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온라인몰 하나로 한 해 55억 엔을 파는 일본 브랜드 Her lip to가 9월 26일 오사카 심사이바시에 문을 연다. 지금까지 낸 매장 셋은 전부 2층 위에 있었다. 이번 자리는 미도스지와 나가호리도리가 만나는 모퉁이의 1층이다.
1.Her lip to가 9월 26일 오사카에 매장을 낸다. 자리는 주오구 니시신사이바시(西心斎橋) 1가 도호빌딩(東邦ビル) 1층이고, 영업은 오전 11시부터 밤 8시까지. 이 브랜드가 공식 목록에 올려 둔 매장은 지금까지 셋뿐이었다. 오모테산도(表参道)의 House of Herme가 2층, 루미네 신주쿠 루미네2(ルミネ新宿 ルミネ2)가 2층, JR 나고야 다카시마야(ジェイアール名古屋タカシマヤ)가 5층. 계단을 오르지 않고 길에서 바로 문을 미는 매장은 오사카가 처음이다.
2.도호빌딩은 1971년에 올린 13층짜리 임대 오피스. 미도스지(御堂筋)와 나가호리도리(長堀通)가 만나는 모퉁이에 서 있고 심사이바시역에서 걸어 1분. CBRE 조사에서 이 거리의 노면 임대료는 2026년 2분기에 최고치를 다시 썼고, 공실률은 0.0%였다. 전국에서 긴자 다음으로 비싼 거리이고, 오모테산도·하라주쿠보다 위.


3.정면에는 화이트 오닉스를 붙이고 그 사이에 세로로 골이 진 미러 스테인리스 기둥을 세웠다. 흰 돌은 결이 비쳐 빛을 머금고, 옆의 금속은 길 건너 신호와 지나가는 차를 잘게 쪼개 되비춘다. 유리 안쪽 벽지는 브랜드가 시그니처로 쓰는 캐널블루. 바닥 한가운데에 내추럴 스톤을 깔고 옷은 금색 봉에 걸었다. 회사가 내건 말은 SECOND HOUSE.

4.오모테산도와 갈리는 데가 하나. House of Herme에는 Café de Herme가 붙어 있고 메뉴는 오모테산도의 에스프레소 바 LATTEST와 함께 짰다. 오사카에는 카페가 없다. 대신 문을 한 시간 일찍 연다.


5.첫 이틀은 예약을 받고 셋째 날부터 자유롭게 들어간다. 붐비면 정리권을 나눠 주는데 그 줄에서 앞자리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 리워드 프로그램 Club Hers의 맨 위 등급인 SWAN 회원. 세금 포함 3만 5,000엔 넘게 사면 파우치를 하나 주고, 오사카 한정 상품과 한정 색 쇼핑백은 따로 값을 받는다.


6.2018년 6월에 시작한 이 브랜드는 자사 온라인몰 한 곳에서만 팔아 왔다. 드레스 한 벌이 2만 2,000엔에서 2만 5,000엔 선. 인기 품목은 발매 1분 만에 동났고 발매 전 대기자가 1만 명씩 붙었다고 일본 매체들이 전한다. 실물을 만져 보지 않고 그 돈을 결제하게 만드는 일을 8년 동안 해 왔다는 이야기.


7.브랜드가 다섯 해를 채운 2023년 6월 시점에 한 해 500개 품목을 내놓았고 직원은 100명 남짓이었다. 옷장을 통째로 갈아 끼우자는 제안이 아니라, 오늘 입고 싶은 한 벌을 매주 새로 내미는 방식. 살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을 짧게 잘라 놓으면 사이즈 걱정보다 품절 걱정이 먼저 온다.
8.회원 등급은 여섯 층이다. BLOOM에서 ROUGE, PEARL, DIAMOND, GRACE를 거쳐 SWAN까지 올라가고 해마다 6월 1일에 다시 매긴다. 한 해 동안 기준 금액을 못 채우면 내려간다. 맨 위 SWAN만은 승급 기준을 회사가 밝히지 않는다. 6월 3일까지 초대장을 보낸다는 안내가 전부.
9.온라인에서만 파는 옷 장사에서 가장 비싼 항목은 안 맞는 사이즈. 왕복 배송비와 검품·재입고 인건비가 붙고, 한 번 틀린 손님은 다음 주문 앞에서 멈칫한다. 실물을 한 번 입어 본 사람은 그다음부터 덜 틀린다. 노면 1층은 그 일을 하는 자리이지 매출을 크게 찍는 자리가 아니다.
10.브랜드를 굴리는 회사는 heart relation. 2023년 12월기에 매출 29억 3,100만 엔, 영업이익 3억 엔, 순이익 1억 6,100만 엔을 냈다. 2026년 3월기 매출은 55억 9,100만 엔으로 1년 전보다 26% 늘었다.
11.이 회사는 이제 남의 것이다. 도쿄증권 그로스 상장사 yutori가 2024년 8월 지분 51%를 16억 8,300만 엔에 가져갔고, 2026년 4월 나머지를 19억 6,000만 엔에 사서 전부 쥐었다. 창업자 코지마 하루나(小嶋陽菜)가 개인으로 받은 돈이 약 18억 2,000만 엔. 그중 일부는 현금이 아니라 유토리 신주 5만 3,600주였고, 대표 자리는 그대로 지킨다.
12.두 번의 값을 지분 전부 기준으로 환산하면 2024년에 33억 엔, 2026년에 40억 엔이 나온다. 그 사이 매출은 91% 늘었는데 회사에 매긴 값은 21% 올랐다. 한 해 매출 대비 배수로는 1.13배에서 0.72배로 내려갔다. 성장 속도가 열 배 넘게 빨라진 회사를 더 싼 배수에 넘긴 거래.
13.매장 면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건물 기준층이 47.22평(156.1㎡)이라 1층도 그 언저리로 본다(추정). 심사이바시 평균 임대료를 그대로 대면 월세만 1,300만 엔을 넘는데, 이 자리는 아케이드 상점가 한복판이 아니라 큰길 모퉁이라 평균보다 아래로 잡는 편이 맞다.
14.평당 15만에서 20만 엔으로 보면 월 700만에서 950만 엔이 든다(추정). 임대료를 매출의 15%에 맞추려면 한 해 5억 6,000만 엔에서 7억 6,000만 엔을 팔아야 한다. 객단가 2만 5,000엔으로 치면 하루 61건에서 83건. 47평짜리 매장에서 하루 80건은 빡빡하다. 이 매장을 판매처로만 보면 계산이 안 선다.
15.yutori는 2018년 카타이시 타카노리(片石貴展)가 구제옷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회사다. 2020년 7월 ZOZO가 지분 과반을 가져갔고, 2023년 12월 도쿄증권 그로스에 상장하면서 ZOZO 몫은 20% 안팎으로 내려갔다. 2026년 3월기 연결 매출은 142억 3,400만 엔으로 71.4% 늘었지만 순이익은 3억 1,000만 엔으로 오히려 줄었다. 한국 옷 브랜드를 들여와 파는 사업이 1년 새 네 배로 커졌다.
16.온라인에서 자란 회사가 온라인에서 자란 브랜드를 사서, 긴자 다음으로 비싼 거리의 1층으로 내보낸다. 회사 값을 한 해 매출의 0.72배에 매겨 놓고 그렇게 한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려면 먼저 걸리는 건 등급이다. 온라인 구매 이력으로 매장 입장 순서를 나누는 방식은 여기서도 쓰이지만, 회원 등급과 개인정보를 온라인몰·매장·멤버십 운영사가 나눠 갖고 있으면 그 줄 세우기가 문 앞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먼저 손봐야 할 건 인테리어가 아니라 고객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는 계약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