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옆 오피스 두 동이 2023년에 문을 닫고 헐렸다. 남은 땅이 1만 784㎡. 새 빌딩을 바로 올릴 수도 있었는데 소유주는 9월 1일에 다른 걸 착공했고, 지을 것은 지상 1층에 높이 5m다. 몇 년 쓰고 뜯는다. 대신 뜯어서 다시 세울 수 있게 짰다.
1.2026년 9월 1일,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区) 유라쿠초(有楽町) 1초메에서 공사가 시작됐다. JR 유라쿠초역 중앙서쪽 출구 바로 앞, 부지 1만 784㎡다. 이름은 YURAKUCHO PARK. 준공은 2027년 8월.

2.여기 있던 건 유라쿠초빌딩(有楽町ビル)과 신유라쿠초빌딩(新有楽町ビル)이다. 1966년 5월과 1967년 1월에 각각 준공했고, 연면적을 합치면 12만 5,182㎡. 두 동은 2023년 10월 31일에 문을 닫았고 해체 공사는 2024년 12월에 들어갔다.


3.그 자리에 다시 올리는 게 지상 1층, 최고 높이 약 5m다. 용도는 음식점과 매장, 이벤트 공간. 설계는 미쓰비시지쇼설계(三菱地所設計), 시공은 다이세이건설(大成建設)이 맡았고 기획과 디자인은 NOT A HOTEL이 붙었다.

4.흙을 되메우지 않았다. 헐어 낸 두 동의 지하 구체를 그대로 두고 그 위를 덮어 바닥으로 삼는데, 지하 5층까지 내려간 콘크리트 상자가 통째로 새 건물의 기초가 된다. 파낸 흙을 다시 채우고 다시 파내는 공정이 통으로 빠지는 것.

5.한 칸만 위로 남겼다. 도쿄메트로 유라쿠초선 D2 출구와 붙어 있는 스팬인데, 여기만 헐지 않고 지상 2층까지 남겨 개찰구로 가는 길을 열어 뒀다. 위에서부터 필요한 만큼만 잘라 내려온 것.

6.그 위에 서는 건물이 11동이다. 아치 문 모양의 골조를 세우고 지붕에 흙을 얹어 풀과 나무를 심는데, 쓴 재료가 국산 삼나무 CLT 480㎥다. CLT는 보통 벽을 만드는 판재다. 그걸 기둥과 보로 세운 것.

7.방화지역에서 목재를 드러낸 채 100㎡를 넘기려면 내화 성능을 따로 인정받아야 한다. 오테마치(大手町)와 마루노우치(丸の内), 유라쿠초 일대에서 이 규모로 CLT를 노출한 건 처음이라고 사업자는 설명한다. 몇 년만 쓸 건물에 정식 건축물의 절차를 다 밟은 것.
8.접합부는 전부 풀린다. 볼트와 철물을 새로 설계해 아치를 통째로 해체하고 다른 자리에 다시 세울 수 있게 했다. 벤치와 식재는 12개 지자체가 보냈는데, 아키타현 오다테시(大館市)의 삼나무부터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石垣市)의 류큐 소나무까지 들어온다.

9.2026년 공시지가로 유라쿠초 상업지는 ㎡당 1,352만 엔이다. 부지 1만 784㎡에 곱하면 1,458억 엔이 나온다. 원화로 1조 2,500억 원쯤. 100엔을 864원으로 환산한 값.
10.두 동이 문을 닫은 2023년 10월 31일부터 파크가 여는 2027년까지가 4년이다. 그동안 12만 5,182㎡에서 나오던 임대료는 0. 도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무실 시장 한복판에 있는 땅이 4년을 쉰다.
11.마루노우치 오피스는 평당 월 3만 3,000엔에서 5만 엔을 받는다. 2026년 공실률은 0.9%. 이 시장에서 1만㎡가 넘는 땅을 가림막으로 4년 둘러 두는 비용은 어디서 나오나. 세금이 아니라 못 받은 임대료 쪽이다.
12.음식점과 매장, 이벤트 공간이 새 빌딩이 설 때까지 몇 년치를 벌고, 그 몇 년 동안 이 모퉁이가 계속 사람 다니는 곳으로 남는다. 잠깐 쓰는 건물은 보통 철거비만 남기고 사라지는데, 480㎥는 다음 현장으로 간다. 임야청(林野庁)의 2024년도 CLT 활용 건축물 실증사업으로 지어 공사비 일부도 보조받았고.
13.미쓰비시지쇼(三菱地所)는 유라쿠초와 도키와바시(常盤橋) 두 곳에 2030년까지 6,000억에서 7,000억 엔을 넣겠다고 밝혔다. 원화로 5조 원이 넘는 돈. 이 자리에 들어설 새 빌딩은 연면적 10만㎡를 넘긴다고 회사는 밝히고 있다.
14.사람을 부르는 장치는 결국 이름. 마당 가운데에 KAWS의 조각이 눕고,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NIGO가 만드는 JAPA VALLEY TOKYO가 2027년에 이 안으로 들어온다. 몇 년짜리 시설에 이 정도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가 잠정이용의 성패를 가른다.

15.이 연습은 처음이 아니다. 같은 회사가 2020년부터 有楽町Micro STARs Dev.라는 이름으로 유라쿠초 빌딩들의 빈 층을 내줬고, 2022년 2월에는 유라쿠초 아트 어바니즘(有楽町アートアーバニズム)을 열어 폐관을 앞둔 유라쿠초빌딩 안에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들였다. 건물이 죽어 가는 몇 년을 쓰는 법을 그때 익혔고, 이번에는 건물이 사라진 땅으로 그 방식을 옮겼다.

16.도쿄역 옆 1만 784㎡에서 오피스 두 동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몇 년 쓰고 뜯을 지상 1층이 올라간다. 헐린 연면적 12만 5,182㎡의 1,000분의 1도 안 되는 밀도로 4년의 공백을 메운다. 국내에서 같은 걸 하면 존치기간에서 막힌다. 이런 시설은 보통 가설건축물로 신고하고, 3년을 쓴 뒤 조례가 정한 횟수만큼 3년씩 연장하는 구조. 일본 쪽은 몇 년만 쓸 건물에 내화 인정까지 받아 정식 건축물로 지었고, 그래서 KAWS와 퍼렐 윌리엄스를 붙일 수 있었다. 3년짜리 연장 신고를 매번 다시 하는 시설에 그런 이름은 오지 않는다. 세금도 같이 움직인다. 땅을 비워 두면 종합합산이라 기본공제가 5억 원, 그 위에 건축물을 얹어 부속토지로 인정받으면 별도합산이라 80억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