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서 본 완공 예상도가운데 주름진 매스가 신축 타워. 오른쪽이 카지노 단지, 왼쪽 끝이 유레카타워. ⓒPDG
데일리 스페이스
개발을 막는다던 1926년 펍이 이번엔 정문이 됐다 (호주·재생건축)
2026.08.31
멜번 사우스뱅크의 강변 부지가 15년 만에 풀렸다. 총사업 15억 호주달러, 승인은 67층. 6년 전 당시 소유주가 지정을 반대했던 유산 펍은 헐리지 않고 이 건물의 정문이 된다.
1.빅토리아주 계획장관이 8월에 멜번 사우스뱅크(Southbank) 1-29 퀸스브리지 스트리트(Queens Bridge Street)의 복합건물 허가를 냈다. 부지 5,059㎡, 승인 층수 67층, 총사업 15억 호주달러. 설계는 Cox Architecture와 ODO, 시행은 PDG. 야라강(Yarra River) 남쪽 강변, 카지노 단지와 붙은 자리다.
2.지금 그 땅에 서 있는 것은 2층을 넘지 않는 빈 상가 네 채와 펍 한 채. 1926년에 지은 그 펍이 이 사업의 정문이 된다. 강을 낀 도심 한복판에서 15년 넘게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던 자리.
3.타워는 세로로 여섯 줄 주름을 잡았다. 강물의 움직임에서 왔다는 것이 설계 쪽 설명이고, 눈에 보이는 효과는 다른 데 있다. 폭이 넓은 판 하나로 설 매스를 좁은 면 여섯 개로 쪼개 놓으니, 강 건너에서 보면 한 덩어리가 아니라 다발로 선다.
해 진 뒤주름 사이로 빛이 갈라진다. 강변 산책로가 저층부와 바로 붙는다. ⓒPDG
4.저층부는 10개 층을 쌓았다. 여기에 주차 518대와 주민 공용시설이 들어가고, 라운지·코워킹·도서실·실내 수영장·체육관이 층을 나눠 앉는다. 퀸스브리지 스트리트에서 프레시워터 플레이스(Freshwater Place)로 빠지는 527㎡짜리 골목을 새로 뚫어 식음료를 붙였다. 도면에서 제일 눈에 띄는 자리.
5.펍은 흰 벽. 벽면에 세로 홈을 파 기둥처럼 세웠고 모퉁이 상부에 이름을 새겼다. 1층 차양은 보도 폭만큼 나오고 그 아래 탁자가 깔린다. 옥상 난간을 따라 화분을 줄지어 놓아 두 개 층 위 유리 저층부와 사이를 띄웠다. 이 띠가 없으면 옛 건물이 새 건물의 받침대로 보인다.
정문이 되는 펍모퉁이 상부의 새김 글자가 원래 이름.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것이 신축 저층부. ⓒPDG지금의 그 길사업 부지가 면한 퀸스브리지 스트리트. 트램과 버스가 같은 노면을 쓴다. ⓒYmblanter · CC BY-SA 4.0
6.땅은 2024년 12월에 손이 바뀌었다. 시행사가 블랙스톤(Blackstone)에서 8,500만 호주달러에 샀고, 1㎡당 16,801호주달러다. 원화로 평당 약 5,200만 원(1호주달러 940원 기준). 블랙스톤은 2022년에 카지노 운영사를 89억 호주달러에 통째로 인수하면서 이 땅을 함께 가져갔다.
부지가 놓인 자리강 남쪽이 사우스뱅크. 오른쪽 고층군이 카지노 단지이고 사업 부지는 그 서쪽. ⓒNick-D · CC BY-SA 4.0
7.8,500만은 총사업 15억의 5.7%다. 세대로 나누면 한 채당 토지비가 14만 호주달러, 원화 1억 3,600만 원쯤. 강변 노른자인데도 이 숫자가 나오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층을 67개까지 쌓아 땅값을 나눠 지기 때문.
도표 읽는 법막대 길이가 금액. 검은 막대가 총사업비, 옅은 막대가 땅값.
8.담기는 것은 주거만이 아니다. 3월 공람에 걸린 제출안 기준으로 71층에 주거 637세대, 호텔 181실, 오피스 2,762㎡, 상가 1,741㎡. 주거는 방 하나짜리 192호와 둘짜리 302호가 대부분이고 넷짜리는 14호에 펜트하우스가 다섯이다. 8월 승인 뒤 나온 발표는 67층과 588세대.
위에서 보는 값강과 철도 승강장, 도심이 한 화면에 든다. 이 조망이 분양가의 상당 부분. ⓒPDG
9.이 사업에는 금액이 두 개 돌아다닌다. 3월 제출안에 붙은 값은 4억 5,000만 호주달러이고 8월 발표는 15억이다. 앞의 것은 짓는 데 드는 돈, 뒤의 것은 다 짓고 팔았을 때 나오는 값이라고들 한다. 둘의 차이 10억이 땅값과 금융비용, 그리고 시행사 몫이 된다.
10.저층부에 붙는 식음료가 이 사업에서 하는 일은 임대료 수입이 아니다. 골목 527㎡와 펍 안팎의 자리는 다 합쳐도 상가 1,741㎡ 안이고, 이 면적이 15억짜리 사업의 수지를 흔들 수는 없다. 그 대신 저층부는 주거 588세대의 분양가를 떠받친다. 강변 산책로에서 걸어 들어올 수 있는 1층이 있느냐 없느냐로 같은 층 같은 향의 집값이 갈린다.
문 앞의 정류장부지가 면한 노면에 버스와 트램이 같은 정류장을 쓴다. ⓒPhilip Mallis · CC BY-SA 2.0
11.유산 지정이 개발을 막는다는 말은 이 자리에서 6년 전에 실제로 나왔다. 2020년 9월 계획심의 패널에 카지노 운영사 쪽 전문가가 나와, 이 펍에 유산 오버레이를 씌우면 정당한 개발 기회가 훼손되고 지역이 얻을 편익도 줄어든다고 진술했다. 패널의 판단은 반대. 법이 정한 목적과 유산 정책이 주는 공공 편익이 개별 사정보다 크다는 것.
다리 남쪽 광장사업의 공공기여로 이 광장이 다시 짜인다. ⓒDietmar Rabich · CC BY-SA 4.0
12.6년이 지나 나온 답이 지금의 안. 펍을 부수는 대신 그 안으로 사람을 들이고, 뒤에 큰 아트리움을 두고, 옥상에 바를 얹어 강변 산책로를 내려다보게 했다. 지키라고 씌운 규제가 동선의 출발점이 됐다. 심의에서 실제로 다투는 것은 꼭대기가 아니라 사람이 걷는 높이다.
옆에 붙은 단지부지 동쪽에 붙은 카지노 단지. 이 단지의 소유권이 바뀌면서 땅이 시장에 나온 것. ⓒDonaldytong · CC BY-SA 3.0
13.이 땅에는 이미 한 번 호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설 뻔했다. 2017년 2월에 승인받은 계획은 높이 323m에 90층, 호텔 388실과 주거 708세대, 공공기여 1억 호주달러였다. 설계는 국제공모로 뽑혔고 카지노 운영사가 시공사와 손을 잡았다. 그 허가는 2019년에 그대로 만료.
도표 읽는 법막대 길이는 각 항목의 규모. 같은 항목끼리 위아래로 붙여 놓았다.
14.유산이라 부르는 그 건물의 속은 사실 비어 있다. 1880년대에 폴스브리지 호텔(Falls Bridge Hotel)로 문을 열었고, 1926년에 17,000파운드를 들여 다시 지었다. 1990년대에 나이트클럽으로 바뀌면서 1,200만 호주달러를 들인 개조로 내부가 통째로 걷혔다. 오버레이가 지키는 것은 그래서 껍데기뿐. 2020년에 개발을 막는다고 지목됐던 그 껍데기가 이번엔 정문 간판으로 쓰인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왼쪽이 도심, 오른쪽이 사우스뱅크. 이 강변이 사업의 값을 만든다. ⓒJorge Láscar · CC BY 2.0
15.15년 비어 있던 강변 5,059㎡가 8,500만 호주달러에 팔린 뒤 15억짜리 계획으로 허가를 받았고, 4월에 철거와 선행 공사가 시작됐다. 그 사이에 바뀐 것은 층수와 세대수가 아니라 1926년 건물을 대하는 태도다. 국내에서 같은 일을 하면 여기서 걸린다. 등록문화유산이나 조례로 지정된 건물을 안고 가는 계획은 심의 회차가 늘고 그만큼 금융비용이 붙는데, 그 늘어난 개월 수를 사업수지에 미리 넣어 두는 시행사가 드물다. 껍데기를 남기는 값은 공사비가 아니라 시간으로 먼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