집는 것뿐.

5.진열을 짜는 건 회사 안에 새로 만든 스타일리스트 팀이다. 판매 데이터와 점포별 손님 반응을 보고 점포마다 최대 100개 착장을 직접 기획한다고 회사는 밝혔다. 판교와 전주에 같은 옷을 같은 순서로 걸지 않겠다는 이야기. 온라인 브랜드가 인스타그램 룩북으로 팔던 방식을 그대로 매대에 옮겨 놓은 구성이다.

6.백화점에 옷을 걸면 판 돈의 얼마가 백화점 몫인가. 공정거래위원회가 2024년 거래를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실질 판매수수료율은 백화점 평균 19.1%였고, 생활용품·잡화와 의류가 22.9%로 평균보다 높았다. 피혁잡화는 34.1%. 여기에 판촉비와 장려금이 따로 붙어서, 중소기업이 실제로 체감하는 부담은 이 숫자보다 크다는 게 조사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
7.온라인에서 올라온 브랜드는 처음에 이보다 싸게 들어간다. 백화점이 새 이름을 데려오려고 20% 초반에 자리를 내주고, 2~3년 지나 자리가 잡히면 1~2%p씩 올린다고, 지난봄 상품기획 개편 때 업계 매체가 다시 전했다. 지금 평균이 20% 중반이고 백화점 쪽은 결국 30% 선을 본다. 같은 층 기존 캐주얼 브랜드가 35%를 내고 있으니 올릴 자리가 남아 있다는 계산이다.
8.브랜드 11개를 한 매장에 묶으면 이 계단을 한 번만 오른다. 각자 들어가면 각자 수수료를 협상하고 각자 판매사원을 두는데, 백화점 위탁 계약에서 매장 인력의 인건비는 대체로 브랜드가 진다. 11개 자리에 11인분이 붙던 인건비가 한 매장 두세 명으로 줄어드는 구조. 인테리어 공사비도 한 번이면 끝난다.

9.면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백화점 여성 컨템포러리 층의 이런 복합 매장이 보통 30평에서 50평 사이에 들어가니 40평으로 잡고 계산해 보면, 수수료를 25%로 두었을 때 매장 하나가 월 매출 1억 원을 올려야 백화점에 2,500만 원이 간다. 판매사원 두 명과 본사 배분 인건비, 재고 손실까지 얹으면 손익분기도 그 언저리. 면적도 수수료율도 회사가 밝힌 값이 아니라 여기서 잡은 가정.

10.혼자 들어간 브랜드의 숫자를 보면 왜 묶는지 보인다. 사인에 이름이 걸린 르셉템버는 단독 매장 9곳을 굴리며 올 상반기에 매출이 40% 늘었고 오프라인 비중이 70%까지 올라왔는데, 이 정도가 돼야 백화점 한 자리를 혼자 감당한다. 같은 회사의 드파운드는 지난해 500억 원에서 올해 1,000억 원을 본다. 나머지 스무 개 넘는 브랜드는 아직 그 문턱 아래에 있다.
11.손님 쪽 사정도 회사 설명과 겹친다. 온라인으로 브랜드를 찾아내기는 쉬워졌는데 입어 보고 다른 옷과 맞춰 보고 나란히 견줘 볼 자리가 없다는 것. 인스타그램에서 본 재킷과 다른 계정에서 본 치마를 같이 걸쳐 보려면 각각 사서 집에서 맞춰 본 뒤 한쪽을 반품하는 수밖에. 착장 단위로 걸어 놓은 매대는 그 과정을 매장 안에서 끝낸다.

12.점포를 고른 방식에도 계산이 있다. 롯데 잠실점은 지난해 매출 3조 3,010억 원으로 전국 2위, 현대 판교점도 2조 원을 넘긴 상위권 점포다. 나머지 세 곳은 그 아래 체급. 지방과 서울 외곽의 중형점에서 여성 디자이너 브랜드 하나가 단독으로 자리를 받기는 어렵다. 11개를 묶으면 그 점포에도 들어간다.

13.편집숍이라는 형식은 원래 바이어의 안목을 파는 장사였다. 국내에서 무이와 분더샵, 톰그레이하운드가 세운 방식이 그랬고, 손님이 낸 돈에는 세계에서 골라 온 수고가 얹혀 있었다. 리포먼트에 걸린 11개는 전부 하고하우스가 투자했거나 인수해 경영권을 쥔 브랜드다. 고르는 쪽도 만드는 쪽도 한 회사.
14.그래서 이 매장에는 안 고른 것이 없다. 큐레이션의 값어치는 무엇을 뺐느냐에서 나오는데, 뺄 후보가 애초에 자기 창고 밖에 없으면 손님이 얻는 건 선별이 아니라 진열. 브랜드별 이름을 지운 진열이 그 사실을 덮어 주기도 한다. 3년차에 수수료 계단이 올라올 때 이 형식이 방패가 되는지 아니면 11개 매출이 한꺼번에 조정 대상이 되는지도 아직 안 나왔다.

15.온라인에서 자란 브랜드 11개가 이름을 접고 하나의 간판 아래 들어갔고, 그 매장이 9일 사이에 백화점 다섯 곳에 섰다. 이 건에서 가장 정직한 숫자는 수수료 계단. 20% 초반에 들어가 30%를 향해 오르는 그 계단을, 묶으면 한 번만 오른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 할 때 먼저 걸리는 건 브랜드 소유권이다. 남의 브랜드를 사입해 걸면 시즌 오프 시점과 반품 조건이 브랜드마다 달라서, 점포마다 100개 착장을 짜고 그걸 시즌 내내 유지하는 일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 매장이 서는 조건은 안목이 아니라 지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