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의 한 대학이 50년 쓰고 비워 둔 과학관을 헐지 않았다. 아래 두 층의 콘크리트를 남기고 목조 두 층을 얹어, 학생회관과 식당을 한 건물에 넣었다.
1.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Amherst)의 Amherst College가 8월 24일 새 학생회관의 식당을 먼저 열었다. 이름은 포드 학생회관(Ford Student Center). 건물 전체는 9월 18일에 열렸고, 개관 행사에는 졸업생 250여 명이 찾아왔다.
2.설계는 Herzog & de Meuron, 미국 현지 설계는 Sasaki가 맡았다. 이 스위스 사무소가 미국에서 완성한 첫 교육시설이다. 연면적 약 1만 3,400㎡, 4,000평이 조금 넘는 4층 건물.
3.자리는 메릴 과학관(Merrill Science Center) 터. 1968년 보스턴의 Campbell, Aldrich & Nulty가 설계해 700만 달러에 지었고, 개관 당시 미국에서 손꼽히게 새로운 과학관이었다. 2018년 학교가 2억 달러를 들여 다른 자리에 새 과학관을 짓자 50년 쓴 건물이 통째로 비었다.

4.남긴 것은 1·2층의 포스트텐션 콘크리트다. 기둥의 약 3분의 2를 잘라 높이를 맞추고, 그 위에 목재로 짠 전이 구조를 깔아 3·4층을 받쳤다. 목재는 캐나다 퀘벡의 Nordic Structures가 가공한 흑가문비나무 집성재. 제멋대로인 옛 콘크리트와 공장에서 밀리미터 단위로 깎아 온 목재는 주문 제작한 기둥머리와 퍼즐처럼 끼우는 철물로 이었다.


5.층마다 옛것과 새것의 비율이 다르다. 1층은 기존 콘크리트가 90%이고, 2층은 목재와 옛 콘크리트가 반씩 섞이며, 3·4층은 계단과 승강기 코어를 빼면 전부 목재다. 설계진이 밝힌 물량으로 따지면 새로 부은 콘크리트보다 남겨 쓴 콘크리트가 2.5배 많다.
6.1층 계단 홀에서는 1968년에 부은 기둥과 천장이 칠 하나 없이 맨살로 드러나 있다. 한 층 오를 때마다 회색이 줄고 나무가 늘어서, 배식대 위에서는 천장이 격자로 짠 가문비나무 보로 바뀐다. 외벽은 웨스턴 레드시더를 썼는데, 위층은 기름만 먹여 나무색을 살리고 아래층은 거의 검게 물들였다. 설계진 설명으로는, 해가 비스듬히 들 때 그 검은 판이 가지색으로 비친다고.


7.식당 좌석은 900석. 지금까지 쓰던 밸런타인 홀(Valentine Hall) 식당의 두 배 크기. 배식대는 14곳이고 8~10명이 따로 앉는 작은 식사방도 있다. 건물로 가스관을 아예 끌어오지 않아 주방도 전기로 돌린다.

8.식당 말고도 넣은 게 많다. 극장 겸 행사실과 게임실, 음악 연습실, 학생 라디오, 종교 공간, 90명이 드는 동문 펍, 3층 카페와 테라스까지 한 건물에 들어갔다. 가운데에는 둥근 벽으로 두른 계단식 공간을 뚫어 아래위 층을 한 번에 보이게 했다.


9.2019년 설계자를 정할 때 학교 쪽이 내놓은 문제는 하나였다. 학생이 한데 모일 공간이 없다는 것. 1986년에 지은 키프 캠퍼스 센터(Keefe Campus Center)는 작았고 식당은 캠퍼스 반대편에 따로 있었다. 새 건물은 윗 캠퍼스의 잔디 광장과 아랫 캠퍼스의 새 녹지 사이 비탈에 걸쳐, 강의실을 오가는 길이 건물 안을 지나가게 만들었다.
10.학생은 2025년 가을 기준 1,907명. 식당 900석이면 두 명에 한 자리꼴. 전교생이 하루 세 번 오는 곳은 식당뿐이고, 그 길목에 동아리방과 카페, 게임실을 붙인 건 밥을 먹으러 온 학생을 그 자리에 붙잡아 두려는 배치다. 개관 행사에서 한 재학생은 이 건물이 사람을 "머물고 어울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11.개관 2주 뒤 학생신문 사설은 불만부터 적었다. 층 전체와 복도 일부가 아직 막혀 있고, 밤 9시까지 연다던 식당에서 8시 반이면 음식이 떨어진다는 것. 캠퍼스 반대편 밸런타인 홀은 지금 빈 건물.
12.학교는 총사업비를 공개하지 않았다. 밝힌 숫자는 두 개. 반경 20마일(약 32km) 안의 지역 업체와 맺은 계약이 9,000만 달러이고, 올해 6월 1983년 졸업생 빌 포드(Bill Ford) 가족이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건물 이름이 그 기부로 붙었고, 포드는 사모투자사 General Atlantic의 회장이다.
13.같은 학교가 2018년에 지은 새 과학관은 제곱피트당 800달러였다. 그 뒤 오른 공사비와 대형 주방을 생각해 제곱피트당 1,100~1,400달러로 잡으면, 이 건물은 1억 6천만~2억 달러쯤 된다(추정). 2023년 2월 학생신문은 예산이 몇 퍼센트 넘었고, 이사회가 그해 5월 착공 여부를 다시 정한다고 보도했다.
14.들어오는 돈은 식비뿐. 2025-26학년도 식비가 한 해 8,850달러이니, 1,907명이 모두 낸다고 쳐도 연 1,690만 달러가 상한이다(추정). 대학 식당은 식재료와 인건비를 빼면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럼 공사비는 누가 갚나. 기부와 기금.
15.학교가 셈에 넣은 건 다른 쪽이다. 학교 발표로는 메릴의 기초를 다시 써서 탄소 440톤, 철골 대신 목재를 써서 900톤을 줄였다. 새 건물 하나가 들어서면서 식당이 빠진 밸런타인 홀과, 강의동으로 바꿀 계획인 키프 캠퍼스 센터까지 건물 두 채의 쓰임을 다시 정해야 하는 숙제도 생겼다.

16.Amherst College는 50년 쓰고 비워 둔 과학관의 아래 두 층을 남기고 목조 두 층을 얹어, 학생 1,907명에게 식당 900석과 동아리 공간을 한 건물로 내놨다. 남겨 쓴 콘크리트는 새로 부은 양의 2.5배. 국내 대학이 같은 일을 하려면 내화 기준에서 먼저 막힌다. 이 규모의 집회시설은 주요구조부를 내화구조로 지어야 하는데, 목재 기둥과 보를 드러낸 채 인정받은 제품이 아직 많지 않다. 옛 기둥을 잘라 새 층을 얹으면 남긴 부분의 내진 성능부터 다시 따져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식비로 공사비를 갚을 수 없는 건물이라, 도면보다 기부자 이름이 먼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