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20년, 공사 6년, 총사업비 7억 2,380만 달러.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서 미술관 하나가 왕복 대로 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헐어 낸 네 채와 견주면 전시할 수 있는 면적은 오히려 줄었다.
1.2026년 4월 19일 로스앤젤레스 윌셔 대로(Wilshire Boulevard)에서 리본이 잘렸다. 일반 관람은 5월 4일부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새 상설관인 David Geffen Galleries는 길이 900피트, 약 274m짜리 판 하나로 되어 있고, 그 판이 왕복 대로를 그대로 타고 넘는다. 전시층 바닥은 지면에서 30피트, 약 9m 위에 떠 있다. 설계는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
2.먼저 헐어 낸 것부터 세는 게 순서다. 2020년 4월 이 미술관은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네 채를 부쉈다. 1965년 윌리엄 페레이라(William Pereira)가 설계한 세 채와 1986년 Hardy Holzman Pfeiffer가 올린 별관. 20세기 후반 로스앤젤레스 문화시설의 표준이던 건물들이 반년 만에 사라졌고, 그 자리를 6년간 비워 둔 채 새 판을 쌓았다.

3.전시층은 하나뿐이다. 층을 나누지 않았고, 11만 제곱피트, 약 3,091평이 칸막이 없이 이어진다. 정해진 동선도 없어서 관람객은 어디로든 들어가 어디로든 빠진다. 사방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이고, 그 안쪽에 크롬을 스퍼터 도금한 금속 섬유 커튼이 걸린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스도 레이코(須藤玲子)의 작업.

4.그 판을 받치는 것은 일곱 채의 파빌리온이다. 나머지 지면은 비워 뒀고, 지하에는 면진장치 56개가 깔려 어느 방향으로든 5피트, 약 1.5m까지 건물을 흘려보낸다. 구조 설계는 SOM. 지하 공사비만 6,300만 달러가 들어간 이유가 여기 있다.

5.안에 들어서면 벽은 색을 먹인 콘크리트다. 커튼을 통과한 빛이 한 겹 눌려 들어오고, 그 빛 아래에서 나무와 돌, 유리와 흙으로 빚은 물건들이 깨어난다. 반대로 유화는 색 입힌 콘크리트를 이기지 못한다는 평이 개관 직후부터 나왔다. 회화를 위해 지은 집은 아니라는 뜻.

6.판을 9m 띄우자 그 밑에 3.5에이커, 약 4,285평의 그늘이 생겼다. 일곱 파빌리온에는 상점과 교육센터, 간편식 매장이 들어갔고 레스토랑과 와인바, 극장은 2026년 하반기에 문을 연다. 나머지 그늘은 통행이 자유롭다. 표를 사지 않아도 되는 면적이 표를 사야 들어가는 면적보다 넓다.

7.돈을 뜯어보자. 총사업비 7억 2,380만 달러 가운데 시공이 5억 8,500만이다. 지상 공사 4억 8,550만, 지하 6,300만, 부지 정리 3,660만. 나머지 1억 3,870만 달러는 설계와 엔지니어링, 인허가와 사업관리로 나갔다. 총사업비의 19.2%. 국내 공공 발주에서는 보기 드문 비율.
8.1달러를 1,380원으로 잡으면 총사업비는 약 9,988억 원. 연면적 34만 7,500제곱피트를 평으로 고치면 9,766평이니 평당 약 1억 200만 원이 나온다. 미술관치고 특별히 비싼 값은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 계산. 실제로 작품을 거는 3,091평으로 나누면 평당 3억 2천만 원으로 뛴다.
9.재원은 세 갈래. 카운티가 1억 2,500만 달러를 댔고, 모금이 늦어지는 동안 쓸 자금 3억 달러를 카운티가 신용으로 열어 줬다. 이 3억은 미술관이 갚는 돈이다. 민간 모금은 목표 7억 5,000만 달러를 넘겨 8억 7,500만 달러 이상을 모았고, 건물값과 별개로 5,000만 달러가 상설 설치와 작가 커미션, 작품 구입에 들어갔다.

10.그럼 이 돈은 어디서 돌아오나. 일반 입장료는 성인 25달러, 이 미술관의 연간 관람객은 100만 명 안팎이다. 곱하면 2,500만 달러, 약 345억 원. 그런데 카운티 주민은 평일 오후 3시부터 무료이고 매월 둘째 화요일도 무료이며 17세 이하는 상시 무료다. 실제 1인당 입장 수입은 25달러보다 한참 아래일 수밖에 없다. 추정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11.이 건물이 실제로 판 것은 전시면적이 아니라 지면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늘은 자산이고, 미술관 앞 대로변은 하루 종일 볕이 내리꽂히는 자리였다. 판 하나를 9m 위로 올리는 결정에는 지상 4,285평을 도시에 넘겨준다는 계산이 붙어 있다. 표를 팔지 않는 면적에 사업비의 절반 가까이를 태운 셈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건물은 그냥 비싼 다리로 보일 뿐.

12.전시 방식도 같은 논리다. 지역별로도 연대순으로도 걸지 않고, 대서양과 지중해, 인도양과 태평양이라는 네 바다를 축으로 물건이 오간 경로를 따라 묶었다. 6,000년치 소장품에서 80개가 넘는 묶음, 한 번에 2,500점에서 3,000점. 문명별 방을 만들지 않으니 어느 나라 관도 없다.

13.반전은 면적표에 있다. 새 건물의 전시면적은 헐어 낸 네 채를 합친 것보다 1만 1,000제곱피트, 약 309평이 적다.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넣고 작품 걸 자리를 줄인 것이라, 개관 전부터 비판이 붙었다. 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미술 비평가 크리스토퍼 나이트(Christopher Knight)는 이 건물을 단조롭다고 썼고, 건축 비평가 조지프 지오바니니(Joseph Giovannini)는 설계자 선정과 예산 공개 과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공공이 절반을 대는 사업에서 도면과 예산이 늦게 나왔다는 지적.
14.그런데 돈은 계속 붙었다. 개관 갈라 하루에 1,150만 달러가 모였고 이 미술관 모금 행사 사상 최고 기록이 됐다. 비평가가 면적표를 들고 싸우는 동안 후원자는 다른 것을 샀다는 이야기다. 도시에서 눈에 띄는 형태 하나, 그 형태에 이름을 붙일 권리, 그리고 6년간 공사장이던 블록이 다시 사람으로 채워지는 장면.

15.20년을 준비하고 6년을 지어 약 9,988억 원짜리 미술관을 올렸는데 정작 작품 걸 면적은 약 309평 줄었고, 대신 표를 팔지 않는 그늘 4,285평이 도시에 생겼다. 이 방식을 국내로 옮기려는 쪽이 첫 회의에서 걸리는 자리는 조형이 아니라 그 무료 면적의 이름이다. 공공 문화시설 사업에서 지상 공용부는 사업 효과를 설명하는 칸에 넣기 어렵고, 예산 심의는 연면적당 사업비와 유료 관람객 수를 먼저 묻는다. 지면을 도시에 돌려주는 설계는 그 두 지표를 동시에 나쁘게 만든다. 그러니 이런 건물을 기획하는 쪽이 준비해야 할 것은 투시도가 아니라 비워 둔 면적의 값을 심의에서 방어할 논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