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가방 브랜드 RIMOWA가 상하이 징안 케리센터에 중국 본토 첫 플래그십을 열고 9월 16일 공식 개막 행사를 치렀다. 200㎡ 남짓한 매장에서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신제품이 아니라 수리대와 헌 가방 매입이다. 쓰던 알루미늄 캐리어를 가져오면 2,000위안짜리 상품권을 준다.
1.매장은 상하이 난징시루(南京西路)의 징안 케리센터(静安嘉里中心) 북쪽 구역 1층, N1-08호에 있다. 6월 말 문을 열었고 9월 16일에 탁구 선수 판전둥(樊振东)과 배우 허광한(許光漢)을 불러 개막 행사를 했다. 면적은 200㎡ 남짓, 약 60평. RIMOWA의 중국 본토 첫 플래그십이자 상하이 다섯 번째 매장.
2.개막에 맞춰 회사가 앞세운 건 서비스 셋. 수리 요청의 85% 이상을 매장 안에서 끝내는 수리 센터, 중국에서 처음 여는 헌 가방 매입·재판매 프로그램 Re-Crafted, 그리고 크기·부속·색을 골라 주문하는 Crafted For You. 매입 조건은 이렇다. 쓰던 알루미늄 캐리어를 가져오면 2,000위안, 약 39만 원어치 상품권을 주고, 그 상품권은 4,000위안 이상 살 때만 쓸 수 있으며, 한 사람이 1년에 두 개까지 맡길 수 있다.

3.안쪽 벽 가운데에 알루미늄 띠를 여러 겹 동심원으로 감은 설치물이 서 있다. 원 안쪽은 뒤에서 조명을 받은 돌판이고, 그 앞 선반에 한정판 캐리어 하나가 올라가 있다. 좌우 흰 선반에는 주황과 남색 캐리어가 번갈아 놓였다. 빛이 닿으면 알루미늄 홈마다 가는 선이 하나씩.


4.한쪽 구석은 CLIENT CARE라는 글자만 붙은 회색 벽. 스테인리스 카운터에 나무 의자 둘, 벽에는 작은 화면 세 개. 옆 작업대에서는 검은 가죽 네임태그를 금속 틀에 물리고 금박 무늬를 찍어 준다. 이 매장에서만 고를 수 있는 무늬는 두 가지로, 하나는 징안 케리센터이고 다른 하나는 위위안(豫园)의 주취차오(九曲桥)다.

5.알루미늄 캐리어는 공항을 몇 번 오가면 모서리가 찌그러지고 옆면에 긁힌 줄이 쌓인다. Re-Crafted는 그 겉을 펴지 않는다. 바퀴와 손잡이, 안감 같은 속만 30개 항목으로 점검해 고치고 2년 보증을 붙여 다시 판다. 누가 붙였는지 모를 여행지 스티커까지 그대로.

6.중고 시장은 원래 있었다. 알루미늄 캐리어는 수십 년을 가고, 중국에서는 중고 거래 앱 셴위(闲鱼)에 이 브랜드 매물이 늘 올라온다. 문제는 진품인지, 바퀴가 멀쩡한지 사는 사람이 알 길이 없다는 것. 브랜드가 직접 사들여 고치고 보증을 붙이면, 개인 사이에 돌던 거래가 매장 계산대로 들어온다.
7.사는 쪽이 원하는 게 새것 같은 헌것이 아니라는 점도 컸다. 찌그러진 모서리는 누군가 실제로 들고 다닌 여행의 기록이고, 그 흔적째 사는 게 이 프로그램의 물건이다. 독일에서 시작해 한국과 일본을 거친 판매분은 몇 시간, 어떤 곳은 몇 분 만에 다 팔렸다. 미국 온라인 판매 개시는 2025년 3월 25일.

8.때도 맞았다. Bain & Company는 2024년 중국 본토 명품 시장이 18~20% 줄었다고 추산했다. 새것을 살 이유를 대기 어려운 해에 매장은 무엇으로 사람을 부를까. 바퀴 하나 갈러 온 손님도 계산대 옆 선반 앞에는 선다.
9.가장 분명한 숫자는 미국 쪽 공개분. 헌 캐리어를 받을 때 주는 상품권이 300달러, 고쳐서 다시 파는 가격이 600~1,000달러이고, 같은 알루미늄 기내용 새 제품은 1,400달러를 넘는다. 한 개를 돌릴 때마다 300~700달러의 차액이 생기는데, 여기서 부품과 수리 인건비를 뺀 것이 회사 몫이다.
10.상품권이 현금이 아니라는 데에 계산이 하나 더 들어 있다. 2,000위안을 쓰려면 4,000위안 이상을 결제해야 하니, 헌 가방 하나가 새 판매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다. 회사가 실제로 치르는 비용도 액면가 2,000위안이 아니라 그만큼 깎아 준 새 제품의 원가 몫이다. 매입가는 할인이고, 할인은 새 매출에 붙어서만 나간다.
11.고정비는 가볍지 않다. Cushman & Wakefield가 집계한 2025년 3분기 상하이 중고급 쇼핑몰 1층 평균 호가는 월 728.7위안/㎡. 이 평균만 200㎡에 대입해도 1년 임대료가 약 175만 위안, 우리 돈 3억 4,000만 원이 된다(추정). 난징시루 한복판인 징안 케리센터 시세는 평균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12.임대료를 매출의 15%로 맞추려면 1년에 약 1,170만 위안을 팔아야 한다. 알루미늄 기내용 한 개를 1만 위안 안팎으로 잡으면 하루 세 개 남짓(추정). 수리대와 상담 구석이 차지한 면적은 그 숫자에 보태는 게 없다. 그 자리를 매대로 채우지 않은 배치는 매장 한 곳의 손익보다, 손님이 가방을 버리지 않고 다시 들고 오는 쪽에 돈을 건 모양새다.
13.회사의 뿌리는 1898년 쾰른(Köln)의 가방 공방. 파울 모르섹(Paul Morszeck)이 공동 창업했고, 1930년대 공장에 불이 나 재료가 거의 다 타고 알루미늄만 남은 뒤로 금속 가방을 만들었다. LVMH는 2016년 지분 80%를 6억 4,000만 유로에 샀다. 당시 연매출은 4억 유로 남짓이었고, 지금은 약 10억 유로라는 게 업계 추정이다.


14.브랜드가 자기 중고를 사들이는 일은 새롭지 않다. Patagonia는 Worn Wear로 헌 옷을 받아 고쳐 팔고, Rolex는 2022년 인증 중고 제도를 열었다. 상하이판이 다른 건 수리 방식. 기록 보관용 옛 가방을 되살리는 데 깨진 자기에 금속 꺾쇠를 박아 잇는 중국 전통 수리법 쥐츠(锔瓷)를 썼다. 흠을 감추지 않고 이음매를 드러내는 수리법. 도시 안내 지도는 소설 『번화(繁花)』를 쓴 상하이 작가 진위청(金宇澄)과 함께 만들었다.

15.RIMOWA는 중국 본토 첫 플래그십 60평에서 매장 한쪽을 수리대에 내주고, 헌 캐리어 하나에 39만 원어치 상품권을 걸어 새 가방 판매로 되돌렸다. 한국에서 같은 구조를 짜려는 브랜드가 먼저 부딪히는 건 매장의 계약 형태다. 수입 브랜드 대부분이 백화점에 매출 수수료를 내고 들어가 있어, 매출을 내지 않는 수리대 면적은 그대로 손해로 잡힌다. 매입한 헌 가방을 쌓아 둘 창고와 수리 기술자를 매장 가까이 둘 곳도 따로 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