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도심 사무실 공실률이 28.6%다. 그 한복판에서 1911년에 지은 은행 본점 하나가 아파트 345세대와 객실 226실로 바뀐다. 4월에 내부 철거 허가가 났고, 도면에서 제일 먼저 눈에 걸리는 것이 뒤쪽을 세로로 뚫은 구멍. 팔 수 있는 바닥을 버려야 나머지가 집이 된다.
1.시카고 루프(Loop)에서 클라크가(Clark Street)와 먼로가가 만나는 모퉁이. 부지가 1에이커, 약 4,047㎡다. 2026년 4월 7일에 이 건물의 내부 철거 허가가 나왔고, 걷어내는 사무실 면적이 31만 5,000평방피트, 2만 9,265㎡다.

2.주소가 111 W. 먼로가(111 W. Monroe Street)다. 1911년에 해리스 트러스트 앤드 세이빙스 뱅크(Harris Trust and Savings Bank)의 본점으로 지었고 설계는 Shepley, Rutan & Coolidge.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과 시카고 문화원(Chicago Cultural Center)을 그린 사무소. 1960년에는 Skidmore, Owings & Merrill이 그 옆에 유리 탑을 붙였다.

3.두 동이 한 덩어리로 묶여 2025년 7월 시의회에서 시카고 랜드마크로 지정됐다. 지켜야 하는 것은 1911년 동과 1960년 동의 모든 외벽, 그리고 1911년 정면에 박힌 청동 사자 부조. 겉은 이제 손대지 못한다.
4.여기 들어갈 것이 아파트 345세대와 호텔 객실 226실이다. 호텔이 3층에서 10층까지, 주거가 12층 위로 열두 개 층. 2층은 1,486㎡짜리 연회장이고 1층에 식당과 매장이 들어간다. 설계는 Stantec. 시행은 The Prime Group과 Capri Investment Group이 함께 만든 Prime/Capri Interest LLC다.
5.아래를 호텔로 두고 위를 집으로 올린 이유는 취향이 아니라 깊이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지은 미국 사무실은 외벽 유리에서 가운데 코어까지 15~21m가 보통인데, 거실과 침실은 창에서 9m를 넘어가면 쓰기 어렵다. 미국 건축법규가 사람이 지내는 방에 자연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거 전환 검토에서 떨어지는 건물의 58%가 이 깊이에 걸린다는 집계도 있다.

6.그래서 건물 뒤쪽을 세로로 팠다. 바닥판을 층층이 도려내 위에서 빛이 내려오게 하고, 그 구멍 둘레를 따라 원룸과 방 하나짜리를 돌렸다. 안쪽을 보던 자리가 창을 얻는 대신 건물은 면적을 잃는다.

7.판 자리에서는 임대료가 다시는 안 나온다. 광정은 공사비를 쓰면서 팔 면적을 지우는 일이라, 한 번 뚫으면 건물이 서 있는 내내 그만큼을 못 받는다. 그 손실을 감수해야 위쪽 열두 개 층이 집이 된다.

8.시카고 도심 사무실 공실률은 28.6%로 사상 최고다. 루프 안에서도 라살가(LaSalle Street) 축이 가장 심한데, 은행과 법률사무소가 줄줄이 빠져나간 자리라 빈 면적이 한군데로 몰려 있다. 그렇다고 빈 건물이 다 집이 되지는 않는다. 은행 본점은 그중에서 고르기 좋은 물건. 층고가 높고 구조가 튼튼하며 마감이 남아 있어서, 새로 지으면 아무리 돈을 써도 못 만드는 것들이 이미 붙어 있다.

9.그 초록 대리석 기둥이 지금도 그대로 서 있고, 기둥 사이에 호텔 프런트가 들어온다. 옥상에서는 은행 시절의 먼로 클럽(The Monroe Club)을 되살려 식당을 넣고, 기계실이던 펜트하우스 자리에 수영장 데크를 얹는다.


10.주거분 사업비가 1억 7,920만 달러다. 345세대로 나누면 세대당 51만 9,000달러, 원화로 약 7억 원. 1달러 1,350원으로 환산한 값.
11.시가 대는 돈이 여기 붙는다. 2026년 6월 지역개발위원회가 라살 센트럴 조세담보금융 구역(LaSalle Central TIF)에서 5,000만 달러 대출을 의결했고, 20년 상환에 첫 5년은 이자만 낸다. 2025년에 승인했던 금액은 4,000만 달러.
12.호텔 쪽은 재산세로 받는다. 쿡 카운티(Cook County)의 클래스 L(Class L) 감면이 12년에 걸쳐 1,940만 달러인데, 호텔 사업비 1억 750만 달러의 18%. 저소득주택 세액공제와 연방 역사보존 세액공제도 함께 들어간다.
13.345세대 가운데 104세대가 중위소득 60% 가구 몫. 앞의 5,000만 달러를 그 104세대로만 나누면 세대당 48만 달러, 6억 5,000만 원이 나온다. 시가 저렴주택 한 채를 얻는 값이 그 건물에서 아파트 한 채를 만드는 값과 거의 같다.

14.가운데를 비워 빛을 들이는 수법은 새것이 아니다. 여기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1880년대에 지은 루커리 빌딩(The Rookery)이 서 있는데, 그 건물은 이미 한복판을 비우고 유리 지붕을 덮었다. 전깃불도 공조도 없던 시절에 빛과 공기를 끌어들이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140년 가까이 지나 같은 수법이 돌아온 것이다. 사무실은 형광등과 공조로 깊은 층을 버텼는데, 사람이 사는 순간 그게 안 통한다.

15.시가 고른 사업은 다섯 개, 넣기로 한 조세담보금융이 1억 5,120만 달러이고 새로 생길 집이 1,000세대를 넘는다. 그중 319세대 이상이 저렴주택. 그런데 2023년에 대상을 고른 뒤 3년이 지나도록 입주가 시작된 곳이 하나도 없다. 135 S. 라살가의 1934년 필드 빌딩(Field Building)은 2억 4,150만 달러를 들여 386세대로 바꾸는데 첫 입주가 2027년 여름이고, 208 S. 라살가의 1914년 은행 건물은 22개 층 가운데 13층에서 16층까지 네 개 층만 잘라 226세대를 만든 뒤 나머지는 사무실로 남긴다.

16.1911년 은행 본점 2만 9,265㎡가 아파트 345세대와 객실 226실로 갈라지고, 그 배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뒤쪽을 세로로 도려낸 구멍 하나다. 팔 면적을 영구히 지우는 대신 열두 개 층이 창을 얻었고, 그 대가를 메우려고 시가 5,000만 달러를 대출로 넣었다. 한국에서 이 수술을 하면 두 군데서 막힌다. 채광과 주차다. 공동주택은 채광창이 있는 벽면에서 인접 대지경계선까지 거리를 띄워야 하는데 도심 꽉 찬 대지에서는 기존 창을 그대로 못 쓰는 경우가 나온다. 주차는 셈법 자체가 바뀐다. 업무시설은 면적으로 대수를 매기고 공동주택은 세대 수로 매기니, 같은 건물인데 필요한 주차가 달라진다. 국내 전환이 오피스텔로 몰리는 게 그 때문. 오피스텔은 채광 규정을 비켜 가는 대신 주택이 아니다. 먼저 계산할 것은 공사비가 아니라 몇 ㎡를 버릴 수 있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