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켄징턴의 120년 된 양모창고 두 동이 벽돌과 톱날 지붕을 그대로 둔 채 사무실이 됐다. 올해 호주 전국 건축상 후보에 올랐고, 그 땅은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한 번 두 배 값에 팔렸다.
1.7월 23일 호주건축가협회(Australian Institute of Architects)가 올해 전국 건축상 후보를 발표했다. 지속가능 건축 부문에 멜버른 켄징턴(Kensington)의 영허즈번드(Younghusband)가 올랐고, 6월 빅토리아주 건축상에서 같은 부문 상을 받은 뒤다. 수상작 발표는 10월 29일. 설계는 Woods Bagot으로, 붉은 벽돌 양모창고 두 동을 사무실과 가게 1만 7,560㎡로 바꿔 2024년 중반에 1단계를 마쳤다.
2.대지는 1.57ha(약 4,750평)로, 교외선 철로와 엘리자베스 스트리트(Elizabeth Street) 사이에 비스듬히 끼어 있다. 첫 창고는 1901년에 섰고, 양모 중개상 Younghusband and Co가 1970년까지 이곳에서 양모를 받아 팔았다. 창고 영업이 끝난 뒤 최근까지는 예술가 작업실과 호주 발레단(The Australian Ballet)의 의상 창고로 쓰였다.

3.동선은 스케치 한 장에서 시작했다. 창고 사이에 깔린 블루스톤(bluestone, 현무암) 골목을 걷는 길로 남기고, 두 동 사이에 타운 스퀘어(town square)라 이름 붙인 마당을 냈다. 철로 쪽 긴 벽에는 앉을 자리를 붙이고, 입구는 한 곳에 몰지 않고 사방으로 여럿 뚫었다. 대지를 가로질러 역으로 가는 사람이 표 없이 창고 사이를 지나간다.

4.양모 더미를 쌓던 창고라 바닥이 깊다. 창에서 안쪽 끝까지 햇빛이 닿지 않는 층을 사무실로 빌려주려면 가운데로 빛을 끌어와야 했다. Woods Bagot은 바닥 몇 군데를 위아래로 뚫어 빛 우물을 만들고, 그 안에 검은 철골 틀과 유리 승강기를 세웠다. 양모 꾸러미를 끌어올리던 옛 승강기와 도르래는 그 자리에 그대로.

5.벽돌은 닦아 내지 않았다. 철골 창틀도 그대로. 지붕은 톱날 모양인데, 양털 등급을 눈으로 가리던 시절, 그늘 없는 고른 빛을 들이려고 낸 지붕. 그 빛이 이제는 뚫린 바닥을 타고 아래층 책상까지 떨어진다. 톱날 위에는 태양광 패널과 축전지를 얹고, 빗물은 받아서 지하 물탱크로 내린다.

6.골목 위로는 다리를 걸었다. 층마다 두 동을 잇는 통로를 골목 위에 매달아, 떨어져 선 창고 두 채를 한 건물처럼 쓸 수 있게 했다. 새로 넣은 다리와 계단은 회색 금속으로 싸서, 붉은 벽돌과 한눈에 구분되게 했다.


7.마당과 골목은 주말에도 쓴다. 올해는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디자인·미술·빈티지 장터가, 석 달에 한 번 일요일에 중고 의류 장터가 선다. 사무실 임차인만 드나드는 단지라면 주말엔 빈 골목. 장터가 동네 사람을 단지 안으로 부른다.


8.멜버른 도심 사무실은 코로나 뒤로 비었다. 공실률이 2025년 내내 18% 안팎을 오갔고, 임차인은 더 싼 건물보다 직원을 사무실로 다시 불러낼 건물을 찾아 옮겼다. 높은 층고와 오래된 벽돌, 위에서 떨어지는 햇빛은 새 유리 빌딩이 돈을 줘도 못 사는 것들.

9.임차인의 장부도 달라졌다. 호주는 2025년 대기업을 시작으로 기후 공시를 차례로 의무화했고, 입주한 건물이 쓰는 에너지가 공시 숫자에 들어간다. 영허즈번드가 그린스타(Green Star) 6성과 NABERS 에너지 5.5성을 목표로 걸고, 운영 단계 탄소 배출을 0으로 맞춘 이유가 여기 있다.
10.상은 남긴 것에서 나왔다. Woods Bagot은 기존 벽돌과 뼈대를 거의 다 살려, 같은 크기로 새로 지었을 때보다 짓는 과정의 탄소를 84% 줄였다고 밝힌다. 무게로는 1만 1,335톤. 헐고 새로 올렸다면 콘크리트와 철근을 만들고 나르는 데서 그만큼이 더 나왔다.
11.땅은 두 번 팔렸다. 2016년 말 Impact Investment Group(IIG)이 3,025만 호주달러(약 272억 원)에 샀고, 2018년 1단계 인허가를 받았다. 2020년에는 연방 농업부가 약 4,400㎡를, 건축사무소 ClarkeHopkinsClarke가 2,700㎡를 빌리겠다고 먼저 약속했다. 2021년에는 2단계 신축 인허가까지 받아 냈다. 여기까지가 IIG의 몫.
12.그러고는 짓지 않았다. 삽 한 번 뜨지 않고. 2022년 3월 IIG는 시공사 Built와 캐나다 연기금 계열 Ivanhoé Cambridge, 부동산 운용사 Irongate의 합작사에 이 땅을 넘겼고, 가격은 6,000만 호주달러(약 540억 원)였다. 5년 남짓 만에 두 배. 그사이 IIG가 더한 것은 인허가 서류 두 벌과 선임차 약속이다.
13.합작사가 산 것은 땅만이 아니다. 기존 창고의 연면적 2만 9,168㎡가 딸려 왔고, 매입가를 그 면적으로 나누면 ㎡당 약 2,060달러다. 옆 빈자리에 새로 올릴 2단계와 3단계는 사업비만 ㎡당 5,260~5,930달러라, 헌 바닥이 새 바닥의 3분의 1 남짓한 값에 들어왔다. 1단계 리모델링비는 비공개.
14.임대료 역시 비공개. 멜버른 도심 바깥 A급 사무실의 순임대료를 ㎡당 한 해 400~500달러로 잡으면, 1단계를 다 채웠을 때 들어오는 돈은 한 해 700만~880만 달러(약 63억~79억 원)다(추정). 임대 창구는 150㎡ 미만부터 1,000㎡ 넘는 것까지 면적대를 다섯으로 나눠 열어 두었다. 큰 회사 하나를 기다리기보다 작은 회사 여럿으로 채우겠다는 계산.
15.합작사의 한 축인 Built는 시공사라, 개발 이익과 공사 이익이 한 회사로 들어온다. 전체 계획은 4억 달러에 연면적 5만 6,000㎡. 양모창고를 되살린 앞선 사례로는 브리즈번 테너리프(Teneriffe)가 있는데, 그곳 창고들은 1990년대 말부터 잘게 나뉘어 아파트로 팔렸다. 영허즈번드는 넓은 바닥을 쪼개지 않고 사무실로 남겨, 분양 대신 임대로 오래 번다.
16.켄징턴의 양모창고 두 동은 헐리지 않고 사무실 1만 7,560㎡가 됐고, 그 땅은 삽을 뜨기 전에 이미 두 배 값에 한 번 팔렸다. 헌 바닥을 새 바닥의 3분의 1 남짓한 값에 사서 채우는 계산은 국내 준공업지역의 오래된 벽돌 공장에도 그대로 선다. 어디서 막힐까. 구조에서. 조적조 건물을 업무시설로 용도를 바꾸면 구조 안전 확인과 내진 보강이 따라붙고, 빛을 들이려고 바닥을 뚫는 순간 보강할 범위가 더 커진다. 여기에 국내 임차인은 아직 내재 탄소 숫자에 임대료를 더 얹어 주지 않으니, 남긴 벽돌이 값을 받으려면 주말 장터처럼 사람을 부르는 다른 이유가 함께 있어야 한다.
