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서쪽 파라마타강 강변이다. 2026년 4월에 골조가 끝났고 연말에 문을 연다. 공사비 9억 1,500만 호주달러, 우리 돈 9,600억. 그런데 지상층 아래 4,340㎡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홍수 때 물이 그리로 지나가라고 비워 둔 층이다.
1.파워하우스 파라마타(Powerhouse Parramatta)는 뉴사우스웨일스주가 짓는 박물관이다. 자리는 시드니 도심에서 서쪽으로 24km 떨어진 파라마타, 파라마타강 남안. 2019년 말 국제 설계공모에서 파리의 Moreau Kusunoki와 호주의 Genton이 함께 낸 안이 뽑혔고, 시공은 Lendlease가 맡았다. 부지 1만 9,500㎡에 연면적 3만 4,000㎡. 골조 공사는 2026년 4월에 끝났고, 개관은 연말.
2.담은 것은 전시장 일곱 개와 극장, 200명이 앉는 시연 주방, 옥상 천문대다. 가장 큰 전시장 PS1은 천장 높이 18m에 바닥 2,200㎡가 넘고, 기둥이 하나도 없다. 호주에서 가장 큰 무주 전시공간. 그 옆 홀드마크 갤러리(Holdmark Gallery)는 2,300㎡에 천장 8m. 옥상에는 지붕이 열리는 천문대와 자생식물 정원이 올라갔고, 건물 안에는 작가와 연구자가 쓰는 레지던시 스튜디오 30실, 지방 학생 연 1만 명이 묵는 숙소가 들어간다.

3.기둥이 없는 이유는 구조를 통째로 바깥에 세웠기 때문이다. 흰 강철 격자 1,300여 개가 유리면 밖에 서서 건물 하중을 받는다. 쓴 철골이 1만 2,000톤, 조인 볼트와 너트와 와셔가 14만 7,000개, 박은 말뚝이 230개, 외부 유리가 1만 3,000㎡ 이상. 격자 형태는 도쿄대 구조 연구자 사토 준(佐藤淳)과 논의하며 잡았고, 설계팀이 이 방식에 붙인 이름은 세 종류의 격자를 겹친다는 뜻의 lattice3.

4.기하가 촘촘해질수록 부재 하나가 받는 힘은 줄고, 그만큼 철을 덜 쓴다. 강가에서 이 건물을 보면 흰 선의 다발이 먼저 오고 유리가 그 뒤에 있다. 낮에는 격자가 안쪽에 그림자를 긋고, 밤에는 전시장 불빛이 격자 사이로 새어 나온다. 안에서는 반대. 창틀 대신 사선이 도시와 강을 잘라 보여 준다.

5.이 방식에는 값이 붙는다. 구조를 밖으로 빼면 철골 물량이 늘고, 외기에 노출된 강재는 내화와 방식 처리를 따로 해야 한다. 그 값을 치르고 산 것이 18m짜리 무주 공간 하나. 미술관 운영자에게 기둥은 배치 제약이자 미래의 손실. 30년 뒤에 어떤 전시가 들어올지 아무도 모르는데, 기둥은 그 30년치 선택을 지금 잘라 놓는다.

6.더 큰 값은 발밑에 있다. 지상층 아래로 약 4,340㎡가 통째로 비어 있다. 홍수가 나면 물이 그 층을 지나가도록 열어 둔 자리다. 지상층 바닥은 표고 7.5m에 놓았고, 주 정부 발표로는 1,000년에 한 번 오는 파라마타강 홍수에서도 바닥이 수면보다 0.5m 위에 남는다. 소장품이 들어가는 전시장은 100년 빈도 홍수위보다 모두 위에 있다.
7.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당선안에서 이 4m 높이 빈 층은 건기에 체육시설과 전시장으로 쓰는 공간이었다. 2020년 2월 10일 강물이 평소보다 3m 넘게 불면서 계획이 흔들렸고, 주 의회 청문을 거쳐 사람을 들이는 용도가 빠졌다. 물이 차면 그 안의 사람이 나올 길이 없다는 지적. 남은 것은 구조와 바닥과 하늘뿐인 공백.

8.그러면 왜 굳이 물가였나. 파라마타는 시드니의 두 번째 도심이고, 서부 시드니에는 시드니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산다. 그런데 주요 문화시설은 오래도록 동쪽 항만 쪽에 몰려 있었다. 주 정부는 1988년부터 울티모(Ultimo)에서 돌던 파워하우스 본관을 서쪽으로 옮기기로 했고, 울티모관은 2024년 2월 4일 문을 닫았다. 지금 그 자리에는 3억 호주달러, 약 3,150억 원짜리 재생 공사가 돌아가고 있다.
9.문화시설의 주소는 도시가 누구를 중심으로 보는지 적어 놓은 문장이다. 서부 시드니 사람에게 박물관 관람은 그동안 기차로 편도 한 시간짜리 외출. 그 한 시간이 사라지면 방문 빈도가 몇 배로 뛴다. 주 정부가 잡은 목표 방문객이 연 200만 명인데, 이 숫자는 전시가 좋아서 나오는 값이라기보다 거리에서 나오는 값에 가깝다.

10.돈을 보자. 2020년 사업계획서가 채택한 안의 사업비는 6억 7,400만 호주달러였다. 최종 집계는 9억 1,500만. 우리 돈으로 7,100억에서 9,600억으로 올랐다(1호주달러 1,050원 기준). 연면적 3만 4,000㎡로 나누면 ㎡당 2,826만 원, 평당 약 9,300만 원이다. 주 정부가 쓰는 연면적 3만㎡를 대입하면 평당 1억 600만 원까지 간다.
11.이 돈은 티켓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요금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고, 울티모관 성인 15달러를 그대로 대입해도 연 200만 명이면 3,000만 달러, 315억 원이다. 16세 이하가 무료였으니 실제 유료객은 그 절반 아래로 내려간다. 공사비만 갚는 데 30년이 넘고 운영비는 아직 손도 안 댄 계산. 공립 미술관에서 티켓은 회수 수단이 아니라 문턱 조절 장치다.
12.회수는 다른 칸에 적혀 있다. 공사에 4,000명 넘게 붙어 270만 시간을 일했고, 인력의 75%가 서부 시드니 사람이다. 3억 2,900만 달러, 약 3,450억 원어치 계약이 서부 시드니 업체로 갔다. 짓는 동안 공사비의 36%가 이미 그 지역 안을 한 바퀴 돈 상태. 주 정부가 이 사업을 문화 예산이 아니라 지역 개발 예산의 문장으로 설명해 온 이유가 여기 있다.

13.비워 둔 4,340㎡의 값을 따로 세어 볼 만하다. 1,313평. 그만큼의 기초와 구조와 외피는 이미 값을 치렀는데 바닥면적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평당 9,300만 원을 그대로 곱하면 1,200억 원어치 자리가 물의 몫으로 넘어갔다. 강가 땅을 사는 값에는 이 항목이 늘 숨어 있고, 그걸 사업 초기에 세지 않으면 나중에 설계가 뒤집힌다.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그랬다.

14.치른 값이 돈만은 아니었다. 부지에는 빅토리아 시대 이탈리아네이트 양식 저택 윌로 그로브(Willow Grove)와 연립주택 일곱 채 세인트조지스 테라스(St George's Terrace)가 있었다. 주민과 원주민 공동체가 3년을 버텼고 건설노조가 그린밴을 걸었지만 저택은 2021년 말 해체됐다. 다른 자리에 다시 세우는 데 1,000만 달러가 든다고 봤는데, 현 주 정부는 그 재건을 접었다. 그렇게 세운 건물은 가짜 유산이라는 게 유산 전문가들의 판단. 남은 것은 부재를 쌓아 둔 창고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15.물가에 세운 큰 건물은 보통 둘 중 하나를 한다. 제방을 쌓아 물을 막거나, 필로티로 몸을 띄우고 아래를 주차장으로 돌리거나. 이 건물은 세 번째를 골랐다. 아래를 띄우되 그 자리를 쓰지 않기로 한 선택. 쓰지 않기로 한 면적은 도면에서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항목이고, 발주처가 그걸 받아들이려면 홍수 모형과 청문회 기록이 필요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둘 다 있었다.
16.연말에 문을 열면 PS1에서 개관전 Task Eternal이 걸린다. 12개국에서 빌려 온 600점 넘는 물건이 하늘·힘·지구 밖·귀환 네 갈래로 놓이고,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업도 그 안에 들어간다. 공사비 9,600억 가운데 3,450억이 착공 단계에서 이미 지역으로 돌아갔고, 티켓으로 잡을 수 있는 돈은 연 315억이 상한이다. 국내에서 이런 계산을 그대로 들고 가면 먼저 걸리는 건 하천 점용과 건축 한계선 쪽이다. 하천구역과 홍수관리구역에 걸린 땅은 지상층 표고부터 심의 대상이 되고, 비워 둔 층은 용적률 인센티브로도 잘 바뀌지 않는다. 그 면적을 누가 부담할지 정하지 못한 채 설계를 시작하면, 물이 아니라 사업이 먼저 잠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