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에 자라(ZARA)가 다섯 개 층짜리 매장을 열었다. 1층 앞쪽은 옷걸이 대신 벽돌 계단이 차지하고, 손님들은 그 계단에 앉아 휴대폰을 본다. 같은 거리 300m 옆에서는 유니클로(UNIQLO)가 13년 쓴 8,000㎡ 매장을 2,800㎡로 줄여 옮긴다. 명품이 하나둘 빠져나간 거리에서 두 회사가 고른 크기는 서로 멀지 않다.
1.개점은 6월 6일. 쇼핑몰 환마오 iapm(环贸iapm) 맞은편 건물의 다섯 개 층을 쓴다. 인디텍스(Inditex)가 발표한 매장 면적은 2,000㎡ 가까이, 약 600평이고 설계를 맡은 AIM Architecture가 밝힌 건물 면적은 3,500㎡. 자라가 중국 본토에 들어온 지 20년째 되는 해의 매장으로, 지난해 말 고쳐 연 난징둥루(南京东路) 매장에 이어 상하이에서 두 번째로 크게 공을 들였다.
2.8월 27일에는 같은 거리의 유니클로가 글로벌 플래그십을 옮긴다고 발표했다. 2013년부터 887호 건물의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8,000㎡ 넘게 쓰던 매장이 10월 30일 300여 m 떨어진 755호로 간다. 새 매장은 지상 3개 층에 판매 면적 약 2,800㎡. 13년 된 설비가 낡았고 습기 때문에 재고 보관에 탈이 났으며, 임대료도 따졌다고 현지 매체는 전한다.
3.자라가 든 건물은 폭이 좁고 길쭉한 바닥이 여러 층 쌓인 기존 상업 건물이다. superfuture에 따르면 옛 이름은 Golden World Shopping Centre. 자라와 네 번째로 작업한 AIM Architecture는 이 긴 바닥을 뜯어고치지 않고 동선의 뼈대로 삼았다. 보도에서 시작한 벽돌 단이 유리벽을 지나 건물 안까지 들어오며 계단식 좌석이 되고, 그 단 위에 가방과 신발을 올려 진열대로도 쓴다.


4.건물의 뼈는 가리지 않았다. 콘크리트 기둥과 격자 천장을 덮지 않고 두었고, 바닥은 콘크리트를 갈아 윤을 냈다. 그 위에 나무와 리넨, 스테인리스를 가볍게 얹었다. 원래 있던 계단은 마감을 벗겨 콘크리트 단을 드러냈고, 검은 강철 난간 옆에 세로 조명 한 줄을 길게 세웠다. 에스컬레이터는 뒤편 유리 외벽을 따라 낸 통로에 몰았다. 길에서 올려다보면 오르내리는 사람의 실루엣이 층층이 비치는 구조.


5.층마다 다른 무대. TRF 라인은 창고, 여성복은 화랑, ZARA Man은 공방, 꼭대기 층은 상하이식 로프트라는 게 설계사의 설명이다. 어느 층은 스테인리스 긴 탁자에 청바지를 눕혀 두고, 어느 층은 거친 나무 기둥 사이에 리넨 막을 늘어뜨려 옷을 한 벌씩 매단다.


6.남성복 쪽에는 검은 진열장이 양쪽으로 서고, 가운데에 바퀴 달린 나무 작업대가 놓인다. 윤나는 나무 탁자에 낮은 의자와 러그를 깔아 거실처럼 꾸민 구역도 있다. 전용 탈의실과 쉬는 자리를 둔 Zara Salon이 따로 있다. 층마다 붙은 건 셀프 계산대와 반품 창구, 헌 옷 수거함.


7.이 거리에서 명품은 10년째 빠져나가고 있다. 루이비통이 2016년 플래그십을 닫았고 제냐·버버리·돌체앤가바나가 뒤를 이었다. 티파니는 홍콩광장(香港广场) 매장을 절반으로 줄였고, 까르띠에는 K11에서 나갔으며, 올해 3월에는 자라 맞은편 iapm의 구찌가 문을 닫았다. 빈자리를 채우는 쪽은 대중 브랜드. 티파니가 줄이고 남긴 자리에는 자라의 형제 브랜드 마시모두띠가 들어온다.
8.명품이 떠난 거리는 쇠락했을까. 상하이 매체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21세기경제보도는 명품이 떠난 뒤 젊은 손님들이 자라 앞에 줄을 섰다고 전했고, 이 거리의 신규 점포 비율은 25.72%로 난징둥루 다음이었다. 러시아와 중동 관광객이 본국보다 싼 값에 사 가는 역대리구매(反向代购)도 새 손님으로 꼽힌다. 비싼 가방을 사러 오던 거리가 걸으며 들르는 거리로 바뀌었다. 자라는 그 걸음을 멈춰 세우려고 1층에 벽돌 계단을 깔았다.

9.매장이 버는 돈이 계산대에서만 나오지도 않는다. 인디텍스는 9월 9일 상반기 실적을 내며 매장과 온라인을 한 몸으로 묶은 운영을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이 매장도 앱으로 층별 재고를 찾게 하고 층마다 반품 창구를 뒀다. 지난해 온라인 매출 107억 유로 가운데 얼마가 이런 매장을 거쳐 가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10.자라의 중국 본토 매장은 2018년 180곳 안팎에서 2024년 초 96곳, 올해 1월 60여 곳으로 줄었다. 1월에만 상하이·항저우·베이징 등지의 쇼핑몰 매장 다섯 곳을 닫았다. 중국 매체가 붙인 이름은 '开大关小'. 작은 매장을 닫고 큰 매장을 연다.
11.그룹 전체도 같은 쪽으로 간다. 인디텍스는 지난해 매장을 103곳 줄이고도 매장 면적은 1.5% 늘려 472만㎡를 만들었다. 비싼 1층을 계단에 내줄 여유는 마진에서 나온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197억 5,500만 유로, 매출총이익률은 58.7%.
12.온라인을 뺀 지난해 매장 매출을 매장 면적으로 나누면 1㎡당 하루 139위안쯤 나온다(추정). JLL이 집계한 상하이 핵심 상권 1층 평균 임대료는 1㎡당 하루 41.8위안. 그룹 평균만큼만 팔면 1층 임대료가 매출의 30%.
13.이 매장의 2,000㎡를 층마다 400㎡로 나누고 위 네 개 층을 1층 시세의 절반으로 잡으면, 한 해 임대료는 1,830만 위안, 약 36억 원. 이걸 매출의 15% 안에 넣으려면 그룹 평균 매장보다 1㎡당 20% 더 팔아야 한다. 다섯 층을 모두 1층 시세로 치면 두 배를 팔아야 하고, 1층 앞쪽을 계단에 내준 만큼 옷을 거는 면적은 그보다 좁다.
14.300m 옆 유니클로의 숫자는 방향이 다르다. 대중화권 매출은 지난 회계연도에 4% 줄었고 사업이익은 12.5% 빠졌다. 13년 쓴 매장을 3분의 1 크기로 줄이는 결정은 그 숫자 위에서 나왔고, 현지 매체는 이를 매장을 여는 데서 잘 여는 데로 옮겨 가는 과정이라고 적는다.
15.자라가 큰 매장에 공을 들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난징 신제커우(新街口)에 연 아시아 최대급 매장도 AIM Architecture가 설계했다. 이번에 다른 건 뜯어낼 수 있게 지었다는 점. 설계사는 기존 골조를 건드리지 않고 가구와 진열대, 탈의실을 가볍게 끼워 넣어 건물이 나중에 다시 바뀔 수 있게 했다고 설명한다. 옷을 빨리 갈아 거는 것으로 이름난 회사가 매장도 갈아 끼울 수 있게 만들었다.
16.자라는 명품이 빠져나간 화이하이중루에 약 2,000㎡ 매장을 다섯 층으로 세우고 1층 앞을 앉을 자리에 줬고, 같은 거리의 유니클로는 8,000㎡를 2,800㎡로 줄여 옮긴다. 국내에서 이 크기의 단독 매장을 내면 3,000㎡가 선이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매장 면적 합계 3,000㎡ 이상을 대규모점포로 보고, 개설 등록 때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요구한다. 유니클로가 떠나는 8,000㎡는 그 서류부터 내야 하는 크기이고, 자라의 2,000㎡는 그 선 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