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 앞에 새로 선 25층 오피스의 지하 1층에 16세기 종로 뒷골목이 발굴된 자리 그대로 누워 있다. 관람료는 0원. 건물을 지은 쪽은 이 골목을 남기는 대가로 8개 층을 더 받았다.
1.2026년 7월 1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초입의 새 오피스 G1 SEOUL(이하 G1) 지하 1층에서 인사도시유적전시관이 관람객을 받기 시작했다. 면적은 4,810㎡. 서울 도심의 유적전시관 가운데 가장 넓다. 입구는 건물 로비와 따로 인도 쪽에 냈고, 운영은 서울역사박물관 몫이다.

2.건물은 지하 8층, 지상 최고 25층짜리 두 동. 연면적은 약 4만 3,400평이다. 시행사 랜스퍼트AMC가 개발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이 지었으며, 공사는 올해 4월에 끝났다. 종각역에서 걸어서 닿는 이 부지를 개발 전에는 공평구역 15·16지구라 불렀다.
3.계단을 내려가면 벽을 따라 좁은 골목처럼 이어지는 관람로가 나오고, 관람로 곳곳에 유리를 깔아 발밑을 내려다보게 했다. 유리 아래에는 16세기 건물지 6동과 배수로, 옛길이 나온 자리 그대로 놓여 있다.


4.천장은 배관을 드러낸 채 어둡게 두고, 조명은 흙바닥과 벽의 안내판에만 떨어진다. 돌 기단 사이로 네모난 콘크리트 기둥이 몇 개 박혀 있는데, 그 위로 오피스가 올라간다. 발굴 구덩이 단면에는 깨진 그릇 조각이 흙 속에 비스듬히 꽂힌 채 남았다. 유물만 골라 꺼내 가지 않고 흙째 둔 현장 박물관.


5.두 번째 구역의 주인공은 공동우물. 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 우물 하나가 유리 바닥 아래 드러나 있다. 벽에는 전시관 반경 500m 안의 유적 26곳에서 우물이 나왔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6.가장 이름난 유물은 활자. 2021년 발굴 조사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도기 항아리에 담긴 채 한꺼번에 나왔고, 그 가운데에는 훈민정음 창제 무렵의 표기를 따른 한글 활자가 섞여 있었다. 세종 때 만든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의 부품도 같은 자리에서 처음 실물로 확인됐다. 전시관은 활자 441점을 내놓았고, 일성정시의는 실물 크기로 복원해 세웠다.

7.도심 재개발 현장에서 유적은 오랫동안 공사를 멈춰 세우는 골칫거리였다. 발굴 조사가 길어지면 공정이 밀리고, 그동안에도 대출 이자는 쌓인다. 기록을 남긴 뒤 흙을 다시 덮거나, 유구를 떼어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것이 흔한 처리 방식.
8.서울시는 2015년 이 셈법을 뒤집었다. 유적을 제자리에 남기고 전시관을 지어 시에 기부채납하면 그만큼 용적률을 더 얹어 준다. 시행사에게는 공사를 막던 흙구덩이가 층수로 바뀌고, 탑골공원과 인사동을 오가는 사람에게는 길목에 무료 박물관이 하나 생긴다. 첫 적용지의 동네 이름을 따서 공평동 룰이라 부른다.
9.2021년 7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이 부지의 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금속활자 출토 소식이 알려지고 한 달이 채 안 된 때. 유적을 보존하고 전시관을 짓는 조건으로 용적률이 803%에서 1,052%로 올랐고, 층수와 높이도 함께 올라갔다.
10.건물을 짓는 돈은 비싸게 빌렸다. 공사 중에 본PF가 1조 2,320억 원 규모로 다시 짜였다. 금리는 연 6.6~6.7%. 이자만 한 해에 800억 원 남짓 나가는 조건이었고, 대출 만기는 준공 석 달 뒤로 잡혀 있었다.
11.시행사는 공사가 끝나기 전에 건물을 내놓았다. 올해 초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혔고, 우정사업본부 자금을 굴리는 펀드로 3.3㎡당 약 3,500만 원, 모두 약 1조 5,000억 원에 샀다. 매도 쪽이 기대한 가격은 4,000만 원 선.
12.용적률이 오른 만큼을 대지 9,263㎡에 곱하면 지상 연면적이 약 7,000평 늘어난다. 여기에 매입 단가를 곱하면 2,400억 원 남짓. 더벨이 전한 개발 원가와 매입 단가의 차이를 건물 전체에 곱한 금액과 비슷한 크기다(아래 그림). 전시관 자리는 지하라서 용적률 계산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13.사는 쪽은 왜 가격을 깎았을까. 이유는 빈 층. 매각 협상 무렵 임차를 확정한 곳은 강남 테헤란로에서 옮겨 오는 메트라이프생명 한 곳뿐이었고, 임대율은 14%로 전해졌다. 을지로3가 일대에서도 올해 새 오피스가 잇달아 들어서니, 나머지 86%를 채우는 속도가 새 주인의 수익을 정한다.
14.이 방식의 첫 사례는 같은 공평구역 1·2·4지구에 선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2018년 문을 연 뒤 51만 7,000명을 받았다. 건물은 그해 1조 1,221억 원에 팔려 순수 오피스로는 처음 조 단위로 거래됐다.
15.종로 큰길 뒤로 난 좁은 길, 피맛골. 말을 탄 고관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 붙은 이름인데, 청진동 쪽 구간은 2000년대 말 재개발로 대부분 헐렸다. 이번 전시관의 키오스크 화면은 3D로 되살린 16세기 집들 가운데 한 채에 「피맛길로 출입하는 집」이라는 설명을 띄운다. 도심 재개발이 한쪽에서 지운 골목을, 이번에는 유리 밑에 넣었다.

16.G1은 16세기 골목을 지하에 남기는 대가로 8개 층, 약 7,000평을 더 얻었다. 이 방식을 서울 밖으로 가져가면 어디서 먼저 막힐까. 운영비. 전시관은 기부채납으로 지자체 재산이 되고 표를 팔지 않으니, 전기료·인건비·유물 관리비가 해마다 예산에서 나간다. 서울은 서울역사박물관이 두 전시관을 함께 맡지만, 학예 인력이 없는 시·군에서는 용적률보다 문을 열고 닫을 사람이 먼저 모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