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에 지은 26층 오피스가 B급으로 내려앉아 있었다. 소유주는 헐지 않고 2억 호주달러를 넣어 3년을 고쳤고, 구조는 한 층도 걷어내지 않았다. 신축보다 공사비가 20~30% 덜 들었고 내재탄소는 75%가 줄었다. 그리고 임대 등급은 B에서 프리미엄으로 올라갔다.
1.2025년 6월 6일, 시드니 서큘러키(Circular Quay)의 33 알프레드 스트리트(33 Alfred Street)가 다시 문을 열었다. 3년을 닫아걸고 2억 호주달러를 넣은 공사. 원화로 약 1,900억 원, 호주달러 950원으로 환산한 값이다.
2.원래 이름은 AMP 빌딩(AMP Building). 1962년 11월 23일 로버트 멘지스(Robert Menzies) 총리가 개관식에 왔고, 26층 117m로 그때 호주에서 가장 높았다. 설계는 Peddle, Thorp & Walker. 시드니가 오래 지켜 온 150피트 높이 제한을 처음 넘은 건물이었다.

3.고친 자리는 껍데기다. 커튼월을 통째로 뜯고 5,000장 남짓한 패널을 새로 달았는데, 한 장이 높이 3.8m에 폭 1.2m다. 설계는 Johnson Pilton Walker(JPW), 시공은 Built.

4.동서 양쪽 측벽은 타일로 마감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 공장 Tichelaar가 7만 5,782장을 손으로 유약 입혀 구웠다. 1962년 벽도 백색 타일이었다. 재료를 바꾼 게 아니라 같은 재료를 60년 만에 다시 만들었을 뿐.

5.손으로 입힌 유약은 낱장마다 색이 조금씩 어긋난다. 그 어긋남이 7만 장 쌓이면 가까이서는 얼룩이고 멀리서는 흰 벽 한 장이 된다. 공장에서 찍어 낸 타일로는 안 나오는 표면이다. 시드니 항의 소금기 섞인 바람을 60년 넘게 맞아 온 면. 재료를 함부로 바꿀 자리가 아니었다.

6.설비 하나는 손대지 않고 살렸다. 1962년에 넣은 해수 냉방인데, 항만의 바닷물을 끌어와 열을 버리는 방식으로 호주에서 처음 쓴 장치였다. 이번 공사는 그걸 걷어내지 않고 고쳐 다시 돌린다. 옥상에는 80kW 태양광과 빗물 집수조가 새로 올라갔고.

7.헐지 않은 이유는 임대차 계약서에 있다. 시드니 CBD에서 B급 오피스는 명목 임대료를 받고 나서 절반을 인센티브로 되돌려 준다. 2026년 1분기 기준으로 B급 인센티브가 50.0%, A급이 48.0%, 프리미엄이 47.0%.
8.차이가 3%p뿐이라 작아 보이지만, 인센티브를 빼고 남는 실질 임대료의 출발선 자체가 등급마다 다르다. 낡은 건물이 임대료를 올릴 길은 사실상 등급을 갈아 끼우는 것 하나. 이 건물은 B급에서 A급을 건너뛰고 프리미엄으로 갔다.

9.임대 가능 면적이 약 3만 1,000㎡다. 2억 호주달러를 이 면적으로 나누면 ㎡당 6,450호주달러가 들었고, 평으로 고치면 2,030만 원쯤 된다. 골조를 세우는 값이 아니다. 이미 서 있는 골조에 껍데기와 설비만 붙인 값.
10.비싸 보이는 숫자지만 대안보다는 쌌다. 개발사 쪽 설명으로는 같은 건물을 헐고 다시 짓는 경우와 견줘 공사비가 20~30% 덜 들었다. 구조를 그대로 둔 덕에 내재탄소도 75% 줄었다고.

11.시드니 프라임 오피스의 실질 임대료는 2026년 1분기에 ㎡당 연 840호주달러였다. 3만 1,000㎡를 다 채우면 연 2,600만 호주달러다. 원화로 약 247억 원. 개조비만 놓고 나누면 7.7년이 나온다.
12.토지값과 기존 건물의 장부가는 뺀 계산이라 실제 투자수익률과는 다르다. 다만 임대차는 실제로 그 속도를 냈다. 재개관 시점에 이미 93%가 나갔고, 로펌 Allens가 위쪽 아홉 개 층을 통째로 가져갔다.

13.시장이 이 건물을 받아 준 데는 공급이 없다는 사정도 깔려 있다. 2026년 시드니 CBD에는 새로 들어오는 오피스가 한 동도 없고, 프리미엄 공실률은 8.9%로 등급 가운데 가장 낮다. 헐고 다시 지었다면 그 3년을 고스란히 흘려보냈을 텐데.
14.같은 물가에 선례가 하나 더 있다. 길 하나 건너 50 브리지 스트리트의 Quay Quarter Tower가 2022년에 문을 열었는데, 1976년 AMP 센터(AMP Centre)를 헐지 않고 바닥과 기둥의 65%, 코어의 95%를 남긴 채 49층으로 키운 건물이다. 그 1976년 건물을 설계한 곳도 Peddle, Thorp & Walker. 한 설계사무소가 60년대와 70년대에 나란히 올린 두 동을, 다음 세대가 둘 다 남기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15.1962년에 지은 26층이 B급으로 내려앉았고, 소유주는 헐지 않고 2억 호주달러를 들여 프리미엄으로 되돌렸다. 구조를 남긴 값으로 아낀 공사비가 20~30%. 국내에서 같은 일을 하려면 먼저 심의에 걸린다. 사용승인 15년이 지난 건물은 건축위원회 심의를 거쳐 건폐율·용적률·높이·일조 기준을 완화받을 수 있다. 노후 건축물이 60%를 넘는 구역으로 지정되면 기존 연면적의 30%까지 늘릴 여지도 생긴다. 다만 얼마를 완화받을지는 심의가 끝나야 안다. 시드니 쪽은 3년 공정표를 손에 쥐고 자금을 굴렸지만, 국내에서는 늘릴 면적과 공사비가 미정인 상태로 대출 조건부터 정해야 한다. 준공 10년을 넘긴 재고가 78%인 서울 도심에서, 이 순서가 뒤집히지 않는 한 낡은 건물은 계속 헐리는 쪽이 빠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